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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나뮤나 Jun 08. 2024

총이 있어요 (3)

도서관 극한직업 (3.3)

"총이 있어요." 아이는 분명 자신이 총을 가지고 있노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시선을 끝내 다잡지 못한 채 아이는 자신의 불안함과 불안정, 그리고 어쩌면 폭탄까지 우리에게 남기고 떠난 것이다.


< 세 번째 이야기 >


영화에서는 총이 나오고 폭탄이 나오면 그다음은 사람들이 대피하는 씬이 나온다.  


총이 나왔고, 폭탄이 나올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아직도 도서관에 있다. 역시 현실은 영화를 압도하는 법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알기 힘들었던 우리는 드디어 경찰에게 물어본다.


"저희 도서관 셧다운 하고 대피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뭐, 그러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이를 찾은 후에 찬찬히 물어보니, 아이 말로는 플래시뱅을 숨겼다고 하더군요."


'플래시뱅? 그건 또 뭐야?'


완전히 길을 잃은 나는 주변에 모여 앉은 사서들을 바라봤다. 플래시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는 사서들의 표정을 읽으며 빠르게 눈을 껌뻑인다. 플래시뱅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서들의 표정은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 사서들의 얼굴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플래시뱅'으로 특정된 폭탄 얘기에도 가시지 않은 긴장이 역력히 드러났다.


'도망가야 하는 거 아냐?'


사서 한 명이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녀는 지금 우리 브랜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중이라고 빠르게 메인라이브러리에 보고하기 시작했다.


경찰의 느슨한 반응과는 반대로 메인라이브러리의 지시는 확실했다. 이용객들을 모두 내보내고 브랜치 문을 닫으라는 것이었다.


'응? 그럼 우리는...?'


빠르기만 한 지시는 느슨한 경찰의 반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퇴사한다고 해야 하나...'


머릿속에서는 온갖 최악의 시나리오들이 정신없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유언장을 아직 써놓지 않은 것이 후회되는 정도까지 생각이 뻗어나갔을 때 사서 중 한 명이 흩어져서 다시 한번 찬찬히 서가를 둘러보자고 했다.


'그러니까, 아이가 플래시뱅이라고 한 말이 100% 사실일 거라는 걸 어떻게 아시는 거라고요?'


'총이 있다고 그렇게 계속해서 말했으니 아마도 진짜 사용하려는 의도는 없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경찰이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던 플래시뱅(섬광탄)이 맞을 수도 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내 앞에서 터지면 어떻게 되는 건데. 왜 우리가 찾는 건데. 영화에 나오는 K9 ( canine, 폭발물 탐지견)은 어디 있는 건데. 아... 집에 가면 유언장을 일단 써야겠다.'


복잡한 마음으로 브랜치에 남아있던 우리들은 이미 경찰이 빠르게 훑고 간 서가를 샅샅이 살폈다.


한 시간이 넘게 도서관을 이 잡듯 뒤졌지만 다행히 폭탄도, 아이가 말한 플래시뱅도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칼이 두 자루가 나왔는데, 발견된 칼 두 자루를 앞에 두고 우리는 서로를 살폈다.


'이제 다음은 뭐지? 이 칼 뭐야...'


잔뜩 긴장했던 우리들은 각자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칼이 나왔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니 욕지기가 밀려왔다.


'하루종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도서관이 뭐 하는 곳이더라...'


다음날 휴가에서 돌아온 사서가 그 전날 있었던 일을 듣고는 경악하며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다음번에, 절대로 다음번이 있으면 안 되겠지만, 혹시라도 정말 운이 없어서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면,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세 가지 말만 기억해요. 전에 active shooter 관련된 세미나에서 들은 건데요, 이런 상황에도 적용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RUN, HIDE, FIGHT. 생명에 관련된 일인걸요, 무조건 도망가세요. 혹시라도 도망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 범인이 찾지 못하게 꽁꽁 숨어야 합니다. 도망가지도 숨지도 못할 상황이라면 그때는 싸워야 해요. 물론 누구도 싸우는 상황이 되기를 원하지 않지만요. 끝까지 여기에 남아서 폭탄을 찾아야 했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네요. 이런 일을 겪게 됐다니,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총이 나오고 칼이 나오고... 이미 충분히 복잡했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그냥 집에 가버리는 옵션이 있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유언장도 써 놓지 않은 내가 도대체 끝까지 남아서 무얼 하고 있었던 건가 싶었다.


그나저나 액티브 슈터 (총기난사범) 이라니.... 아니 이 사서님은 왜 그런 세미나를 들은신거지...? 우리 도서관에서 일하는 거 아니었어요? -_-;;;;


아... 극한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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