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New Ancients 새로운 고대인들
Brand New Ancients '새로운 고대인들'
50페이지 남짓한 분량의 이 작품은 현대 시로 분류된다.
책의 표지에는 고대 로마인 같은 옷을 입은 네 사람이 줄지어 걷는 모습이 보인다.
한 사람은 장바구니를 든 채로, 한 사람은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로, 또 한 사람은 술에 취해 마지막 사람은 서류 가방을 들고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 네 사람은 분명히 한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들이 걷는 것이 꼭 그들이 원해서 걷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인상이 분명하게 풍긴다. 곧이어 그들이 나아가는 방향도 그들이 원하는 방향인가에 대한 의심을 품게 한다.
케이 템페스트.
이 아티스트를 아는 사람은 아마도 그 음악으로 아는 경우가 많다.
케이트 템페스트 Kate Tempest로 활동하다가 논바이너리가 되면서 케이 템페스트 Kae Tempest로 활동명을 변경했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Brand New Ancients의 영어버전에는 Kate, Les nouveaux anciens이라는 프랑스어 버전에는 Kae가 표기되어 있다.)
검색창에 그 이름을 검색해 보니 옛날 케이트 시절에 발매한 앨범에 대한 정보만 간단히 있을 뿐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요즘의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작가의 작품은 혼란한 세상에 깨어있지도, 잠들지도 못하는 내 마음을 읽어내는 듯했고, 시적이면서도 일상의 언어를 넘나드는 그 화법이 마치 나를 작은 배에 태워 태평양을 건너게 하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나를 뒤흔들었다는 표현이 더 쉬울까?
일 년에 적어도 한 권의 새로운 작품을 집필하고, 앨범도 꾸준히 내는 이런 예술가의 작품이 아직 한국어로 번역이 안되었다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고,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 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작가의 작품을 꼭 접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인이자 래퍼, 극작가인 케이 템페스트를 접하게 된 것은 그의 희곡으로 공연을 올리고 싶어 하는 내 친구의 소개로부터였다.
특별한 사람이 세상을 구하거나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바꾸는 이야기가 아닌, 지극히 평범하고 비루한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지나치게 정제되지 않은 채로 얽혀있는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내가 이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처음 접한 'Brand New Ancients' (새로운 고대인들)의 대목 중 지금도 가끔 꺼내보는 구절이 있다.
The gods are in the betting shops 신들은 도박장에 있다
the gods are in the caff 신들은 카페에 있다
the gods are smoking fags out the back 신들은 뒷골목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the gods are in the office blocks 신들은 사무실에 있다
the gods are at their desks 신들은 책상 앞에 있다
the gods are sick of always giving more and getting less 신들은 더 주고 덜 받는 것에 신물이 났다
the gods are at the rave -- 신들은 광적으로,
two pills deep into dancing -- 약 두알에 춤을 추고 있다
the gods are in the alleyway laughing 신들은 골목에서 웃고 있다
the gods are at the doctor's 신들은 병원에 있다
they need a little something for the stress 그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뭔가가 필요하다
the gods are in the toilets having unprotected sex 신들은 화장실에서 콘돔 없이 섹스를 하고 있다
the gods are in the supermarket 신들은 슈퍼에 있다
the gods are walking home, 신들은 걸어서 집에 간다
the gods can't stop checking Facebook on their phones 신들은 휴대폰으로 페이스북을 계속 확인한다
the gods are in a traffic jam 신들은 교통체증에 빠져있다
the gods are on the train 신들은 기차에 있다
the gods are watching adverts 신들은 광고를 본다
the gods are not to blame -- 신들을 탓할 수는 없다
they are working for the council 신들은 의회에서 일한다
now they're on the dole 그리고 그들은 실업수당을 받는다
now they're getting drunk pissing their wages down a hole 또 술을 마시고 변기에 월급을 싼다
the gods are in their gardens 신들은 그들의 정원에 있다
with their decking and their plants 그들의 갑판과 식물들과 함께
the gods are in the classrooms 신들은 교실에 있다
the poor things don't stand a chance 가난한 것들은 기회조차 없다
they are trying to tell the truth 그들은 진실을 말하려고 노력하지만
but the truth is hard to say 진실은 말하기 어렵다
the gods are born, they live a while 신들은 태어나 잠깐 살고
and then they pass away. 죽는다.
이 구절을 읽고 길거리로 나가 사람들을 바라보면 하찮을게 하나도 없다.
우리 모두가 신이다. 꾸역꾸역 살아가는 신들이다.
그러니 깨어나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과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