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산가옥의 유령 | 조예은 소설
공포소설은 긴장이라는 실을 따라 걷는 일이다.
그 실이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하게 이어져 있을 때 우리는 단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잘 짜인 이야기를 만났다고 느낀다. 많은 소설이 중반쯤에서 그 긴장을 놓치고 마는데, 조예은 작가의 이 작품은 끝까지 그 실을 놓지 않는다.
이야기의 무대는 오래된 적산가옥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그 집은 세대를 건너 손녀에게 남겨진다. 이야기는 그 손녀의 시점으로 시작해 곧 그 집을 지켜온 할머니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두 시선은 한 공간을 두고 서로 엇갈리기도 또, 겹쳐지기도 하며 이야기를 조금씩 당겨간다. 구조는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서 작가는 밀도 있게 감정과 분위기를 채워 넣는다.
서술은 빠르지만 거칠지 않고, 직설적이지만 얕지 않다.
작가는 독자에게 지나친 설명은 자제하며 읽는 이의 감각을 움직여 이야기를 쌓아간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그 집의 기온과 습기, 오래된 목재 냄새 같은 것들이 은근히 스며든다. 무언가 정확히 보이지 않는데도 등 뒤가 서늘해지는 감각. 그게 이 이야기의 힘이다.
두껍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은 아니지만, 드라마나 영화처럼 빠르게 소비되는 이야기도 딱 아닌 것 같은 밤, 조금 집중해서 감정의 결을 따라가고 싶은 밤. 이 소설은 그런 순간에 딱 맞는다. 밤 9시쯤 침대에 누워 두세 시간 몰입하다 보면 마지막 페이지에 도착하고 긴장이 서서히 풀리면서 잠자리에 들 수 있다.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마음 어딘가에는 묘한 잔상이 남는 이야기다.
이미 전작이(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KBS 드라마 스페셜) 드라마화된 작가이기에, 이 작품도 영상으로 옮겨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장면마다 시각적 상상력이 풍부하고 구성이 분명해 연출하기도 좋아 보인다.
읽고 나면 신나는 이야기. 공포는 사라지고 여운이 남는 이야기. 재밌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