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다정한 기억] 나의 첫 교토

교토에서 보낸 5주

by 겨울햇살

회색 기와지붕을 가진 목조 주택들이 눈 아래 펼쳐졌다. 낮은 건물이 많은 동네라 4층 높이에서도 마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교토에서의 여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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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을 앞두고 교내 여기저기 해외 연수프로그램의 홍보문이 붙었다. 그중 눈길을 사로잡은 일본 교토에 위치한 자매결연 대학교의 여름 단기 연수 프로그램이었다. 장학금 지원제도 덕에 자부담이 크지 않았고, 몇 년간 일본어를 배우고 있던지라 현지에 가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오 주라는 짧지도 않고 길지도 않은 기간도 마음에 들었다. 서류를 내고 면접을 본 후 초조하게 발표날만 기다렸다. 예상보다 면접을 보러 온 인원이 많아 혹시나 떨어질까 걱정되는 마음이 컸다. 결과가 궁금해 학교 홈페이지를 들락날락하던 날이 이어졌고 드디어 발표날,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다.




합격 후 처음의 순간들이 이어졌다. 첫 여권을 만들기 위해 부산시청에 갔다. 요즘은 구청에서 여권을 만들어 주지만 당시엔 시청에서만 여권 발급이 가능했다. 사진 규정이 까다로운지 모르고 예전에 예쁘게 찍어두었던 증명사진을 들고 갔다가 발급 거절을 당했다. 집에서 버스로 한 시간 거리인 시청까지 시간 내어 왔던지라 고민하다 지하에 있는 사진관에서 급하게 사진을 찍었다. 보정이 하나도 없는 우중충한 표정을 한 사진으로 십 년짜리 여권을 발급받았다. 출국을 며칠 앞두고 캐리어를 사기 위해 엄마와 함께 남포동 가방 거리에 갔다. 엄마는 작은 체구에 너무 큰 캐리어는 들고 다니기 힘들 것 같다며 남색 천으로 만든 21인치 캐리어가 적당해 보인다고 했다. 나도 엄마도 캐리어가 처음이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른 모델이었다. 출국 날 짐을 꽉꽉 채운 캐리어를 끌고 공항에 도착하니 나와 함께 일본에 가는 사람들 모두 나보다 큰 캐리어를 옆에 세워두고 있었다. 일본에 도착해 짐을 풀며 한 달 여정에 21인치 캐리어는 작은 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처음에서 비롯된 어색함을 감추고 나는 이전에도 해오던 익숙한 행위인 척하며 모든 순간을 몸에 새겼다. 준비한 건 고작 한 달짜리 옆 나라 일본 단기 연수였지만, 마음만은 해외 출장이 일상인 베테랑 직장인이 된 기분이었다.


일본으로 떠나는 날, 김해공항에 합격자 전원이 빠짐없이 모였다. 출국 전 교내에 모여 오리엔테이션을 하긴 했지만, 통성명하고 대화를 나눈 건 처음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열 명의 멤버 중 내가 가장 어리단 사실을 알게 됐다. 합격자 명단에는 나보다 아래 학년도 기재되어 있어 언니 노릇을 해야 하나 싶었는데 휴학, 늦은 입학 등 제각각의 이유로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평생 장녀로 살아왔던 내가 처음 막내가 되었다. 모두 성격이 좋아 보여 안심했다. 부산-오사카행 JAL항공에 탑승 후 안면을 튼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기내 서비스로 일본 기린 맥주도 받아 마셨다. 공짜 맥주 한 잔으로 일본이 나에게 성큼 다가온 기분이 들었다.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니 우리를 교토로 태워줄 승합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내 의연한 척하던 마음은 다른 나라 땅을 밟자마자 설레는 마음 아래로 사라졌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드라마에서 보던 풍경들이 눈 앞에 펼쳐지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두근대는 마음과 별개로 지리적 감각은 상실한 채 담당자가 안내하는 대로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모두 신기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낮은 건물이 많은 주택가에 도착했다. 사 층짜리 위클리 맨션이 우리의 숙소였다. 이 인 혹은 삼 인으로 나눠 방을 배정받았다. 원래는 사 층이지만 미신 때문이지만 오 층으로 표기된 방에 나와 언니 두 명, 총 세 명이 룸메이트가 됐다. 경계가 없는 원룸 형태의 방에는 욕조가 딸린 화장실, 작은 주방, 침대 세 개가 있었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교토는 대구와 같은 분지 지형이라 덥고 습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 걱정했는데 후덥지근하긴 했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첫날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한 방에 누워있으니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교토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오전에는 학교에서 일본어 수업을 듣고, 교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잠시 휴식을 가진 뒤 오후에는 학교에서 준비한 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교토의 명소를 방문하거나 화과자, 부채, 일본 과자와 같은 일본 문화와 관련된 체험을 했다. 학교에서 정해놓은 일정보다 나를 설레게 한 건 일상에서 느끼는 문화 차이였다. 경사진 땅에 지어진 모교의 캠퍼스와 달리 일본의 캠퍼스는 평지에 넓게 펼쳐져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오갔기에 교문 앞에는 자전거 주차장이 마련되었다. 교내 식당의 경우 한국보다 메뉴가 다양했고, 반찬의 무게를 달아 값을 계산하는 방식도 독특했다. 일본의 중요 문화재인 금각사가 학교에서 걸어갈 만큼 가까웠고 학교를 벗어나면 도보 거리로 여행 책자에 소개된 절들이 있었다. 교토뿐만 아니라 오사카, 고베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도 신기했다.

주말에는 언니 오빠들과 함께 교토와 가까운 오사카, 고베, 나라에 갔다. 태어나 처음으로 받아보는 막내 대접에 마음의 무게가 가벼웠다. 일본의 대학교에서 정해준 ‘버디’라 불리는 일본의 자원봉사 학생들은 우리 생활에 많은 도움을 줬다. 우리의 일정에 동행하기도 했고 함께 하지 않을 땐 여행 일정을 확인해 주기도 했다. 학교 관계자들은 우리를 ‘유학생’이라고 불렀는데 학생이란 단어에 ‘유’라는 한자어가 하나가 붙자 짧게 체류하는 이방인이 아닌 새로운 곳에 머무는 정착자의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현실은 곧 떠날 자의 신분이었기에 일본에서의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땡볕 아래 낯선 땅을 쉼 없이 걸어 다녔다.



걱정 없는 시간이었다. 엔저로 지갑은 두둑했고, 매일 발견하는 일본의 새로운 모습이 신기했으며, 수업을 잘 듣고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부담도 없었다. 그저 학교 일정에 잘 참여하고 아프지만 않으면 됐다. 지낼수록 다가오는 이별만이 아쉬울 뿐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삶을 통틀어 교토에서의 시간만큼 마냥 즐거웠던 때가 없었다. 심지어 하루하루가 아까워 열심히 돌아다보니 아킬레스건이 늘어나 병원에 가기도 했다. 병원에서 처방을 받고도 마음 맞는 언니들과 여행 책자에 나온 모든 곳을 가보겠다며 여행자라면 가지 않았을 소소한 동네 절을 돌아다녔다. 칠월의 여름, 아직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평범한 길을 걸어가며 마주쳤던 풍경과 힘들어도 불평하지 않았던 나와 동행한 이들의 마음이다.


교토에서의 오 주는 내게 가장 뜨거웠던 여름이자 가장 아로새겨진 여름이었다. 모든 것이 기억나지 않지만 많은 것이 남아있다. 몇 년이 흐른 후 다시 같은 장소를 찾아갔지만 그 때 느꼈던 감각이 살아나지 않았다. 아직 때가 묻지 않은 대학생이라는 신분과 처음이 줬던 환상의 막을 씌워봤던 세상은 다시 찾을 수 없었다. 햇살이 뜨겁게 비치는 한 여름의 하늘과 마주칠 때면 걱정 없던 교토의 여름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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