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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Jan 27. 2024

경영상 괴롭힘과 노동자의 인격권

 작년부터 노동위원회에서 성희롱에 대해서는 사업주가 조치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시정신청을 할 수 있는 제도(고용상 성차별 등 시정신청)가 시행되고 있지만, 직장내괴롭힘에 대해서는 노동청에 진정을 내는 것만이 가능하다. 물론 부당한 인사처분이나 징계 등이 있는 경우 부당징계를 주장하며 노동위원회에서 이를 다툴 수 있기는 하다. 단체협약을 위반한 것이 아닌 이상 현재 부당한 해고나 징계처분을 한 사용자에 대한 처벌 규정도 없는 상태에서,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반복적으로 부당한 징계나 인사조치를 하는 것을 일반적인 징계나 인사조치와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고 해석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사용자에 따라서는 욕설이나 폭언과 같이 직접적인 가해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인사처분을 통해 지속적으로 노동자를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 사무직이었던 노동자를 생산직으로 발령을 낸다거나 수 십 번의 경위서를 쓰게 하는 경우도 있다. 평소 잘 개최하지 않던 인사위원회를 개최하여 형식적으로는 징계절차를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 인사위원회에 참석한 노동자로서는 여러 사람 앞에서 모멸적인 행위를 당하는 것 그 이상이 아니었다고 호소하는 노동자도 있다. 인사처분 결과나 징계 결과는 전체 게시판에 공개된다. 이러한 행위가 몇 년간, 몇 회씩 반복되고, 그 끝이 언제인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노동자는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 상담을 오신 분들 중에는 부당해고 구제신청에서 이겨 직장에 복직한 이후 괴롭힘이 너무 심해 사직했다고 하거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지만 회사에 다시 돌아가는 것은 힘들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른바 ‘가학적 인사관리’란 “직장 내외에서 직장 내의 지위나 다수의 우월성을 이용하여 특정 근로자나 특정 집단의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의식적․지속적․반복적으로 신체적·정신적 공격을 가하거나 소외시키는 일체의 행위로서 조직 및 경영상 목적으로 인사 권한을 수단으로 한 것”(양승엽·박수경, “직장괴롭힘과 경영·인사관리의 한계:노동인격에 대한 존중”, 「산업관계연구」(제28권 제2호), 2018. 6. 90면)을 일컫는다. 

 가학적 인사관리는 인사처분을 할 수 있는 사용자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러한 행위가 공개적으로 진행되면서 조직 내 다른 동료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2차 가해의 문제가 생긴다. 만약 이런 상황을 너무나 견디기 힘든 노동자가 출근을 하기 어려워 휴가를 모두 사용하고, 출근도 하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사용자에게는 안전배려의무가 있고, ILO가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노동기본권으로 추가하기까지 했으니, 노동자에게 작업을 거부할 권리도 인정될 수 있을까.

 가학적 인사관리와 유사한 개념으로 프랑스의 ‘경영상 괴롭힘’이 있다. “관리자가 특정 근로자를 따돌리려는 목적(즉 조직적 목적)으로 그에게 직접 지시를 내리지 않고 사내 게시판 또는 다른 직원을 통해 업무내용을 전달하였고, 피해 근로자의 직장괴롭힘 주장에 대해 이것이 그저 회사의 경영방식일 뿐이라고 항변”한 것에 대해 프랑스 대법원은 “상하관계에서의 경영상 조치가 반복된 행위로서 근로자의 존엄성과 권리를 해할 근로조건의 하락을 목적으로 하거나 그러한 결과를 초래할 경우 직장괴롭힘”이 성립한다고 판시하였다.(양승엽외, 위의 글, 90면, 2009년 일명 ‘HSBC France’ 사건) 프랑스에서는 직장내괴롭힘 문제를 ‘정신적 건강’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고, 이는 노동에 있어 노동자를 정신적 존재로서 확립하는 것으로, 노동자를 노동력을 제공하는 자로서뿐만 아니라 ‘신체와 정신의 측면에서 총체적인 존재’로서 파악하고, ‘완전한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서 인정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조임영, “직장내괴롭힘과 프랑스 노동법”, 「노동법논총」(제25집), 한국비교노동법학회, 2012. 9면 참조)

 하지만, 경영권이나 인사권의 존재를 지나치게 인정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노동자에게 어느 정도의 잘못이 있어 이에 대해 징계처분을 한 것이거나 경영상 필요한 인사처분을 한 것이라면 그 처분이 권리남용이 아닌 한 부당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휴가와 휴직을 모두 사용하여 출근을 하지 않는 노동자에게 작업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노동위원회나 법원이 해석할 가능성이 한국에서는 매우 낮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조금씩 바뀌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부당한 처우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인격이 침해당하면서도 노동력 제공을 위해 계속 출근해야 한다면, 그 노동자의 정신 건강과 권리는 어떻게 지켜질 수 있을까. 상담 오신 분께 ‘차라리 그 회사를 그만두시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그 진흙탕에서 나오시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요’ 라고 말씀드리지 않고, ‘끝까지 싸웁시다!’라는 말을 더 쉽게 드릴 수 있었으면 한다. 2021년 민법에서 자녀 징계권이 폐지되었다. 사용자의 징계권이나 인사처분권이 노동자의 인격을 침해하고, 민주적인 토대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면, 그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


* 위 글은 부산노동권익센터 이슈페이퍼 17호(2023. 10.)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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