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냉면 : 본격 동아시아 국제주의 푸-드

중화냉면, 하야시츄카, 건반면 사이

by 이시훈

중화냉면 : 본격 동아시아 국제주의 푸-드

(2021.04.27)


대구는 이제 낮이 제법 덥다. 아직 뜨거운 수준은 아니지만 대낮의 햇살과 그 햇살 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지난 겨울의 폭설과 혹한의 기억을 매우 아련한 ‘먼 일’로 밀어내고 있다. 자연히 매 순간, 몸이 외친다. 시원한거!!


이 음식 만큼 호불호가 나뉘는 음식도 드물 것이다. 아니 냉면에 땅콩버터가 왠말이냐!? 중화냉면 이야기다. 난 이 중화냉면의 매니아다. 오죽하면 시내 종로 복해반점에 들리면 사장님이 올해 언제쯤 이걸 개시 할 것인지 알려주실 정도이다. 사실 한국의 평양 냉면 육수와 같이 진하고 깊은 맛도 없고, 코다리나 간재미무침회 얹은 쫄깃한 함흥식 비빔냉면의 짜릿함도 없다. 이름은 중화라 하지만 사실 그 실상은 누가봐도 소위 일식 냉라면이라 부르는 하야시 추카의 아류다. 마치 짬뽕이 중국의 야채 베이스 스프를 기원으로 나가사키/요코하마를 거쳐 우리에게 짬뽕이란 음식으로 다가오듯, 일본 라멘의 한 뿌리로 중국식 면요리는 일본의 냉소바/냉라면과 만나 우리에게 중화냉면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와있다. 어디에도 온전한 ‘내쇼날 푸드’가 없다. 거칠게 잡탕, 세련되게 혼종이다. 아 좀 더 새련 되려면 “제국주의가 만든 1차 세계화 내지 국제화의 유산!”



상술했듯 깊은 맛은 없다. 대개 중국집에서는 가게에서 우린 치킨스탁 푼 물이나 닭육수 식혀 거른 육수에 식초, 설탕, 간장 등을 섞을 것이다. 그냥 맛 보면 바로 예상 가는 조합이다. 취향 껏 식초를 넣기도 겨자를 붓기도 하지만 역시 백미는 땅콩버터다. 차가운 국물과 만나 이른바 중화면이라 불리는 면의 탱글함은 배가 되고, 해삼과 오징어(가끔 해파리도 보이는 경우가 있다.)의 식감은 따뜻할때의 그것과 다른 차원이 된다. 탱그리한 면을 빨아들일 때 새콤달콤감칠맛 나는 육수에 땅콩버터 특유의 맛이 섞여 올라올 때 혀가 비명을 지른다. 오 해피.


내셔널리즘을 중화냉면에 자주 견줘본다. 순수한 민족이란 것은 관념이지만, 마치 그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 역시 헛된 관념이다. 존재하되 고정되어 있지 않고, 유동하지만 형태가 없지 않다. 마치 옥수수 전분과 물을 섞어 만드는 반 고체 – 반 액체 우블랙이 생각나는 부분이다. 내셔널리즘을 무슨 만고의 악처럼/만고의 지고지순함처럼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 끼여서, 내셔널리즘을 중화냉면처럼 애정있게 만나며 재구성하자 뭐 그런 괴상한 생각을 해본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구 북부동맹 출신인 실바니가 지난 주세페 연정 시기 내무부 장관으로 있으며 난민에게 가한 반인권 범죄로 처벌받을 위기임에도 극우 3당(포르차 이탈리아, 극우당동맹<구 북부동맹>, 이탈리아 친구들)이 어느 시점에서 극우-포퓰리즘 연정을 구성할지 모른다는 흉악한 소리가 들려오고, 프랑스에선 결선투표 아니면 극우국민전선의 마린 르 펜이 대통령 될 초유의 위기에 놓여 있다. 전간기의 변곡점이 된 파시스트 무솔리니의 로마 진격이 100주년을 앞둔 시점에 세계는 전후의 국제주의, (자본 주도의) 지구화, 경제적 풍요와 비교적 안정된 국제정치와 같은 조건들의 취약성을 다시 드러내고 있다. 세계가 다시 자국 우선주의와 배외주의로 회귀하려 하고 있다. 이미 난민과 소수자, 인종에 대한 혐오와 타자화는 오래된 일이지만 방역이라는 이 테러리즘으로부터 학습 된 공안 기법의 새로운 변형과 백신 문제는 우리가 알던 세계의 당연한 것들을 위협하고 있다. 안전과 방역이란 이름의 배외주의가 다시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중화냉면 같은 조우와 혼종이 가능한 세계는 요원한 일일까. 그저 면만 후루룩 들이키기에 참 무거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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