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
사라진 노천극장에 가장 많이 마주 앉았던 사람은, 2학년 여름방학을 함께 보낸 기숙사 룸메이트 언니였다.
우리는 룸메이트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한 방에 같이 있는 시간이 적었는데, 언니도 나도 마음을 갈아 넣은 연애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가끔씩 함께하는 밤에는 부지런히 술을 찾았다. 노천극장에선 맥주, 학교 앞의 어둡고 시끄러운 바에선 이름도 모르는 독한 칵테일을 마셨다. 언니는 영어와 중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수재였고 나는 영어도 전공어도 헤매고 있었기 때문에 언니 옆에 붙어있는 것만으로 신이 났다.
그러다 우리가 영혼의 단짝이 된 건 언니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온 그 날이었다. 그날의 방엔 타이밍 좋게도 진작에 2년간의 CC를 끝냈던 내가 있었고, 우린 뭘 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러냐는 질문을 닳고 닳도록 했다. 아픈 언니를 앞에 두고 이별을 뱉었던 그 놈이, 내 앞에서 구여친과 통화를 하던 그 새끼가, 그리고 그 앞에서 아무 말도 못했던 우리가 밉고 또 미웠다. 이야기가 술이고 술이 안주였던 밤이 있었다.
큰 키에 예뻤던 언니의 팔짱을 끼고 강아지처럼 쫓아다니다 보면, 나는 어느새 신촌에, 해운대에, 대만에 있었다. 한 손에는 (난생처음 먹어보는)진토닉, 마티니, 중국 맥주를 들고서 계속 웃었다.
그 수많은 음주의 나날들의 안줏거리는 당연하게도 그날의 연애였다. 우리의 썸과 연애는 짧기도, 길기도 했지만 이야기는 끝이 없이 이어졌다. 이미 대학교 3,4학년이었으니 우리는 언니 된 자들로서 다리를 꼬고 앉아 쿨한 연애를 논했다. 때로는 한번에 여럿이라 A, B, C를 칭하지 않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고, 때로는 술김에 해버린 고백에 넘어온 그가 뒤늦게 부담스러워 고통스러워했다.
가벼운 감정이란 참 흥미롭고 쉬워서, 우리는 더 이상 사람이 어떻게 그러냐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많이 좋아하지 않는 우리는 언제나 승자였고, 괜찮을 수 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끌려가지 않는 일상이 처음이어서, 언니와 술 마실 때의 내가 제일 멋져 보였다.
그렇게 다치지 않는 2년을 보내고 우리는 멀어졌다. 일과 결혼이라는 진부하고도 멀쩡한 이유로. 나는 다시 사람이 어떻게 그럴까를 꺼내어 닦고 있지만, 더 이상 맥주 한 캔 따위에 누군가에게 울면서 묻지는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