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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섬 May 26. 2024

주제 : 동네, 골목

Monologue 005

오래된 골목길을 사진으로 남기는 걸 좋아했어요.


30년도 더 넘은 주택들,

거주민들 말곤 오가는 이 없는,

마산이라는 작은 도시 안에서도 아는 사람이 없던.


제가 나고 자란 회성동이란 곳은 별이 모이는 동네라고 이름 붙었지만, 정말로 별 것 없는 동네였어요.

사진에 담던 피사체들도 정말 별 거 없었죠.

아무렇게나 내놓은 화분들, 담장 위로 드러난 빨래, 빨간 벽돌, 틈을 비집고 비틀어 피어난 잡초, 고양이들, 페인트가 벗겨진 대문, 가로등, 부서진 의자, 따위의 것들.

그래서였는지, 셔터를 누르고 싶어도 주변에 누군가 있는 상황에선 ‘내일 다시 와서 찍어야지’하곤 지나치기 일쑤였어요. 민망했거든요. 이게 뭐라고 찍나, 이상하게 볼 것 같아서요.


그런데 웃긴 건, 다음날 다시 와서 보면 ‘어라 이게 아닌데’ 한다는 거죠. 몇 번을 그러고 나서야 알았어요. 그 날, 그 시간, 그 날씨와 그 햇볕, 그 공기, 그 기분, 그곳에 그 대상이 있는, 모든 것에 우연한 일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요.

지나간 건 다시 돌아오지 않더군요.


찍지 못했던 그 풍경들은 닦을 때를 놓친 얼룩처럼 종종 눈 앞에 떠오르곤 해요. 언젠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마음들처럼요. 후회라고 하기엔 거창하지만, 어쨌든 저를 거슬리게 만들죠.

이미 빛을 잃은 그 것들은 빚처럼 마음에 잔뜩 고여, 평생을 살아도 증발하지 않을 것만 같아요. 무섭지 않나요.


사랑한단 말을 어쩜 그렇게 잘 하느냐고요?

그 물음에 이 이야기가 충분히 답이 되었을까요.





이 글은 책방밀물에서 주최한 만취백일장에서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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