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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햇살 Mar 12. 2024

[30대의자아찾기] 생각이 많은 나에게

후회하고 싶지 않은 욕심

네 마음은 어찌 그렇게 산만하냐?
왜 걸음을 늦추느냐?
여기서 숙덕이는 말이 무슨 상관이냐?   
  
지껄이도록 내버려 두고 내 뒤를 따르라.
바람이 불어도 그 꼭대기가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탑처럼 굳건해야 한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목표에서 멀어지니, 
한 생각이 다른 생각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단테 <신곡> 연옥 5곡     

  

  몇 달 전부터 독서 모임에서 단테의 <신곡>을 함께 읽고 있다. 지옥을 지나 드디어 연옥에 도착한 단테가 주변의 영혼들을 보며 두리번거리자 길잡이인 베르길리우스가 단테를 혼낸다. 이 구절을 보며 내 마음도 뜨끔했다. 내가 바로 ‘생각에 생각을 더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의 중요도를 막론하고 결정을 내릴 때 나는 생각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인터넷으로 물건을 살 때의 일이다. 남편의 경우 주로 이용하는 사이트에서 검색하여 바로 구매를 하거나, 다나와에서 검색하여 가장 싸다고 뜨는 사이트에서 구매를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 어떤 브랜드의 어떤 제품을 살지부터 고민의 시작이다. 여러 후기를 읽고, 가장 저렴한 사이트를 찾고(이때 단위당 가격까지 확인한다), 추가로 받을 수 있는 결제 수단 할인이 있는지 확인하고 구매를 결정한다. 이런 과정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돈을 더 주더라도 일부러 오프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결혼 전 엄마와 2박 3일 후쿠오카 여행을 계획하며 엑셀을 이용하여 모든 동선을 정리하고, 걸리는 시간을 확인하고, 맛집을 동선에 맞춰 지역별로 여러 개 알아두고, 체력에 따라 대처할 수 있는 여행일정 1안, 2안, 3안까지 만들어 두었다. 물론 각 여행 일정 변동에 따른 동선과 이동 수단, 비용까지도 정리해 둘 정도였다. 


 최근에 사업과 관련하여 공모사업을 하나 지원해 보려 서류를 작성하던 중 왜 이 일을 하려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빠진 적이 있다. 결국 서류 작성은 제대로 끝내지도 못한 채 여러 사례를 찾아보고 주변에 상담하며 고민만 하느라 며칠을 소비한 적이 있을 정도다. 고민을 하다 보니 처음 가졌던 목적의식이 흐릿해지고 물음에 빠져 제대로 행동하지 못했다.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     


 나는 왜 이렇게 고민이 많은 걸까?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고민의 이유를 파고 들어보니 결국은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기인했단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산 물건의 가격보다 더 싼 가격을 보고 후회하고 싶지 않은 마음, 모처럼 간 여행에서 헤매지 않고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마음, 잘못된 결정으로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나를 고민이 많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요즘은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20대 때 나의 삶은 후회로 가득했다. ‘수능을 좀 더 잘 쳤더라면’, ‘다른 전공을 선택했더라면’, ‘그때 그 회사의 면접을 좀 더 준비했더라면’ 등등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잘 해내지 못한 스스로를 언제나 후회하며 지냈다. 그러한 후회들이 쌓이고 이제는 더 이상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생활의 모든 부분을 쉽게 결정 내리지 못하게 됐다.       

    

 한때는 물건을 싸게 사는 기쁨, 여행을 준비하는 설렘, 미리 알아보는 준비성의 즐거움을 느끼며 이제야 결정 하나하나를 제대로 하고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정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고 생각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 순간 과부하가 걸렸다. 생각만 많으면 다행인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 인한 걱정도 많다. 걱정이 많으니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겹겹이 쌓인 생각 더미에서 고민만 하다 결국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삶을 좀 더 가볍게 살기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다 수집하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며 살아오는 생활을 이어오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것들은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금 더 싸게 물건을 살 거라며 폰을 들여다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놓치고, 정보를 모은다고 밤을 지새우다 다음 날 몰려오는 피곤함에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일도 허다했다. 그리고 바로 앞에 맞닥뜨리는 소소한 실리를 따지다 정작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인생의 큰 흐름을 놓치는 일도 많다.      


 베스트셀러인 김혜남의 <생각이 너무 많은 어른들을 위한 심리학>에서도 나와 같은 예가 나온다. '사람들은 불확실성에 대한 가능성의 요소에 집착하며 인생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쓸데없이 많은 정보를 모으는데 힘쓰지 말고, 한 번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미련을 버리고 내가 한 선택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후회하니 지금 당장 무엇인가를 하는 게 좋다'고 설명한다.   

   

 요즘은 예전만큼 쇼핑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 일부러라도 너무 많은 정보를 모으지 않으려 하고 있다. 대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행하는데 시간을 좀 더 쓰고,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인생이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참 명료한 일인데 이제까지 생각의 늪에 갇혀 좋아하는 것들을 놓치고 살았다 싶다. 고민을 더하는 삶이 아닌 고민을 제거하는 삶, 하고 싶은 것을 더하는 삶의 자세가 이제 내 인생의 근간으로 만들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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