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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층아줌마 Jan 12. 2016

이름 이야기

이층아줌마와 레오나르도, 그리고 박'최택'

이름1: 이층아줌마


무심코 정한 닉네임으로 불릴 날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아나로그 시절을 포함해 디지털 커뮤니티가 활발했던 시기에도 내 실명이 아닌 닉네임으로 불려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블로그의 필명이 나는 무척 어색하다.


어색하지만서도 어찌어찌 그리 정해진 이름을 그냥 사용하면서, 언젠가부터는 다른 이들의 닉네임이 어떠한가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유심히 보니 멋진 닉네임도 많더구만, 엄마아빠가 지어준 것도 아니고 나 스스로 이런 이름을 지어놓고 촌스럽네 어쩌네 생각하고 있는지... 그냥 내가 좀 어이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쩌다가 이층아줌마 되었는지 한번 밝혀두고 가야겠다. 


MBC에서 저녁 6시50분 정도에 시트콤을 방영하던 시절이 있었다.

<남자셋여자셋>부터 시작하여 <논스톱1>과 <뉴논스톱>을 거쳐 <논스톱 5>까지...

나는 그 시트콤들을 좀 즐겨보는 편이었다. 그 시간에 보았던 것은 아니고 일요일 낮시간에 재방송을 편성해주면 무척이나 재밌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가운데 <논스톱3>. 좀 지지부진하던 전편에 비해 요넘이 좀 나았던 것 같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체대생들의 얘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중 정말 매력없는 캐릭터로 지금은 가정을 이루고 아이아빠가 된 '하하'라는 배우가 출연했었다.

극중 말만 앞서지 제대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하하의 별명은 '이층장'이었다.

아마도 저 스스로 기숙사의 2층을 대표하는 이층장입네 하면서 깝죽댔던 것 같다. 



비슷한 시기, 내가 처음으로 회사에서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게 되었다.

직책 앞에 내 성씨를 붙여 '이팀장'이라고 불리웠는데 나는 그 호칭이 몹시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리하여 동료들에게 이팀장 대신 '이(李)층장'이라 불러달라고 요청했고, 마침 근무하던 층이 2층이었던지라 중의적으로도 해석이 가능한 나름 센스있는 별명의 주인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에 의해 한동안 불리던 이층장이라는 이름은, 

얼마 후 지인들끼리 만든 인터넷 카페에서 '이층아줌마'라는 별명으로 발전, 변모한다.


이미 <논스톱3>는, 그리고 그 시트콤 속 한 캐릭터였던 이층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후였으니, 변화의 과정은 사라진 채 마치 이층에 사는 아줌마인 양, 나는 지금까지도 이층아줌마로 불리고 있다.

가끔씩은 좀 창의적이면서도 다분히 캐릭터를 드러내고, 깊이있는 철학(?)까지도 내포할 수 있는 필명 또는 닉네임을 작명해야 했던 것일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촌스럽고도 어쩐지 정감있는 내 닉네임이 나는 참 좋다.




이름2: 레오나르도 


내가 아는 '레오나르도'는 딱 두명이다.
세기의 지식인이자 예술가로 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대중소설에 카메오 출연까지 하고 계시는 그 분과,
한때 뭇여성의 가슴을 팡팡 흔들어놓은 여릿한 외모로 모성본능을 팍팍 자극하곤 했던 영화속 그 남자. 


둘째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였다.
닥쳐올 재앙을 예측하지 못하고 평화롭기 그지 없던 오후.
아이는 요람 속에서 코 자고 있었고, 나는 나름 럭셔리 조리원에서 침대에 누워 TV 리모콘을 들고 이곳저곳 탐색 중이었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이 문득 눈에 띄었다.
사춘기 시절 나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버린 주말의 명화, <로미오와 줄리엣>.
낭만적이기 그지 없는 음악과 대사, 무엇보다 내 눈에 와서 콕 박힌 로미오, 레오나드 화이팅.

그 영화가 TV에서 방영되고 나서 줄리엣 역을 맡은 올리비아 핫세가 그야말로 완전 초대박 인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나는 일편단심 레오나드 화이팅을 목놓아 외치고 다녔다. 



침대에 누워있던 내 눈앞 TV 영화채널에서 내보내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1968년산이 아닌 1996년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즈가 출연한 이른바 리메이크작이었다. 

여전히 내 마음속 로미오가 나오는 1968년작 보다는 못하지만...


잘 생긴 로미오가 나와서 출산으로 호르몬작용이 왕성한 한 여자의 마음을 다시금 흔들어놓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 화면에 나온 어린 시절 디카프리오의 모습이 태어난지 며칠 안된 아들녀석과 너무도 닮아있는 것이 아닌가.
이쯤 되면 고슴도치 애미의 자식사랑 중증에 쯧쯧 혀를 찰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긴 하지만....

암튼, 다른 곳은 차치하고서라도 뾰족한 턱이 놀랍게도 우리 아들과 똑같았다.


그 때부터 사랑스런 갓난 아들의 닉네임은 레오나르도, 줄여서 레오가 되었다.
레오나르도... 얼마나 지적이고 깊이 있으며,
밀림의 왕자를 연상시키는 레오는 또 얼마나 강인한가!! 


안타깝게도 그 후로 이틀 있다가 아이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병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레오라고 며칠 불리지도 못하고 말이다. 


기나긴 투병생활과 재활을 반복하던 중,

신생아 시절 우연히 가지게 된 레오나르도라는 이름은 내가 블로그의 이름을 작명하던 순간 다시 명명된다.


엄마의 사춘기적 로망 레오나드 화이팅과 묘하게 겹치면서 강한 희망과 의지를 가져다 주는 이름,

레오나르도 화이팅! 

내 둘째 아들은 그렇게 다시 레오나르도가 되었다.




변화무쌍한 그 이름


이제 곧 만 일곱살이 되는 막내는 자신이 좋아하는 이름으로 바꾸어달라는 얘기를 곧잘 한다.

그 역사도 찬란하여, 

방귀대장 뿡뿡이의 짜잔형에서, 뽀로로에 나오는 에디 등등 숱한 이름들을 거쳐 영국으로 온 뒤에는 까닭모를 Andrew, 그리고 최근에는 드라마 <응답하라1988>의 주인공 최택까지... 

제 성씨인 '박'과 '최택'을 붙여서 '박최택'으로 불러달란다.


'이름'이라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구분짓는 어떤 개념이라는 것을 이해못해서 그런 것인지, 

그런 구분 조차도 의미없다고 생각하는 자유로운 영혼이어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막내의 마음속 워너비.

막내가 원하는 이름은 제 자신이 선망하는 바로 그 이미지였던 거다.

누구나 자신을 식별하는 자신의 이름을 갖고 있으나 그 이름은 나 자신에 의해 결정되지 않았던 고로 나 자신의 정체성을 잘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내가 원하는 모습이 내 이름에 투영되어 있지는 않은 것. 


그러고 보면, 내 자신 스스로 썩 괜찮은 이름을 내 닉네임으로 지어 붙여도 좋았을 법 한데, 작가들이 필명을 별도로 갖거나 예술가들이 예술가로서의 예명을 갖는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왜 나는 '브런치'라는 나만의 미디어를 따로 가지면서도 굳이 또 이층아줌마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갑작스레 든다.


아마도 이름이라는 것이, 나를 표현해주는 또다른 얼굴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반복해서 불리다 보면 못나고 촌스런 이름도 내것처럼 여겨지는 어떤 익숙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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