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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 Nov 26. 2021

믿음이 무기가 될 때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리뷰

*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나타나 죽을 날을 고지하고 그 시간에 지옥의 사자들이 나타나 그것을 집행한다. 이는 그들이 지옥에 가서 겪을 고통을 미리 보여주는 시연과도 같다.’


<지옥>은 이처럼 아주 단순하면서도 지극히 판타지적인 설정을 대한민국의 현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세계관’이라고 표현하는 것조차 과하다고 느껴질 만큼 드라마 속의 상황은 지금 우리 삶의 어느 부분과 무척 닮아있다. 아주 절망스럽게 잘 짜인 픽션 안에서 논픽션을 발견하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다. 한마디로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작품이 등장했다.



고지와 시연이 신의 뜻임을 주장하며 혼란한 사회를 틈타 세력을 늘려가는 ‘새진리회’, 그 진리에 반하는 사람들의 신상을 털고 무자비하게 테러하는 ‘화살촉’, 이에 맞서 고지를 받은 이와 그 가족들이 사회에서 죄인으로 낙인찍히지 않도록 돕는 ‘소도’, 이외에도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 맞서는 인물들까지. 6화 안에 굉장히 다양한 집단과 개인이 나오지만 모두 목적도 신념도 달라 하나로 일치되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나 새진리회와 화살촉은 언뜻 보면 공생관계 같지만 은은하게 서로를 깔보며 자신들이 더 인간적이고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스탠스가 깔려있어 그렇게 추잡해 보일 수가 없다.)     



1부(1-3화)를 이끌어가는 새진리회의 창시자 정진수 의장은 오랜 시간 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끌어안은 채 한없이 뒤틀려버린 인물이다. 고지를 받고 20년을 사는 동안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답을 찾지 못해 결국 ‘죄인’이라는 거짓 프레임을 씌우기에 이른다. 본인이 바라는 정의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누군가의 죽음을 이용하는 광인이 되고 만 것이다. 그렇게 지옥과 다를 바 없는 세상을 만들어놓고서, 시연 직전에 마치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장렬히 전사하는 사람처럼 구는 그의 모습이 2부에서 펼쳐질 이야기들을 더욱 두렵게 만든다.      



그러나 2부(4-6화)가 시작되면서 극의 분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차분해진다. 새진리회가 지배한 세상에는 어느새 그들의 교리에 따라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고 사람들은 믿든 믿지 않든 그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어차피 죄만 짓지 않으면 본인에겐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상식적이고 질서정연한 사회지만, 실은 겁에 질려 숨어들거나 침묵하고 있는 탓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들고 룰렛을 돌리는 것처럼 말이다.   

   


4화부터 등장하는 배영재PD 역시 이러한 세상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새진리회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게 언짢아도, 아내와 태어난 지 3일 된 아기를 책임지려면 어떻게든 사회에 발붙이고 있어야 하는 가장이다. 그러나 어느 날 그의 아기가 고지를 받게 되면서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믿어왔던 재난을 눈앞에서 마주하게 된다.      


심지어 아내이자 엄마인 소현은 갓 태어난 자신의 아기가 고지를 받았는데도 새진리회의 교리가 잘못됐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다. 그저 아기가 정말 죄를 지었거나, 본인이 지었거나, 무언가 착오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처럼 개인의 올바른 신념조차도 사회가 강요하고 학습시킨 그릇된 믿음 앞에 힘없이 무너진다. 우리가 옳다고 믿고 따라왔던 것들이 한순간에 신의 뜻을 거역하는 추악한 신념이 되었을 때의 공포를 <지옥>은 매회 다른 방식으로 마주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메시지가 어떤 장면에선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직설적이어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6화까지 모두 보고 나면 민혜진 변호사가 말하는 ‘사람들의 것’인 그 세상이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죄를 지은 자만이 고지를 받는 것이 아니라면 지옥의 사자들은 사실 어디선가 튀어나온 괴물인가? 천벌이 아니라면 살인이나 사고인가? 과연 인간은 이 알 수 없는 현상 앞에서 어떤 결론을 내린 채 살아가게 될지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의 상상력으로 그려낸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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