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디컬 억셉턴스까지는 못 가겠고

(Radical Acceptance)

by 저나뮤나

드르륵, 드르륵.


꿈 속을 정교하게 파고드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을 깼다. 언제 잠든지도 모르게 잠든 어젯 밤, 전화기가 침대 바닥에 떨어진 채 드르륵, 드르륵 꿈에서 듣던 것과 같은 소리를 내며 몸을 떨고 있다.


전화기를 집어 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 팔을 뻗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했고, 그 두 가지 생각 때문에 이 글을 쓰고 있다.


1. 아... 투르키예에 있는 작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구나.

2. 아... 뉴욕에 있는 큰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구나.


무슨 일이라고 뭉뚱그려 썼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 머리속에서는 아주 극단적이 생각이 퍽퍽 터지는 중이었다. 전화기를 움켜쥐고 화면에 떠 있는 내용을 확인하기까지 아마 나는 덜덜 떨고 있었던 것 같다.


전화기를 확인하자 내 머릿속에 떠오른 그 어떤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한국에서 시차 계산을 잘못한 동생의 문자 메시지였다. 내용은 아주 싱겁고 일상적이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내 안에 무엇인가 심각히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통은 한밤중에 뜻하지 않은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깨더라도—내 과거를 생각해 보더라도—생각이 극으로 치달은 채 일어나지는 않는다. 보통은 "아휴, 이 밤중에 도대체 누구야!" 이 정도 아니겠는가.


나는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면서 일어난 걸까.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불안이 떠올랐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 앞에서 무력해진다. 그런데 이 무력함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받아들이는 것이라고들 한다. 나의 한계를, 나의 능력을. 얼렁뚱땅 받아들이는 정도로는 안 된다. 래디컬 억셉턴스 (Radical acceptance),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


좀 벗어난 이야기지만 이 지점에서 아들을 죽이러 산에 오르던 아브라함이 떠오른다.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야훼의 명령 앞에서 아브라함은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아들을 데리고 산에 오른 걸까. 내가 생각하는 래디컬 억셉턴스는 아마 그 정도인 것 같다.


문제는 나는 그렇게 못 할 것 같다는 내 한계를 안다는 것이다.


징징거리고, 겁에 질리고, 소심해지고, 멋없어지고, 구질구질해지고, 오락가락하는 아주 보잘것없는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머리로는 유일한 해방이 결국 다 받아들이는 것, 혹은 다 내려놓는 것이라는 사실을 수식처럼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다, 건방지게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정말 이해했다면 벌써 다 받아들였을 테니까.


자유롭고 싶다는 갈망과 도망치고 싶다는 절망과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소망이 뒤섞여, 서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서 있는 기분이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지는 않는다는 것도 안다. 내일이면, 아니 내일까지 갈 것도 없이 몇 시간 뒤에 또 다른 일이 생기면 "그래, 사는 게 다 이런 거지"라든가 "그래, 살다 보면 나아지겠지" 하는 식의 위안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떠오르고 사라지는 생각들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마라톤이라도 한 사람처럼 늘 지쳐 있다. 멋없게도.


생각이 가지런하게 이어지지 않는다. 일 다음에 이, 이 다음에 삼, 삼 다음에 사. 이런 식으로 차례차례 십이 되어야 하는데, 일 다음에 십, 십 다음에 백, 천, 만으로 생각이 날뛴다.


옳지 않다.


상황을 바라보지 말고 내가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나에게 집중하라는 이야기들을 한다.

진짜일까. 물음표를 붙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통제된다는 말인가. 그 대단한 경지에는 어떻게 오를 수 있는 건가. 나는 내가 제일 어렵던데.


어쩔 수 없이 지나가 버린 과거에 시선이 고정되면 우울이 생기고, 어쩔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은 불안을 만든다. 그래서 우울과 불안은 늘 함께 다닌다. 이름이 다를 뿐 뿌리는 같은 것들이다.


걱정과 불안의 강도가 내가 일상에서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를 자꾸 넘나든다.


미국에선 총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일 수도 있고,
누군가 총에 맞을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일 수도 있고,
지난 날의 억울한 사건 사고들이 아직 다 소화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책임은 있지만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내면의 상충된 목소리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INFJ라서 그럴 수도 있고.


그러니까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의 결론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쩌구 하는 거창한 래디컬 억셉턴스를 받아들이겠다는 얘기가 아니라, 내가 생겨먹은 모양을 받아들이고 싶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된다는 이야기다.


참으로 찌질하다는 생각이 멈추지를 않는다. 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