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사이에 세상이 변했다. 사람들은 정작 대구가 안전하던 당시에 마스크를 엄청 쓰더니 지금은 아예 드러나지 않는 방법으로 스스로를 지키고 있다. 지하철과 거리는 놀라우리 만큼 한산하고(물론 러시아워에는 다르겠지만) 서로를 향한 경계의 눈초리가 서로의 폐부와 시선을 찔러댄다. 종일 가짜 뉴스와 괴담, 몇번 확진자가 어딜 다녀갔더라가 거의 대부분의 대화를 지배하고 있다.
사람들은 변종 코로나 19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은 유령에 대한 공포 속에 규율 당하고 있다. 나의 안전을 위해 공공의 가치나 인권은 오간데 없고 공무원들은 친한 이들에게 전파자의 인적 사항 내지 접촉자 현황 문서들을 노출시키고 있다. 윤리나 공공성, 질서와 연대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공포와 무지, 먹고사니즘과 불신, 혐오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국내 최고의 일간지 기자가 우한 탈출기를 기사로 썼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현재 우한은 봉쇄된 도시다. 그 기자는 지도에도 없는 루트로 여러 사람들이 차량으로 탈출 하고 있음을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의 스펙타클 처럼 묘사한다. 중요한건 그 스스로도 결국은 격리와 봉쇄의 대상 중 한 사람이란 사실이다.
대규모 전염병의 존재는 그 상황의 심각함에 따라 공공의 안전을 위해 특정한 개인의 자유권을 제한할 수 있을 정도로 가장 엄격하고 강력한 공적 규율과 통제가 이뤄지는 상황이다. 어떤 의미에는 일반적 전시 및 사변에서도 제한되기 힘든 개인의 권리들이 이 대규모 전염병 창궐이라는 예외 상태에서 제한되는 경우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거주 및 이전의 자유의 제한, 여행 제한, 격리 및 수용 등 인신에 대한 제한들이 대표적일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사태 초기 중국 정부는 장강 중류 최대 도시 우한에 대한 봉쇄를 결정했다. 열차와 버스가 멈추고 고속도로는 차단되었다. 시내에서도 특별히 허가 받지 않은 일체의 차량 운행이 금지 되었다. 하지만 그는 택시를 이용해 도시를 탈출했다.
이는 대규모 전염병 발발 사태에서 개인의 안전을 위해 누구를 믿을것인가에 대한 신뢰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국가의 방역 체계와 행정 시스템, 공권력을 신뢰할 것인가, 지옥도가 벌어진 도시를 탈출하여 내 살길을 도모할 것인가. 위험이 비가시적이고 국가의 시스템이 불투명할 수록 이 딜레마는 전염병 사태를 악화 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된다. 조선일보 기자는 단지 그런 경향성의 아주 탁월한 사례일 분이다. 단지 기자 스스로가 그에 대한 어떤 자각이 없을 뿐.
대구 주민/비주류 이단 교인/여성/노인/아마도 보수/사기성 다단계/아마도 보수?/나이롱 환자
어제 밤. 당내 막연한 동료들 방에서 31번 환자 책임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트리거는 이번에 미통당 수성갑 예비 후보로 나온 조정 변호사가 언론을 통해 한 개인을 너무 탓하지 말자는 메세지가 나온 시점이었다.
내 전제는 1. 경우에 따라 공중 보건을 해치는 행위로 처벌해야 할수도 있고, 2. 의사의 두 차례 검사 권고에도 구태여 외출증을 끊어 대구를 정신적 초토화의 상태로 만든데 대해 고의성은 성립되지 않아도 미필적 고의 정도는 성립될 수 있지 않을까, 3. 그럼에도 지금의 분노는 위에 언급한 한국 사회에서 때리기 만만한 모든 조건의 결합이 만들어낸, 두려움과 혼란의 책임을 묻고 싶은 마음들의 발로이니 일정한 자제는 필요하지 않느냐 였다.
문득 31번 감염자의 존재가 마치 한국 사회에서 사고 실험에서나 존재할법한 그러나 명백하 여기저기 존재하는 모든 약자적 지위, 배외의 조건을 종합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는 역으로 한국 사회에서 비주류화되고 배외의 대상이 되는 사고 체계, 신념 체계를 가진 이런 이들이 나름 정교한 행정 제도와 과학과 의학적 체계 바깥에서 취약하게-그러나 우리 사회의 명백한 일부로 남아 있다는 인식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정신적으로 고립되고 개별화되었지만 물리적으로 사회와 분리되지 않은 취약한 집단 내에서 대규모 감염이 일어난다면 그만큼 행정과 보건 체계의 작동은 더뎌지게 된다. 배외가 공중 행정과 보건에 끼치는 영향 같은게 이런 지점에서 나타날수도 있구나....
여튼 그렇기에 과도하게 특정인에게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을 묻기에 그 존재 자체가 가진 취약성이 너무 도드라진다. 당장 그들의 조직은 조직원의 보호가 아니라 조직의 보호를 택했고 이는 이런 은밀성이 가지는 취약함을 더 심화시킬 것이고 그만큼 개별 조직원은 제도로 부터 멀어지고 상호 불신과 배외만 커질 것이다. 걱정이다.
대구의 노인 여성, 혼자 사는 노인, 비주류 신앙, 다단계
이런 여러 시그널들은 대구라는 도시의 현실태를 드러내주고 있다. 대구의 산업은 구미와 달리 남성-저숙련-저임금 노동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 구미에서 포항, 울산 더 나아가면 마창진과 부산으로 이어지는 경부선 벨트의 가장 말단의 밴더들이 대구에 밀집해있다. 화학, 소재, 기계부품, 금속 가공 등등. 대구에서 여성의 경제란 주로 대구권에서 GDP를 만들어내는 산업에서 만들어진 부가가치를 흡수하는 상업, 서비스산업의 경제이다. 그런데 이 시장에서 연령은 중요한 진입장벽이다. 물론 일부 엘리트 고령여성들은 이 서비슷나업, 상업의 관리자로, 일부는 작은 소매점의 점원으로 들어가곤 하지만 그것도 60대엔 해당되지 안흔 이야기다. 심지어 60대 여성이라면 학력은 아마 평균적으로 중졸에서 잘하면 여상 졸업이 다수다. 종교만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도 일반적인 주류의 먹고 사는 전략으로는 호구지책이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하니 아파 죽어도 일 해야 하고 그 일의 중요한 방법인 사회활동은 포기할 수 없다. 병원 외출증 끊고서라도 결혼식과 예배는 가야하는데, 예배는 아마 이런 노인의 정신적인 안식처 아니었을까.(이는 되게 일반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아마 사회복지를 위시한 제도는 자신에게 아무 도움도 안되고, 자기 삶의 문제를 해결주지도 못하고....
그런 삶을 살았을 것으로 아무리 봐도 확실해 보이는 이 아지매(우리 어머니 또래다)에게 이 상황은 엄청나게 가혹한 상황일 것이다. 순식간에 자기 인생에 겪어본적 없는 비난이 날아들고, 자기에게 감염되었다 추정되는 이들이 엄청나게 생기고, 자신이 몇 없이 사회적으로, 정서적으로 기대었을 종교는 공공의 적이 되어 있고....
난 아마 31번 아지매가 지금쯤 일종의 정신적 붕괴, 사회적 쇼크 상태가 아닐까 혼자 짐작해본다.그리고 이런 쇼크와 붕괴가 아마 동료 신자 집단에게는 제도가 한 신자를 무너트린 것으로 비칠것이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은 자기 자신과 공동체를 보존하기 위해 공공의 이해를 배반하는 경로로 갈 것이 분명해 보인다. 감염자들도 어떤 의미에선 피해자적인 지위가 있다. 더욱이 대구지역의 노인층, 일생을 뼈 빠지고 밑 빠지게 일한 이들에게 이 상황은 정신적인 수용용량을 벗어나는 사태일 것이고, 실제 증상이 발현되어도 자기 부정에 빠지는 결과로 이어질수 있다.
한 개인에 대한 공격 보다 제도가 일종의 안전 시그널 같은걸 이 집단의 개인들에게 줄 필요가 있다 생각하는게 이런 지점이다. 아마 상당수 교인들은 31번과 크게 다르지 않을것이다. 아마 그들에게 이 교회는 몇 없는 안식처일 공산이 크다. 그들에게 제도공간으로 나오는 것이 배신이나 조직원임을 아웃팅 하는 행위, 자기부정의 행위가 아니라는 시그널 같은게 필요하다.
누구도 딱히 관심 갖고 알아주진 않아도 스스로 늘 미는 개념 중에 하나가 '세월호-후쿠시마 시대의 국가'라는 것이 있다. 동아시아의 유사권위주의-국가신성론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 존엄을 보호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 보다 관료와 정치 조직 스스로의 자기 보위를 위해 작동하고 그 속에서 국가의 책임에 대한 무책임과 방기, 책임을 묻는 일에 대해 공안논리를 통한 억압이 구조화 되는 것을 난 이 (나홀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호는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 후쿠시마 시대의 국가" 개념이 여실히 드러나는 사건이다. 명백히 영해 내에 들어왔고, 정상적이라면 요코하마에 기항해야 하는 크루즈 내에서 역병(!)이 창궐하여 대규모 감염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데, 일본은 해당 감염자 수를 자국의 감염 실태로 카운트 하지도 않고 이를 근거로 국외 감염이기에 국가가 수행해야할 공중 보건 기능을 해당 크루즈에 제공하지 않았다.
이건 전우용 같은 사이비가 주장하는 질벼관리본부 같은 기구의 유무 이전에 국가 행정 체계와 정치권력이 어떤 사고와 전제 속에서 움직이는지의 차이이다.(아 그런 사이비 정말..)
3700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이 거대 여객선은 사실상 바다 위에 떠있는 우한시가 되어 버렸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여행의 연장, 선실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실질적인 억류 상황 속에서 일본은 마치 해당 크루즈를 거대한 수용소 처럼 취급하고 있다. 배에 타고 있는 승객 중 자국명이 몇인지, 감염자가 몇인지 조차 허둥대는 모습, 이 유사 국가 부재 상태에서 어떤 기억이 데자뷰 되지 않는가
세월호 당시 인권이나 윤리, 책임의 문제를 옹호하던 이들 중 몇몇이 중국 봉쇄니, 대구 봉쇄니 이런 이야길 하는걸 보곤 한다. 심지어 검은 배경에 노란 리본을 플픽으로 달고 뉴스나 유명인 담벼락에그런 댓글을 주저 없이 단다. 아마 그들 대부분은 세월호 사건 수습 과정에서 이른바 '현실주의'라 불리던 경제주의자들(보상으로 정리하자, 경제가 어렵다 등 이중의 경제주의가 작동했다)을 향해 비판을 했을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기준과 원칙은 어디가고 혐오와 배제의 논리를 설파하고 있다. 인권도 연대도 휴머니즘도 나의 안전, 나의 공포 앞에선 무력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사태야 말로 사람의 기준을 확인할수 있는 시험대와 같다. 자신에게 엄습하지 않은 사건에 쉬이 윤리와 도덕, 책임과 인권을 이야기 했던 이들이 혐오와 배제를 이야기하는 이 장면을 그 이외에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나?
세월호와 후쿠시마, 16년의 촛불항쟁을 겪고도 우리의 사회적 DNA에 내재된 인식은 위험을 함께 견디는 시민의 연대와 공공성 같은것이 아니라 여전히 나만 안전하면 딘다는 인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윤리니 도덕이니 정치니 국가니 하는것들은 나의 자존이 안전할대만 충족되는(이는 다르게 내가 풍족해야, 나라가 풍족해야 등등으로 변용되어 왔다) 호사 처럼 여겨진다.
하긴 공포를 견디는게 인간에게 얼마나 가혹한 일이겠나만, 가끔 그 공포를 이기는 인간이 있어 인간 존재가 의미 있는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질서와 규율 보다 질서와 규율을 깨는 것이 자신에게 이득이 크다는 점을 인지하고 사회적 제재가 크지 않을거라 볼때 충분히 질서와 규율의 선을 넘을 가능성을 안고 있을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우리는 그런 와중에도 80년 광주의 시민과 세월호 당시 어민과 잠수사들의 존재를 목도하였다. 목도 하기 전으로 돌아가는건 불가능하다. 목도한 가능성을 부정하거나 그 가능성을 따르느냐. 선택은 그 두가지 뿐이다. 언론과 지식인의 책무는 그 공포를 조금이라도 걷어내주는데 있을 것이다. 단지 그렇게라도 <죄소의 딜레마>와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아포리아를 무너트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