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공동어시장에서는 우리나라 고등어의 90%가 거래된다고 한다. 하루 최대 10만 상자, 약 500만 마리의 고등어. 시퍼런 무늬를 번쩍이는 물고기가 쏟아지고 퍼덕이고 선별되는 풍경을 상상해 보라. 바다에서 끌려 나와 다시 바다를 이루는 풍경. 그러고선 바삐 선별되어 다시 전국 각지로 실려간다. 부산의 시장에서 가장 흔한 생선이 고등어인 것은 당연지사.
많은 이들이 가장 만만하고 익숙한 밥상 동무로 고등어를 꼽는다고 하는데, 글쎄, 나의 어린 시절 밥상에 고등어가 있었던가. 아마도 생선을 그리 즐기지 않은 우리집 밥상 취향 때문일 터이다. 어린 시절 주로 먹었던 생선을 떠올려보면 갈치나 가자미가 만만했고 조기도 가끔 먹었던 기억이 있는 걸 보면 DHA 풍부하다는 등푸른 생선을 즐기지 않는 미각에 비린내에 취약한 집안이었을지도.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고 고등어 같은 생선도 익숙한 건 아닌 거다.
아무튼 나의 기억 속에 고등어가 제대로 자리매김을 한 것은 대학 신입생 시절의 흔하고 만만하던 술안주로서이다. 이름하여 고갈비. 가벼운 대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을 잘 헤아려주던 그 시절 다정한 안주거리로 고갈비만한 게 없었다. 대학 앞엔 골목골목 낡고 저렴한 주점들이 많았고 거기선 당연한 듯 고갈비가 팔리고 있었으니까. 연탄불에 잘 구워 양념간장을 고루 끼얹은 고갈비 한 마리면 술 몇 병은 오고가고 온갖 이야기들로 시끌벅적했었다.
가시에 붙은 살을 바짝 구워놓으면 갈비처럼 맛있다 해서 ‘고갈비’라 불렀다는데, 저렴한 생선 한 마리로 이름이나마 갈비 먹는 기분을 냈으니 이름 하나는 참 잘 지었다. 갈비 대접을 받는 생선이 고등어 말고 어디 있기나 한가.
부산에 흔하던 고갈비집도 이젠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세월은 변하고 입맛은 바뀌는 것이니까. 생선 운반 기술이 늘어난 요즘은 오히려 고등어를 회로 즐길 수 있는 식당들이 종종 보인다. 푸른 비늘 빛내는 고등어들이 헤엄치는 식당 앞 수족관이 이젠 신기한 풍경도 아닌 시절이다. 기름이 흐르는 고등어회의 맛도 많은 이들이 즐기는 시대.
뭐, 그래도 고등어 하면 큼직한 무 넣어 양념에 푹 조린 고등어조림이 최고이지 싶을 걸 보니, 나이는 입맛도 바꿔 놓는가 보다. 준비해 간 양념으로 캠핑장에서 직접 구워먹던 고갈비 맛이 그리워 이번 주말에는 캠핑이라도 갈까 싶기도 하고. 오늘 저녁엔 포장주문만 받는다는, 입소문 난 동네 작은 고등어횟집에서 고등어회나 포장해다 먹을까 싶기도 하다.
어른의 입맛이 되고 보니, 요리 종류도 다양하게, 먹어치운 고등어 수도 적지 않지 싶다. 언젠가 고등어로 끓인 고등어추어탕도 맛있게 먹었었고, 고기 대신 고등어살로 만들어 DHA 풍부한 미트볼도 누군가 만들어줬던 것 같고, 생선구이집에 가면 잘 구운 고등어구이 한 마리는 기본으로 시키는 걸 보니, 나에게도 고등어는 친숙한 밥상 동무가 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