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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영칼럼니스트 Jun 07. 2022

소설 '완장'이 떠오른 이유, 회사에도 있는 완장

    

소설 속에 비친 ‘완장’


소설가 윤흥길이 1982년에 낸 ‘완장’이란 소설이 새삼 떠올랐다. 이는 며칠 전 만난 지인 M의 얘기를 들으면서였다. 소설의 내용처럼 회사에서도 맡은 보직을 완장 삼아 ‘갑질’ 또는 ‘완장질’을 하는 사람이 간혹 있다는 사실이 상기된 것이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최사장은 마을 저수지 사용권을 얻어 양어장을 만들고 그 관리를 동네 건달 종술에게 맡긴다. 처음엔 월급이 적어 감시원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으나 주인공 종술은 ‘완장’을 채워 주겠다는 말에 흔쾌히 수락한다. 


종술은 ‘감시원’이라고 새겨준 완장이 있었지만 자기 돈을 들여서 노랑 바탕에 빨강 글씨로 ‘감독’이라 새기고 3개의 줄을 그어 위엄 있고 잘 보이도록 만들어 1년 내내 어딜 가나 완장을 달고 다녔다.  그는 완장을 팔에 차고 나서 저수지를 바라보면서 혼자서 중얼거린다.


“오늘부터 이게 다 내 저수지여, 내 손안에 있단 말이여. 누구도 넘보지 못할 내 땅이란 말이여.”


그리고 그는 완장을 차고 중얼거렸던 말을 그대로 실행해 간다. 낚시하는 도시의 남녀들에게 기합을 주고 고기를 잡던 초등학교 동창 부자를 폭행하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도 같이 말 트고 하던 사람들에게 고자세로 돌변하니 그 꼴이 참으로 우스웠다. 저수지 감시원 완장 하나 찼다고 완전히 딴사람이 된 것이니 말이다. 


그에게는 완장이 목숨보다도 중요하다. 그것이 있으면 권위가 서고, 그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되고, 그것이 있으면 권리와 힘을 앞세워 다른 사람을 제압할 수 있으니 그에게는 무엇보다 완장이 중요했다. 완장의 힘에 빠진 종술은 읍내에 나갈 때도 완장을 두르고 활보한다.


완장의 힘을 과신한 종술은 급기야 자신을 고용한 사장 일행의 낚시질까지 금지하게 되고, 결국 관리인 자리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해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종술은 저수지를 지키는 일에 몰두하다가 저수지 물고기들이 연달아 떼죽음을 당하자 가뭄 해소책으로 물을 빼야 한다는 수리조합 직원 및 경찰과도 부딪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열세에 몰리자 종술은 ‘완장의 허황됨’을 일깨워주는 술집 작부 부월의 충고를 받아들인다. 종술이 완장을 저수지에 버리고 부월과 함께 떠난 다음 날 소용돌이치며 물이 빠지는 저수지 수면 위에 완장은 떠다니며 그렇게 소설은 끝맺는다.     


소설 ‘완장’을 그 무렵 TV영화로 보았으니 꽤 오래된 일인데도 지금까지 기억에 선연한 것은 주인공 종술의 완장에 대한 무서울 정도의 집착 때문이었다. 이 작품은 작건 크건 권력을 쥐면 업무 외적인 부분까지 사용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속물적 근성을 다룬 것으로 이듬해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완장을 찬 후배의 무례에 불편한 선배


M은 후배 K를 매우 괘씸하게 여겼다. M과 K는 회사에서 새로운 조직을 이끌게 되었는데 M은 사업조직을, K는 지원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문제는 M이 맡은 조직과 사업의 운영에 대해 지원업무를 빙자하여 후배인 K가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발생했다. 


지원업무라는 것은 그야말로 다른 부서의 사업과 운영을 지원하는 것인데도 그것이 과도해지거나 또 감독이나 감시, 명령조의 역할이 되면 다른 조직과 충돌을 일으키기 쉬운 법이다. K가 그랬다고 한다. 


지원부서는 회사의 지침과 관리 기준에 대한 사항을 사업부서에 피드백을 해주며 때로는 그들의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또는 회사의 지침을 이해시키기도 해야 하는데도 K는 자신이 마치 완장을 찬 현장 감독이라도 되는 양 행동했던 모양이다. 더 괘씸한 것은 그의 무례한 말투였다고 한다.      



힘을 빼야만 좋은 샷이 나온다 


조직에서는 CEO가 지원부서를 통해 사업부서에 지침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지침을 전달하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그것도 권력인 양 지원 부서장이 어깨에 힘이 들어간 채 완장을 찬 사람 사람처럼 행동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오만해지기 쉽고 상대방의 원성을 사기 쉽다. 그러면 본래의 목적도 달성하기 어려워진다. 한때 권력이 있는 부서장으로 재직한 사람들이 그 오만함과 완장질로 인해 평판을 잃은 사례는 숱하게 많다. 하물며 별 권력도 아닌 데도 마치 권력이란 완장을 찬 것처럼 행동한다면 어느 누가 좋아하겠는가.


골프에서도 힘이 빠져야 좋은 샷이 나오듯 회사에서도 맡은 일이 무엇이든 힘을 빼야 본연의 일을 더 잘할 수 있고 주변으로부터 인정도 받을 수 있다. 실제 권력이 있다 해도 권력이 있음을 으스대거나 시위할 필요가 없잖은가. 권력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속으로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CEO 귀에는 들리지 않는 불편한 얘기들


또한, 중요한 사실은 소설 ‘완장’과는 달리 그러한 지원부서의 ‘완장질’을 CEO가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CEO는 자신이 얘기한 지침이나 가이드가 지원부서를 통해 사내에 얼마나 잘 공유되고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 과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협화음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면 CEO 귀에는 듣기 좋은 얘기만 들리는 경향이 있다. 사내에서 거북한 얘기를 CEO에게 하는 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CEO는 일반적으로 불편한 얘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CEO들을 만나보면 회사의 전후좌우로부터, 즉 간부부터 말단까지 잘 소통하고 있으며 여러 직군으로부터 다양한 얘기를 다 듣고 있어서 회사가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고 있다고 오판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CEO가 특별히 임명한 전사적 역할의 새로운 보직자가 있다고 치자. 그에 대한 평판을 직원들에게 물으면 정답이 나오겠는가. CEO가 듣기 좋아하고 기대하는 얘기를 주로 하는 것이 조직의 생리인 것이다. 더구나 CEO가 그를 신뢰하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니 혹여 그가 어디선가 CEO의 지침 운운하며 완장질을 하고 있다면 그렇게 조직은 멍들어가는 데도 말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완장은 선생님이 그 진실을 알 때까지 견고한 성이었다.


그래서 쓴 말과 바른말을 하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고 CEO는 불편하더라도 그 얘기를 들어서 경영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은밀히 완장질하는 보직자의 횡포와 이로 인한 조직의 갈등은 결국 CEO의 책임이며 무능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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