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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라의 어른이 Aug 21. 2021

유럽(EU)은 석탄동맹으로 시작되었다

석탄으로 시작된 EU, 탈 석탄으로 동맹재건

  유럽공동체 EU는 석탄과 철강에 대한 공동의 관심 때문에 구성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두 번의 세계대전 후에 출범되었다.   1,2차 세계대전은 모두 유럽 본토에서 발생했고 이후 아시아, 미국 등으로 번져나가 우리나라도 일본 제국의 징용 군으로 간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하였다.  유럽은 영토 면적으로 보면 하나의 대륙으로 볼 수 있을 만큼 넓고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면서 민족주의 체계가 강력한 나라를 중심으로 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전 후 유럽 국가 중 프랑스와 독일이 더 이상 원치 않는 전쟁에 휩쓸리지 않을 공동체 구성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특히 서독은 2차 세계대전의 원흉으로 지목당해 국제사회 고립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프랑스와의 관계 회복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프랑스도 향후 독일과의 전쟁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큰 관심을 가졌으며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이탈리아까지 합류하였다.  각 나라들은 경제 독립성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대신 혹시 모를 전쟁을 방지하는 것이 더욱 커다란 이점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프랑스의 외무장관 로베르 쉬망은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서유럽의 석탄, 철강산업을 초국가적 기구 하에 통합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후 로마조약을 거쳐, 석탄, 철강뿐 아니라 원자력까지 공동소유 및 관리하는 "유럽 경제 공동체(EEC)"가  출범되었다. 이는 전쟁을 위한 필수적인 전략물자가 당시로는 석탄과 이를 대규모 소비하는 철강이기 때문이었다. 유럽은 지리적으로 석탄자원이 풍부한 지역으로 독일, 프랑스 그리고 영국은 대규모 석탄 보유, 생산국이어서 산업혁명의 주요한 동력을 갖추고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서유럽 국가들이 공동으로 석탄, 철강을 생산, 공동소유 및 관리를 하자는 제안이 공동체 형성의 핵심 의제였다.   결국  상호 간의 전쟁 억제를 넘어, 경제 전반에 대한 전폭적인 공동체 계획이라는 대의명분을 가지면서 유럽 경제 공동체 회원국들끼리의 무역관세 제한, 외부 국가와의 무역에 있어서의 공동관세, 회원국 내에서의 자본과 인력의 자유로운 이동을 목표로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마침내 1951년 4월 18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6개국은 석탄 및 철광석 채굴에 관한 조약,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 ECSC)를 체결하여 오늘날의 유럽공동체의 출발이 되었다.  1953년에는 6개국의 석탄·철강업에 초국가적인 부과금(유럽세)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다음 해에는 석탄·스크랩·강철·선철·코크스 부문에 대해 거의 모든 무역 장벽을 철폐하였다. 중앙기구인 고등기관(High Authority)은 생산품의 가격·생산량·할당량을 책정하며 조약의 규정을 위반한 회사들에 벌금을 부과하는 권한을 가졌다.  1961년 유럽의 강철 수요와 가격이 급속히 하락하자 가맹국 내 모든 철강회사의 생산 할당량을 책정하고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추게 되었다. 조약 기간은 50년이며 본부는 1967년까지 룩셈부르크에 있다가, ECSC의 집행기관이 유럽 경제공동체(EEC, European Economic Community) 및 유럽 원자력공동체( Euratom, European Atomic Energy Community)와 통합되어 벨기에 브뤼셀로 옮겼다. 이후 공동의회, 유럽 재판소등이 이후 회원사의 참여 증가와 함께 확장되었고, 2002년 50년 조약이 만료되었지만 ECSC의 모든 활동과 자원은 유럽공동체로 흡수되어 오늘에 이른다.   


 그런데 눈여겨볼 것은 70년대가 돼서야 뒤늦게 참가했다가 최근 브렉시트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영국의 가입, 탈퇴에 관한 것이다. 애초 영국은 EU구성 초기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전쟁의 후유증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지리적으로도 유럽 대륙에 속하지 않은 ‘섬나라’라는 이유도 한몫했다. 게다가 영국은 역사적으로 미국과 가까운 사이라 교역과 인력교류 등에 있어 유럽 대륙의 타 국가와는 상대적으로 다른 상황이었다. 연합이라는 것은 공동의 권리를 갖는 다자주의인 것에 반해 상대적으로 국력이 컸던 영국은 리더가 아닌 상태에서 독일과 프랑스 양국의 주도권 밑에 속하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비록 석탄의 생산 및 소비의 관점에서 산업혁명을 주도한 국가라는 역사에 자부심을 가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실리를 선택하였다.   유럽공동체는 초기의 동맹 주제가 희미해지는 가운데 참여국 간의 경제력과 정치구조의 차이, 그리고 과거 식민지국과 주변국들의 분쟁으로 촉발된 이민자의 급속한 유입 등으로 공동체 유지에 대한 회의를 가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중에 발생한 브렉시트는 유럽연합의 붕괴가 임박하지 않을 까라는 우려를 안게 되었다. 


 그런 중에 2020년부터 시작된, 실제적으로는 지난 20여 년 동안 꾸준히 준비해온, 기후변화에 대한 구체적인 국제적 논의와 함께 그간 참여국 간의 불협화음이 탈 석탄정책을 앞세우며 다시 연합하는 계기를 맞고 있다.  즉, 과거 석탄으로 대표되는 화석 연료에 대한 공동이해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유럽 사회는 새로운 에너지인 재생가능 에너지로 주제를 바꾸어 거대해진 국제경제 경쟁체계에서 연합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있다.  초기에 회원국을 대상으로 석탄, 철강업에 초국가적인 부가금을 부여했던 방식을 인용하고 확장해서 '탄소 국경 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발음을 잘못하면 탄소 폭탄(bomb)으로 들림^^)'를 제시하여 다시 유럽사회의 재건을 꾀하고 있다.  석탄의 정치경제적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모였던 유럽연합(EU)이 역설적으로 석탄을 기후변화의 악당으로 지목하여 퇴출시키려는 공동연대 주제로 다시 모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EU 탈퇴라는 모험을 감내하고 있는 영국은 탈 석탄 연합이라는 공통주제로 브렉시트 이후 다시 EU와의 연대 대열에 앞장서고 있다. 철저하게 자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EU와 영국을 보면서 역사의 반복성, 세계질서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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