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 / 정대건 장편소설
정대건 작가는 영화감독이자 소설가다. 그 사실을 모른 채 이야기를 읽어도 이 소설은 문장보다는 화면이 먼저 떠오르고 설명보다 감정의 흐름이 앞선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최근 한국 소설의 흐름이 이미지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인상을 자주 받는데 급류 역시 같은 느낌으로 읽힌다.
배경은 가상의 지방 도시 진평. 여름, 저수지, 계곡이다. 물로 둘러싸인 이 마을에서 열일곱 도담과 해솔은 만난다. 그러나 두 사람을 이어주었던 물은 곧 그들을 갈라놓는다. 깊은 계곡에서 벌어진 사고는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사랑은 나눌 수 없는 죄책감이 되고 연대는 마주할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는다.
소설은 도담과 해솔의 20대와 30대를 지나며, 시간이 흘러도 쉽게 마르지 않는 감정의 잔류를 따라간다. 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지만, 그날 진평의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간 자아의 일부는 끝내 회복하지 못한 채 남는다.
소설의 제목인 '급류'는 감정의 통제되지 않는 흐름이자, 시간의 거스를 수 없는 방향이며, 상처와 회복을 동시에 품고 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도담이 다시 물가로 돌아가는 장면은 상처를 대면하고 새로운 삶의 문을 드디어 열어내는 회복의 시작점이다.
이 이야기는 상처와 성장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작가는 영화감독 답게 해석이나 설명보다 ‘장면’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인물의 대사나 심리 묘사보다 응시와 침묵, 그리고 감정을 둘러싼 풍경을 통해 독자의 내면에 인상을 남긴다. 그 장면들은 독자의 기억과 겹쳐지며 더 깊이 각인된다.
급류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 흐름이 잠시 잔잔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