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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부자의 삶 : 음악의 자리

클래식 음악을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

by 겨울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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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가장 ‘힙’하다 느끼는 건 클래식 음악이다. 새로운 개성과 감각을 지닌 것에 붙이는 ‘힙하다’라는 말을 수백 년 전의 음악에 적용하는 건 역설적이다. 하지만 내게 클래식 음악은 지금 새롭게 만들어지는 어떤 음악보다 새롭고 독특하게 다가온다. 고전 소설에서 삶의 보편성을 발견하듯, 오래되어도 살아남은 음악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일은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는 기쁨이 아닌 천천히 얻는 성취에 가깝다. 그리고 지휘자와 연주자에 따라 곡 해석이 달라지는 특성 덕분에 클래식 음악은 긴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내게 ‘살아 있는 음악’으로 다가온다.


물론 현실은 다르다. 음반 시장에서 클래식 음악이 차지하는 비율은 1%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비주류성이 오히려 클래식 음악을 새롭게 만든다. 일상에서 가볍게 듣는 대중음악과 달리 클래식 음악은 아는 만큼 들리는 음악이다. 즉각적인 쾌감 대신 천천히 쌓아가는 탐색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작곡가의 시대적 배경이나 곡이 쓰인 맥락을 이해할수록 감동은 깊어진다. 클래식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은 예전보다 많지 않다. 하지만 그 덕에 클래식 음악을 듣는 일은 하나의 개성이자 태도처럼 느껴진다. 클래식을 듣는 행위 그 자체가 나의 영역을 구축하는 셈이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방법은 많지만, 내가 가장 선호하는 건 공연장에서 직접 음악을 마주할 때다.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아닌 현을 문지르고, 관에 숨을 불어넣고, 적당한 힘을 가해 두드려 만들어지는 생생한 음색은 현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고유한 것이다. 단독 연주회에서는 연주자의 해석을 감상하고, 실내악 공연에서는 각각의 음색에 맞물리는 지점을 즐기고, 교향악에서는 수많은 악기가 함께 만들어내는 거대한 힘에 빠진다.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으로 태어나며 그 순간 작곡가와 연주자 관객으로 이뤄진 삼각관계는 음악을 매개로 교차점을 만든다. 그 생생한 순간이 내가 계속 공연장을 찾게 하는 힘이다.


공연장은 과학의 집합체다. 음을 가장 효과적으로 반사하도록 설계된 벽, 사람의 체형은 물론 음의 흡음까지 고려하여 만들어진 개당 백만 원이 넘는 고도부끼 의자까지 모든 구조물이 오직 음안만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공연장은 특유의 분위기를 지닌다. 그래서 공연장에 발을 내딛는 것만으로 일상의 공기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듣고 싶은 공연을 찾아 예매한 후엔 한동안 연주될 곡에 빠져 지낸다. 스피커로 익숙해진 음악을 실제로 들으러 가는 길은 여행처럼 설렌다. 다른 공연보다 클래식 공연을 찾는 사람은 차분한 분위기를 지닌 사람이 많다. 그 분위기에 녹아들면 나 또한 조금은 우아해진 기분이 든다. 관객들이 자리를 채우고 조율 소리가 홀을 채우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오직 음악을 위해 설계된 공간이 건네는 경건한 분위기에 나는 매번 대접받는 기분을 느낀다.


공연장을 찾는 즐거움 중 하나는 혼자만의 감상을 낯선 이들과 공유하는 데 있다. 어디서 이렇게 다 모였을까 싶은 수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연주자의 음에 집중할 때 찾아오는 정적은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선다. 나만의 감동이라 여겼던 순간이 사실 모두가 느끼고 있음을 확인할 때면 묘한 동질감까지 느낀다. 오직 이 자리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흔적이 남기 때문이다.




건축가 조성익은 <건축가의 공간 일기>에서 뉴욕의 기차역을 우울할 때 찾았던 위로의 공간이라 말했다.

‘기차역에서의 사람 구경은 계절성 우울증에 특효약이었다. 나에게 필요한 공간은 혼자 처박혀 있는 동굴이 아니라 사람들의 소간과 분주함이 있는 광장이었다. (중략) 우리가 인간으로서 받을 수 있는 궁극의 위로는 결국 공간을 채운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기차역과 마찬가지로 공연장도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곳이다. 취향을 공유한다는 유대감을 안고 있기에 공연장은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공연장은 위로의 공간이었다. 십여 년 전 방황하던 청춘의 마음을 잡아준 것은 친구와의 만남도, 가족과 먹는 저녁도 아니었다. 바로 교향곡이 울려 퍼지던 대극장의 시간이었다. 특히 수십 명의 바이올린이 만들어내는 선율이 정교하게 맞아떨어질 때면 이상하게도 ‘잘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공연장에 앉아 음악이 내 귀에 닿을 때면 그저 음악을 듣고 있을 뿐인데도 더 나은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공연을 마음에 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졌음을 느꼈다


공연장에는 언제나 같은 공기가 머무른다. 그 공기 속에는 사람들의 기대와 유대 그리고 위로가 섞여 있다. 공연장에서 울려 퍼진 음악은 그 순간 사라지지만 내게 남은 기억과 여운은 계속 마음에 머문다. 공연장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만이 주는 응축된 순간을 즐기기 위해 나는 계속 그곳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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