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저나뮤나 Oct 29. 2023

외로움에 얼굴이 있다면 그는 분명 웃고 있을 것이다

인간이 느끼는 외로움의 근원은 모태와의 분리에 있다고 한다. 탯줄이 잘리는 순간 그전까지 완전한 합일의 상태에 있던 태아는 날카로운 단절의 상태가 된다. 하나같은 둘로 존재하던 인간이 혼자가 되는 탄생의 순간, 인간은 그 지점부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완벽한 "하나"의 상태를 갈구하게 된다. 사실 우리 중 누구도 모태 내에서의 완벽한 하나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다. 우리는 무의식에 잠겨버린 태아적 경험 때문에 기억도 못하는 어떤 상태를 끊임없이 그리워하게 된다.


하지만 그 경험 때문에 채워지지 않는 막연한 그리움이 인간을 외롭게 한다. 무엇이 합일의 상태인지 제대로 인식해 낼 수도 없으면서 우리는 외로움에 사무쳐있다. 외로움은 시도 때도 없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혼자 있어도, 여럿이 있어도 외롭다. 결핍감은 시도 때도 없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외로움의 또 다른 이름이다.  


외롭지 않은 인간은 없다. 외롭지 않은 시간을 보내는 경우는 있겠으나 근원으로 돌아가보면 외로움은 늘 거기에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 했던 것은 외로움이며 시작점에 돌아가 보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 것도 외로움이다.


외로움에 얼굴이 있다면 그는 분명 웃고 있을 것이다. 태어나서부터 나와 함께 한 그는 나를 볼 때마다 반가워하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기억도 못하는 일체감으로 향할 때에도 우리와 함께하는 것은 외로움이다. 잃은 것을 바라보며 울고 있을 때에도 웃으며 내 옆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외로움이다. 외로움은 외롭지 않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이미 하나를 잃었다. 완벽한 일체감, 흠 없는 합일감이 그것이다. 그리고 외로움이 찾아왔다. 상실의 자리에 찾아온 것이 외로움이다. 그 자리는 외로움의 자리다. 일체감에 이어 외로움의 자리 마저 잃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고 보면 나와 평생을 함께 해 온 동지가 아니던가. 그 자리는 나의 동지에게 내어주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무엇인가로 부지런히 자신의 자리를 채워 넣으며 그를 쫒아내려는 나를 바라보며 외로움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모체와 분리된 날카로운 단절면에 외로움이 내려앉았다. 합일의 상실로 피 흘리고 있는 나의 상처를 외로움이 감싸 안았다. 더 이상은 외로움을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기로 한다. 그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며 나도 함께 웃어주기로 한다. 구연해 낼 수 없는 완벽한 합일이라는 허상을 뒤쫓느니, 나를 보며 웃고 있는 외로움과 연합하기로 한다. 그리고 물어보기로 한다. 너는 어떻게 웃을 수 있었는지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빛이 있으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