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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고 Aug 30. 2024

별거 10년째(번외 편2)

첫째가 스무 살이 되었어요...

별거 시작할 때 초등학생이었던 딸이 스무 살이 되었다.


일본에선 18세 , 한국에선 19세가 법적 성인이 되는 나이지만

그래도 몇 가지 제한이 있기도 하니...

아이가 스무 살이 되기를 나는 정말 기다려왔다.

아이들과 조촐하게 와인과 케이크로 축하했지만

내 마음속은 축제가 열렸고,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나는 그동안의 일본에서의 추억을 앨범으로 만들어 선물했다.


내게 첫째가 스무 살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이들 말고 가족도 친척도 없는 일본땅에서 내가 다치거나 죽거나 하면

한국에서 가족이 올 때까지 아이들을 누군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동안 몇 가지 중요한 사항과 연락처를 적어서 목사님께 전해드렸고,

아이들에게도 이곳의 친구들의 연락처를 가르쳐주었다.

사망자의 계좌에서 돈을 인출하는 것이 어렵고 남편은 일본어를 할 수 없으니

나는 어린 딸에게 엄마가 사고가 나면 바로 돈을 인출하라고 하거나

현금을 집에 두었다. 통장의 비밀번호 등도 아이들이 외우기 쉬운 것으로 했다.


또,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엄마가 사고를 당해서 연명치료 등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가능한 연명치료 하지 않고 싶어 했다고 꼭 의료진과 가족들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그동안 아이들과 15년 가까이 일본에서 지내면서

모성애... 이런 것보다 일단 성인은 나 혼자, 두 아이는 미성년자라고 하는 것이 큰 부담이 되었다.

중요한 부분에 결정하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인은 나 혼자라서 나는 이제까지 해 본 적 없는 낯선 일들도 내가 다 할 수밖에 없었다. 체류자격, 이사, 전학, 각종 서비스 계약, 병원, 물건구입... 내가 알아보고 찾아보고 비교하고 아이들의 의사도 확인해 가면서 최선의 것들을 선택하고 또 실행해야 하는... 결과에 대한 책임도 내가 져야 했다.


누군가 같이 고민해 줄  이가 있으면 좋겠다.
누가 결정해서 나보고 하라고 하기만 하면 좋겠다.


물론 정말 그런 상황이 온다면 또 불만을 가질 것이고 자율과 자유를 원할지도 모르지만 아주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오직 내가 리더를 맡아야 한다는 것이... 정말 무거웠다.

나는 ENFP로... 현실적이지도 꼼꼼하지도 계획적이지도 않다. 너무 힘들어서 나는 매 순간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린 것 같다. 다른 성인들, 어른들, 부모들은 잘만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작은 것도 어버버 하니... 작은 실패들이 쌓여서 더욱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아이들이 일본에서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소외를 받은 경험도 있었기에 나는 더 촉각을 곤두세워서 아이들이 편안하고 당당하게 지낼 수 있도록 신경 썼다. 하지만... 가사와 아이들 돌봄, 생활환경조성을 우선할 수 없을 때가 많아서 나는 초조할 때도 많았고 미안해서 더 짜증을 낼 때도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아이들일 뿐이어서 대신 부탁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어서 자라서 성인이 되어주렴^^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학회에 가야 할 때는 꼭 누군가 성인에게 부탁해야 했다.

별거전에는 시부모님이 오시기도 했고, 친정엄마는 자주 오셨다. 아르바이트를 고용하기도 했고...

아이가 18세가 된 후에 한두 번 아이들 둘만 놔둔 적은 있지만

모든 식사나 간식 등은 미리 다 준비해 놓아야 했다.

이제는 성인이 된 딸이 카드와 핸드폰 앱으로 시켜 먹을 수 있으니

너무너무 몸과 마음이 편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기뻐하는 효도의 말은,


엄마, 내게 맡겨주세요!


라는 말이다. 딸은 상냥하고, 가치관과 신앙이 비슷하다.

대학생이 된 딸은 요새 센스 있게 <엄마, 내게 맡겨주세요!>라고 하며

내가 이거 한 번 알아봐 줘, 이것 좀 선택해서 주문해 줘라는 부탁을 잘 들어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딸과 아들의 성향이 매우 달라서 첫째에게 둘째의 케어를 맡길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네가 첫째니까 둘째에게 이렇게 좀 해줄래?라는 이런 이야기를 하기 어려웠다. 왜냐면, 첫째는 상냥하지만 예민하고 책임감이 강해서, 둘째에 대한 부탁을 하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아했다. 자유분방하고 자기주장이 확실한 둘째는 첫째의 성의와 선의에 대해서도 감사해하기보다는 불만을 표출하거나 만만하게 대하는 경우(네가 뭔데 잔소리? 이런 식;;;)가 많았다.(사춘기이기도 하고 ㅠㅠ )  

그래서 나는 아무리 힘들고 바빠도, 첫째에게 둘째에 대한 케어를 부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제 첫째가 성인이 되었고... 나는 첫째에게 당당히 말했다.

딸아! 이제 우리 집에 미성년자는 쟤(둘째)밖에 없어. ㅎㅎㅎ 우리 차세대의 꿈나무를 같이 돌보자 ㅎㅎㅎ동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한 마리의 불쌍한 어린양이라고 생각하고 같은 어른으로 함께 키워보면 어때? ㅎㅎ


첫째는 내가 무지 반대했던 휴학과 재수, 그리고 복학(열심히 도전했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어요;;)을 한 후, 나에 대해 더 협력적이다. ㅎ 둘째도 사춘기가 지나가서 그런지 요즘 둘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ㅎ


일본에 산다는 것... 평소에는 모르는데... 움찔할 때가 있다.

외국은 외국이다.


이제 스무 살이 된 첫째가 있어서... 나는 너무너무너무 든든하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그래도 아직 엄마 따라오려면 몇십 년은 멀었어! ㅎㅎ

할 수 있는 한 엄마가 지켜줄게♡

아니, 하나님께서 너를 지켜주실 거야. 너의 앞날을 축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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