나이에 관한 생각
'내가 다시 이십대로 돌아간다면....' 이런 생각은 하기 조차도 싫다.
그 때 겪었던 질풍노도의 시간들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촌뜨기 같은 표정과 차림새로 어떻게든 서울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기를 쓰던 스무살도 싫고,
남자들만 보면 잔뜩 주눅이 들어 미팅이라는 것을 할 때마다 폭탄이었던 스물한살도 싫고,
동아리 회장으로서 선배들과의 헤게모니 싸움을 겪으며 어른인 척 하던 스물두살도 싫다.
눈만 뜨면 거짓말처럼 분신 소식이 들려오던 91년의 상황도 힘들었고
마치 전쟁 실제상황처럼, 신촌 옥탑방의 지붕 위로 헬리콥터가 날아다니던 96년은 정말이지 기억하기도 싫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무엇을 해야할지는 알겠으나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지지 막막하기만 하던 이십대 후반은 더욱 떠올리기 싫고 그런 상황에서 늘 부모님께 당당하지 못하고 죄책감을 가져야 했던 그 이십대가 나는 정말 싫다.
물론 좋은 시간도 있었지만, '젊음'과 함께 열정과 풋풋함만으로 설명이 힘든 서투름이 공존했었기에 몹시 망설이고 주저하고 머뭇거렸던 그 시간들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는 것조차 나는 좀 버겁다.
그런 시간들, 과정들을 겪으며 성숙한 지금의 내가 되었고,
그 시기의 촌티를, 마치 애벌레가 탈피하여 성충이 된 것처럼, 벗어버린 후에야 나는 나 자신의 모습을 찾았기에 그 시간들이 아주 의미가 없다고 할 순 없겠지만, 삼십대 후반이 되면서 비로소 내 삶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나갔고 또 그 이후에야 비로소 나 자신의 내외면 모습에 스스로 만족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시기는 내가 사회인으로서 일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오롯이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직후이니 인생은 참 모를 일이다.
신체에 깃드는 노화의 징후마저 반길 수는 없지만 볼에 살이 빠져 홀쭉해지면 왜 굳이 인공보형물을 채워가며 노화를 거부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얼굴에 끊임없이 뭔가를 삽입하는 여느 배우보다 이미숙배우의 외모가 참 멋지다. 그리고 메릴스트립같은 배우의 모습이 정말 멋지다)
나는 심지어 은발도 환영한다.
흰머리가 많은 친정엄마의 유전자가 왜 나한테 오지 않고 여동생한테로 갔는지 원망스러울 정도다.
지난 가을 이후, 부쩍 늘어가는 흰머리가 뭉탱이로 늘지 않고 지저분하게 이곳 저곳 듬성듬성한지 불만스러울 때도 있다.
무엇보다, 여전히 인생에 대해 알아나가야 할 것들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천천히나마 인생의 참맛(?)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뜨고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무척 서투르고, 조심스럽고, 자신없던 예전 방식이 아니라 이제는 조금더 확신을 갖고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늘었다. (조금 늘었을 뿐이지 매사에 그렇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몇가지 이유로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충분히 좋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드는 것이 언뜻언뜻 두려워질 때가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
가장 무서울 때는, 예전같지 않은 몸 상태를 느낄 때다.
직장일이 몹시 바쁘던 때에도, 임신중에도 당최 낮잠이라는 것의 필요성을 못 느꼈었고 한번씩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무겁게 눌리던 뒤통수의 느낌과 예외없이 찾아오던 두통이 너무 싫어서 낮잠을 기피했었다.
낮잠 뿐인가.
나는 밤잠도 무척 없던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밤을 지새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었고, 심지어 영국생활 초년차에는 에세이나 논문을 쓰면서 새벽 서너시를 넘기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20대 중후반의 동기들로부터도 '에너지의 여왕'으로 불렸을 정도이니...
그런데 한해한해 급속도로 달라지는 몸을 느낀다.
그동안 내 몸을 별로 귀히 여기지 않았었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한다. 정말 그랬으니까.
그래서인지 사십대에 들어서면서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사십대의 증상들은 예외없이 내몸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확실히 체감하는 체력 또한 곤두박질 치고 있다.
어떻게는 이 건강을 어느 정도 다시 끌어올리는 것이 사십대 후반 나의 목표다.
또한, 내가 나이가 들어가며 우려스러운 것은 - 이 얘기가 내가 제목을 잡고 써내려가기 시작한 이 글의 의도일 것이다 - 젊을 때처럼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를 (그리고 나의 가족을) 불편하게 하는 것'에 대해 참지 못하게 되고 있는 이기적인 나를 목격할 때다.
매번 반성하곤 하지만 불의에 대항하는 어떤 행동도 요지부동인 세상을 바꾸고 있지 못하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같은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통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나이가 들었어도 불의에 대항하는 '용기'만큼은 더 성숙해진 것이 아니라 쪼그라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현재 박사과정에서 연구하고 있는 주제를 포괄적으로 설명하자면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재생'이고, 구체적으로는 지역재생 프로젝트에서 물질자본을 대체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무형의 자본과 사회적 관점을 가진 '문화매개자'(내 텍스트 상에서는 지역예술가) 활동의 연관관계이다.
내 논문을 지도해 주시는 교수는 주로 창조경제를 연구하는 문화경제학자인데, 연구분야에 있어 사회와 경제를 결합시킨 결합경제(Associational economy)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영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와 도시재생의 정책적 방향 자체가, 지난 세월 문화예술의 무작위적인 도구적 사용에서 탈피하여 최근에는 공동체와 시민의 참여를 강조함으로써 사회적 배제를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어찌 보면 실천가가 아닌 학자로서의 사회적 위치에 있는 분이 실제 생활에서도 결합경제를 실천하기 위하여 소위 도시공동체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모습에 조금은 감동을 받았다. (결합경제를 설명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자신이 하고 있는 활동을 예로 들어주었었다)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의 점진적 변화'를 꿈꾸는 나 또한, 시간이 더 많이 흘러 아무리 늙어도 '세상과 사회를 바라보는 눈'만큼은 흐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여 그동안 귀히 여기지 않은 탓에 몸이 빠른 속도로 쇠해진다 할 지라도 말이다.
이 비싼(?) 공부를 마친 후 어떻게 세상에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 아무리 낮은 수준에서라도, 고민을 시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