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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섬 Jan 31. 2024

이미 내 차례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감독 벤 스틸러, 2013)

새해가 왔다. 이 칼럼을 마주하는 모든 이들이 조건 없이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특별한 꿈을 가지고 살진 않더라도 막연히 품는 꿈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1월은 그 꿈에 얼마나 가까이 도달해있는지 가늠해보는 좋은 계기가 되어준다. 어릴 때부터 장래희망 같은 건 없었지만 막연히 동경했던 삶의 모양은 있었다. 그걸 17살 즈음에는 이런 문장으로 정리했다. ‘60살에는 명함(직업)을 5개쯤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어떤 직업들로 채울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문장을 만든 나이의 두 배가 될 때까지도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안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회사에서, 그저 회사의 기조를 충실히 따르는 흔한 직장인의 삶을 살아올 뿐이었다.


“이제 내 차롄가.”

10년 전 극장에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본 후 남겼던 한줄평이다. 마음만은 ‘하고잽이’였지만 정작 벌이는 일은 하나도 없던 나는 이렇다할 특별한 경험도,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는 무색무취의 사람이었다. 그런 내게 누군가 취미나 특기를 묻는 순간은 세상 어느 공포영화보다도 무서웠다. 도대체 꺼낼 말이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부, 자신을 소개하는 짤막한 프로필 하나 완성시키지 못하는 월터의 모습은 그런 내 모습을 투영하기에 충분했다. 폐간을 앞둔 아날로그 잡지 회사에서 흑백 사진을 인화하는 일을 담당하던 월터는 영웅이나 탐험가가 되는 자신의 모습을 ‘멍 때리며 상상하는’ 것으로 현실 도피를 일삼는다. 새로운 경험도, 여행도, 모두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다. 그러던 어느날 폐간호 표지에 쓰일 중요한 필름을 잃어버린 월터는 사진작가를 직접 만나러 여행길에 오르고, 그의 앞에는 버릇 같던 상상을 멎게 하는, 상상보다 더한 현실이 펼쳐진다.



그린란드의 바다, 상어와의 격투, 롱보드를 타고 가로지르는 아이슬란드의 광활한 풍광과 활화산, 아프가니스탄의 민병대와 설산의 눈표범. 월터의 눈앞에 펼쳐진 것들은 상상을 뛰어넘었고, 무엇보다도 월터를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랬기에 내 모습을 투영했던 월터처럼, 나도 월터의 뒤를 이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전과 다른 삶이란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빨간약을 고르듯 찰나의 선택만으로도 펼쳐질 수 있는 미래다. 뭐라도 시도하는 삶을 선택하기로 한다면 미래의 내 모습은 지금 내가 하는 상상의 결과이리라. 안정이라는 가치 아래에 갇히기로 한다면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없고, 현실은 상상을 뛰어넘을 수 없다.


그린란드부터 아프가니스탄까지의 여정이 화려하게 그려지지만, 이 영화는 꼭 그런 경험만이 ‘삶의 정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결국 월터가 잃어버린 필름을 찾은 곳은 집이었고, 마지막 표지 사진은 경이롭고 낯선 풍광이 아니라 작은 일일지라도 자신의 소임을 묵묵히 해내던 소시민 월터였다. 여행과 모험의 의미가 일상으로 귀결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비슷한 메시지를 던지는 다른 영화들보다도 더 빛난다. 최근 ‘핵개인의 시대’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뭘 좋아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등 어느 시대보다도 나에 대한 성찰이 최우선인 시대라고 한다. 월터를 만나기 딱 좋은 1월이다. 어떤 모양이든 상관없이 모두가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보는 2024년이 되기를, 상상이 현실이 되고 상상보다 재밌는 일상이 펼쳐지기를 바란다.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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