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글(1) 씨앗글을 기반으로 글쓰기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얼추 30여 년 지난 일이다. 야학교사와 야학생들이 매달 방문했던 고아원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다. 당시 우리는 고아원 아이들의 글을 모아 문집을 만들어주려고 했다. 그때 들어왔던 원고 중 하나가 '오만원'이다.
'오만원'은 초등학생이 쓴 시(詩)의 형식을 띤 글이다. 그 '오만원'을 잊을 수 없다. 이렇게 오랜 기간, 시간이 지날수록 더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있으리라고는 당시로선 상상하지 못했다. 일종의 강박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이든 수기든 어떤 형식으로든 그 애닯고 안쓰러운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강박증 혹은 의무감을 가지고 산다.
오만원
나는 학교 갔다 돌아와도 반겨주는 엄마가 없다.
친구네 집에 가면 엄마가 숙제도 해주고 먹을 것도 해 주는 데
나는 엄마가 없다.
그래서 학교가 끝나도 집에 오고 싶지가 않다.
우리를 태우기 위해 학교 앞에 서 있는 고아원 봉고차가 나는 싫다.
친하던 친구들도 그 차를 보면 나를 놀리는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왜냐하면 우리 고아원에 개가 한 마리 생겼기 때문이다.
그 개의 이름은 참으로 많다.
바둑이, 복실이, 멍멍이, 누렁이, 스피치, 똥개...
내가 지은 그 개의 이름은 ‘오만원’이다.
우리들이 모은 돈 오만원을 주고 샀기 때문이다.
나는 오만원이 엄마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학교 갔다 돌아올 때 동구 밖까지 마중을 나오기도 하고
산 속을 돌아다닐 때도 우리를 지켜준다.
난 그 개와 같이 있으면 외롭지도 않고 겁이 나지도 않는다.
나는 오만원이 너무 좋다.
시 '오만원'을 계기로 우리는 친해졌다. 어느날 꼬마시인의 손을 잡고 두물머리로 소풍을 갔다. 두물머리에서 소년은 오래도록 강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강물을 바라보던 소년은 고개를 돌려 내게 질문을 던졌다.
"형, 나도 크면 이 강물처럼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꼬마시인은 지금 어디서 무엇이 되었을까? 헤어졌던 엄마를 만났을까? 어느새 청년기를 지나 중후반의 장년이 되었을 꼬마시인을 생각할 때면 으레 가슴 한 켠이 저려온다.
언젠가 그의 시 '오만원'으로 소설 한 편을 지어보리라 다짐했었다. 그 다짐이 지금껏 흉통으로 남아 있다. 굳이 소설이 아니라도 좋다. 어떤 형식으로든 내 가슴의 통증을 치유하는 글을 써보고 싶다. 30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오만원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이어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