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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지 Jan 06. 2019

[4.5도] 엠티의 추억

술찌


 엠티. 대학생활의 꽃 같은 존재지만 내겐 즐거웠던 추억보단 그렇지 않은 추억이 많다.

 왠진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대학생 땐 한두 학번만 차이나도 되게 선배 같고, 세네 학번 차이나면 엄청 어른처럼 보였지 않나.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생 땐 신입생이든 왕고든 다 어린 건데. 나도 어렸고, 그들도 어려서 그랬나, 내 대학 엠티의 추억이 씁쓸한 것은.

 신입생의 적응을 위해, 과의 단합과 친목 도모를 위해, 추억을 만들기 위해, 명분은 참 좋지만 역시 대학 MT는 ‘멤버십 트레이닝’이라기 보단 ‘먹고 토하러’ 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술만 먹을 거면 왜 굳이 비싼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멀리 엠티를 가는 건지 난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이해하는 엠티의 존재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1. (술 좋아하는)사람들끼리 재밌는 추억을 쌓기 위해

2. 뭔가 큰 행사를 해야 단합이 된다는 한국인 특유의 허상

3. 맘에 드는 사람 술 맥이고 밤에 술 깨운다는 구실로 둘이 산책하기 등 청춘 연애사업 촉진)


 술을 못하거나, 성격이 내향적이거나, 유흥이 적성에 안 맞거나, 하는 동기들이 일찍이 작은방에 들어가서 자면 그 순간부터 그들은 없는 사람이 됐다. 방금까지만 해도 같이 떠들고 고기 구워먹고 사진 찍던 동기들인데 일찍 잠자는 방에 들어갔단 사실 하나만으로 이 무리 안에서 선이 그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술 마시는 큰 거실과 잠자는 작은 방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굵은 선 하나가. 여전히 거실에서 먹고 마시고 떠드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들끼리 엠티에 온 듯 보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잠자는 방 동기들처럼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떻게든 맥주 조금과 음료수로 재미없는 술자리를 아침까지 버텨냈다.


 술은 못 마셔도 선후배, 동기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맥주 조금과 음료수로 아무리 술자릴 버텨도, 결국 술을 잘 마시지 않으면, 분위기를 주도하지 않으면, 인기 있지 않으면, 그 자리에 오래 있을 수 없는 엠티.


 엠티를 통해 친해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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