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히 던져놓고 잊고 있던 사슬에 갇혔던 그녀와 나
고리
그녀를 벽장 속에 가두고 잊고 살았다. 철없던 시절, 도망갈 구멍도 없는 곳으로 쥐를 내몰았던 것 같다. 비난의 화살을 한 몸에 받으며 상황을 모면하는 데 급급했다. 반성보다 원망의 눈금에 초점을 맞추고 살았다. 한 발짝 물러나 보면 별것 아닌 것을. 배려의 싹이 돋아나기 전, 내 입장만 고집한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방심이 불러온 때 늦은 후회의 자국을 더듬는다.
버스가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작은 바위에서 미끄럼을 타듯 통통 소리를 내면서 어린 나뭇가지와 꽃들을 밟고 아래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신발이 어수선하게 널려 있고 너른 마루로 이어졌다. 들어서니 서늘함이 다가왔다. 영안실이 아닌가. 눈을 뜨니 꿈이었다. 삼경에 접어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 뒤척이다 보니 어느새 동이 텄다.
그녀가 떠났다. 아침 수저도 들기 전 지인이 울먹이며 전해왔다. 휴대폰을 든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간밤 꿈과 어제 병문안 갔을 때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엉키기 시작하며 혼란스러웠다. 듣는 이 없어도“미안해, 미안해”라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입속에서 터져 나왔다. 밥 한 끼 같이 먹자는 말을 들어주지 못한 죄책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녀와의 묶은 책갈피를 열어 본다. 은행에 입사하고 몇 해 지나지 않았을 즈음이다. 회의 시간에 고객 응대의 기본수칙으로 ‘반갑게 일어나 웃으며 맞이하기’를 강조하던 때였다. 본점 모니터 요원이 암행 감찰을 나오면서 사건의 신호탄이 던져졌다. 점심을 먹으러 간 사이 그녀가 내 자리에 앉으면서 불씨를 딩겼다. 고객으로 가장한 모니터 요원이 “신권 교환 창구가 몇 번 창구죠”라고 물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서 고객을 주시하지 않은 채 턱으로 저쪽이라는 시늉만 했다. 커다란 실수였다. 예금액을 늘리는데 주된 요인이었던, 창구 응대가 경영평가에 큰 비중을 차지하던 터라 충격이 컸다.
며칠 후 본점 회의를 다녀온 지점장의 호통이 떨어졌다. 내 자리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기억에 없는 일이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 했던가. 이유도 모른 채 책임자들의 입과 입으로 불어대는 칼바람은 나를 겨누었다. 다음 날 조회 시간에도 전 직원 앞에서 예금담당 차장은 “쓸개를 벽에 걸어두지 않고 출근하는 직원은 우리 직장에는 필요 없어요”라며 열변을 토했다. 은행장으로부터 지점장 책임자로 타고 내려온 분노가 돌무덤이 되어 나에게 안겼다.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다음날 사표를 가방에 넣은 채 출근을 했다. 은행 출입문에 들어서니 직원들이 수군거리는 것이 아닌가. 이유인즉 모니터 요원이 암행 감찰을 나왔던 때엔 내가 식당에 있었던 시간이라고 했다. 요동치는 머리는 회전을 멈추었다. 동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럴 줄 알았다고 했지만 위로되지 않았다. 정작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에게 다가가서 몰랐냐고 물었을 때, 입가에 멋쩍은 미소를 띠며 “지나갔으니 그냥 넘어가시죠”라는 대답이 전부였다. 능글능글한 어투에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나에게 씌워졌던 올가미는 벗었지만, 그녀와 사이에는 커다란 바위 하나가 걸쳐졌다.
그녀를 까맣게 잊고 지내던 어느 날이다. “그녀랑 밥 한번 먹어주면 안 될까요” 가까이 지내는 지인이 뜬금없이 내뱉는 말이다. 존재조차 잊고 있었던 사람이 아닌가. 대답이 내키지 않았다. 머뭇거리는 틈에 “그녀가 나쁜 병에 걸렸어요. 꼭 한 번 보고 싶어 한다”라며 지인은 힘주어 말을 잊는다. 순간 죽비로 내려치는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는 이제 겨우 이순耳順이 아닌가. 망설이지 않고 “그래, 날 잡자”라고 대답했다. 세월이 영글기 전 걸쳐져 있던 바위는 흔적이 지워진 듯했다.
회한의 눈물은 갈라졌던 논바닥에 홍수가 난 듯 멈출 줄 몰랐다. 그녀와 밥 정도 나누지 못한 채 병원 침대 앞에서 마지막 통곡을 나는 안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도 “후배를 이렇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라며 큰 소리로 눈물샘을 자아올렸다. 곁에 있던 시부모님도 애타게 찾던 선배가 와 주어서 고맙다며 흐느꼈다. 그녀의 가족에게도 나는 죄인이 된 듯,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아집에 사로잡혔던 나를 후려치고 싶었다. 심호흡 한번으로 걷어 낼 수 있었던 그 돌덩이가 뭐라고. 혼자서는 풀지 못할 숙제로 고통을 주었던가.
각인지사 불형어언 수인 지모 부동 어색
(覺人之詐 不形於言 受人 之侮 不動 於色)
차 중유 무궁의 미역 유무 궁수용
(此 中有 無窮意 味亦 有無 窮受用)
중국인들의 처세술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남의 속임수를 알면서도 말하지 않고 남에게 모욕을 받았더라도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 한 걸음 물러남으로써 오히려 상대에게 일격을 가할 방법이다. 타인에게 너그럽게 대하면 그 사람은 진심으로 당신을 존경할 것이다'는 말이 새삼 가슴을 흔든다. 실수를 덮어 주지 못하고 비난의 화살로 쏘아데던 나로 인해 가슴앓이했을 그녀를 생각하니 지혜롭지 못했던 처신에 낯이 붉어진다.
김밥을 유난히 좋아한다. 각기 다른 재료들이 어우러져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서로 거부하지 않고 고유의 맛들이 어울림이 좋아서 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는 깨닫지 못한 것 같다. 각기 다름을 인정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미덕을 새삼 깨우친다.
다르다고 뱉어내기만 했다. 돌이켜보면 그녀의 성격은 모난 구석이 없었다. 내심 바둥거리고 흑백을 따져가며 갈등하던 나와는 반대였다. 은행 업무는 당일 마무리되지 않으면 다음 날 고객을 받지 못한다. 계정처리 오류나 단 일 원의 착오도 용납되지 않는다. 간혹 동료 직원의 실수로 밤을 새우며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실수한 직원에게 그녀는 채근이나 원망은커녕 항상 밝게 대했다. 나는 그와 반대였다. 요주의 인물로 낙인을 찍은 채 경계의 시선을 놓지 않았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지 않은가. 아집 속에 갇혀 벽 속에 나를 가두고 산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상대에게 박하게 대하며 궁지로 내몰았던 건 아닐까. 남의 허물을 꾸짖지 말고 과오를 마음에 새겨두지 말라고 하였거늘. 무심히 던져놓고 잊고 있었던 마음의 사슬에 갇혔던 그녀와 나. 이생의 마지막 터널 입구에 이르러서 때 늦은 고리를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