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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ny Aug 01. 2022

서로를 미워하는 게 그렇게 나쁩니까?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를 읽고.

201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기존의 도구로 예측할 수 없는 정치 현상들이 터져나오자 세계는 혼란에 휩싸인다. 한 통계에 따르면 트럼프 현상을 설명하는 책이 약 100권 정도 출간됐다 한다. 초기의 주류이론은 ‘계급배반투표’이론이었다. 즉, 경제적 계급을 렌즈로 하여 기현상을 설명한 것이었다. 토머스 프랭크의 저서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민주당의 이재명 의원이 뭇매를 맞고 있는 멘트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이건 기본적으로 합리적 선택 이론에 기반하고 있다. 즉 인간은 합리적 선택을 하는 존재란 걸 기본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을 넘어오며 서서히 다른 설명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바로 “참여-정체성 이론”이다. 에이미 추아 <정치적 부족주의>, 야스차 뭉크 <위험한 민주주의>, 브라이언 클라스 <권력의 심리학>이 대표적이다.


인간은 본래 집단주의적 사고에서 자유로울  없다는 것이 요지다. 지난 200여년  인간의 계몽주의에 기반한 자유주의 이념이 오히려 예외적인 생각이라는 것이다. 섬뜩할만한 표현이 있었는데, 인간의 이성이 항상 합리적인 데에만 쓰일 거란 보장은 없다는 대목이었다.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이 본인들의 소속집단의 신념을 합리화하는  철저하게 작용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요컨대, 인간들은 그렇게 ‘변한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존재였다!



이 책의 전반부는 풍부한 참고문헌과 실험결과 등을 제시하며 인간에 내재되어 있는 부족주의, 집단주의적 정체성을 설명한다. 특히 최근 오남용되고 있는 ‘정체성 정치’란 용어에 엄밀한 잣대를 들이민다. 인간들은 모두 정체성 정치를 하고 있으며, 그 중 가장 강력한 동력은 바로 ‘정치적 정체성(당파성)’이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정치적 정체성(당파성)을 기저에 깔고 그 위에 인종, 성별, 지역, 종교 등의 미시적 정체성을 결합시킨다는 것이다. 이제 현실정치를 가로지르는 정서는 “내가 지지하는 당보다 반대쪽 당을 더 싫어하는” 정서이며, 정치는 이제 “스스로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어버렸다. 이게 현실이다.


후반부에는 미국정치 시스템의 오작동을 설명한다. 시스템의 오작동은 다음과 같다. 양극화한 대중들이 정치인들의 언행을 양극화시키고, 이를 본 대중들은 더욱 양극화된다. 이 악순환이 상호상승 작용을 일으킨다. 즉, 상대당의 증오스런 정치인은 유달리 나쁜 놈이어서 그런 행동들을 하는 게 아니다. 그 시스템이 ‘나쁜 놈들’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다. 시스템상으론 아무 문제가 없다.


따라서, 이제 미국정치는 “당파성은 강한데 정당은 약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은 비단 미국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한국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매 선거때마다 당헌당규와 정당 이름이 바뀌는 것은 정당이 약해진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인 것이다.


제목은 ‘why’에 방점을 두고 있으나, 책의 논지는 시종일관 ‘how’와 ‘what’이다. 현대 미국정치가 양극화의 길을 걷게 된 경위와 그 심각성을 촘촘하게 논증한 책이다.


우선, 이 책을 알게된 건 NYT의 필진이자 온라인미디어 Vox의 창립자 Ezra Klein이 쓴 책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정치 전문 저널리스트인데, 굉장히 날카로운 논평을 남기는 걸로 유명하다. 이 책을 빌 게이츠가 추천하더니 얼마전 버락 오바마도 여름휴가 독서 리스트로 추천했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스스로를 양극화 정서로부터 해방하는 방법으로, “전국단위 정치 뉴스” 소비 방식을 바꾸라고 제안한다. 우리 삶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지방자치 단위의 뉴스에 더 관심을 갖고 참여하자는 것이다. 내 삶과 관계 없을 뿐만 아니라, 일종의 ‘팀 스포츠’가 되어버린 중앙정치에의 과몰입은 결과적으로 내 정신건강에도 해롭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미국정치의 현황에서 한국정치의 잔상이 보였다. 최근 한쪽은 ‘핵관’들의 권력잔치, 한쪽은 ‘팬덤정치’에 몸살을 앓는 데 싫증이 나신 분들께서 읽어보심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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