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느끼는 외로움의 근원은 모태와의 분리에 있다고 한다. 탯줄이 잘리는 순간 그전까지 완전한 합일의 상태에 있던 태아는 날카로운 단절의 상태가 된다. 하나같은 둘로 존재하던 인간이 혼자가 되는 탄생의 순간, 인간은 그 지점부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완벽한 "하나"의 상태를 갈구하게 된다. 사실 우리 중 누구도 모태 내에서의 완벽한 하나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다. 우리는 무의식에 잠겨버린 태아적 경험 때문에 기억도 못하는 어떤 상태를 끊임없이 그리워하게 된다.
하지만 그 경험 때문에 채워지지 않는 막연한 그리움이 인간을 외롭게 한다. 무엇이 합일의 상태인지 제대로 인식해 낼 수도 없으면서 우리는 외로움에 사무쳐있다. 외로움은 시도 때도 없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혼자 있어도, 여럿이 있어도 외롭다. 결핍감은 시도 때도 없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외로움의 또 다른 이름이다.
외롭지 않은 인간은 없다. 외롭지 않은 시간을 보내는 경우는 있겠으나 근원으로 돌아가보면 외로움은 늘 거기에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 했던 것은 외로움이며 시작점에 돌아가 보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 것도 외로움이다.
외로움에 얼굴이 있다면 그는 분명 웃고 있을 것이다. 태어나서부터 나와 함께 한 그는 나를 볼 때마다 반가워하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기억도 못하는 일체감으로 향할 때에도 우리와 함께하는 것은 외로움이다. 잃은 것을 바라보며 울고 있을 때에도 웃으며 내 옆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외로움이다. 외로움은 외롭지 않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이미 하나를 잃었다. 완벽한 일체감, 흠 없는 합일감이 그것이다. 그리고 외로움이 찾아왔다. 상실의 자리에 찾아온 것이 외로움이다. 그 자리는 외로움의 자리다. 일체감에 이어 외로움의 자리 마저 잃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고 보면 나와 평생을 함께 해 온 동지가 아니던가. 그 자리는 나의 동지에게 내어주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무엇인가로 부지런히 자신의 자리를 채워 넣으며 그를 쫒아내려는 나를 바라보며 외로움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모체와 분리된 날카로운 단절면에 외로움이 내려앉았다. 합일의 상실로 피 흘리고 있는 나의 상처를 외로움이 감싸 안았다. 더 이상은 외로움을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기로 한다. 그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며 나도 함께 웃어주기로 한다. 구연해 낼 수 없는 완벽한 합일이라는 허상을 뒤쫓느니, 나를 보며 웃고 있는 외로움과 연합하기로 한다. 그리고 물어보기로 한다. 너는 어떻게 웃을 수 있었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