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가방과 진짜 이야기
미국에서 흔히 말하는 '페이지 터너' 소설들을 읽다 보면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참 이 나라는 각기 다른 인종과 문화가 각자의 시간을 살아낸 결과로 이렇게 기발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구나.'
미국의 가장 큰 강점이 다양성이라는 말은 너무 많이 들어왔지만 소설을 읽으면 그 말을 다시 실감하게 된다. 이질적인 것들이 그저 나열되는 게 아니라, 공존하기 위해 피땀 흘려 다져온 어떤 굵은 줄기, 보이지 않는 기조 같은 것이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에서도 그런 책들이 점점 늘고 있다. 무겁지 않지만 얕지도 않고, 기발하면서도 짜릿해서 한 번 잡으면 끝까지 휘리릭 읽게 되는 이야기들. '페이지 터너'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장르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 머지않아 심각하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로 읽을 수 있는 소설들이 더 많아질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책이, 특별히 소설이 꼭 심각해야만 좋은 이야기이고, 반드시 무거운 깊이를 가져야만 한다는 생각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일본 소설을 읽을 때는 '와, 이런 것까지 이야기로 만드는구나' 하며 극도로 분화된 관심사와 집요한 집중력에 감탄하게 된다면, 미국 소설을 읽을 때는 '이렇게까지 상상하는 게 가능하다고?' 하는 사유의 확장 자체를 즐기게 된다.
Counterfeit는 바로 그런 책이다.
스탠퍼드에서 사라졌던 중국인 동창과 수년 만에 재회하게 된 육아휴직 중인 변호사 애바. 까다로운 어린 아들, 늘 바쁜 외과의사 남편,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점점 지쳐가는 삶 속에서 애바는 동창 위니의 말도 안 되는 계획에 발을 담근다. 중국에서 들여온 특A급 짝퉁 가방을 실제 럭셔리 부티크에 가져가 환불을 받아내는 대담한 작전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계획이 들통 나지 않을 리 없다. 이 무모하고도 대담한 구상 속에서 위니와 애바가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미국과 중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가차 없이 드러내고, 꼬집고, 들쑤신다. 그런데 그 방식이 참 유쾌하다. 이건 전적으로 작가의 상상력과 필력 덕분이다.
다 읽고 나면 만화를 한 편 본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하게 신난다는 느낌도 남는다.
아마 이 책이 번역되어 한국에 출판된다면 미국에서처럼 큰 히트를 치기는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맛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이 문화를 하나하나 설명하면서도 재미를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래서인지 아주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았을 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한국어로 쓰인 작품을, 한국어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나는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책이다. Counterfeit.
뉴욕타임즈 추천 도서, 리즈 위더스푼 북클럽 선정작.
아무 생각 없이, 하지만 기분 좋게 휘리릭 읽기에 아주 좋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