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쓸게 없다고?

글감이 나를 힘들게 할 때

by 환오

어리석은 자들이여, 글의 주제는 아무것도 아니다.

인생만이 중요할 뿐이다.

독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오직 인생이 자아내는 깊이와 강렬함이다.

우리가 다루는 주제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지만 경험이라는 우리의 피라밋 또는 인생에 대한 우리의 참여 정도에 의해 우리의 글이 보다 폭넓은 기반 위에 자리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판가름된다. 즉 인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연이 인간을 밖으로 끌어내어 그를 비추기 전까지는 자연은 인간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나에게 단순하고 값싸고 하찮은 주제를 달라. (주 1)


더 이상 쓸게 생각이 안 나면 어쩌지 라는 나의 고민에 소로우 아저씨가 뒤통수를 한대 쳤다.

아직도 멀었구나, 나는.

어느 책에선가 봤는데 작가라는 직업은 인생에 굴곡이 많으면 글감이 많아서 유리하다고 했다.

그 점에서는 나도 남들보다 앞선 출발선에 있지 않나 싶지만, 내 이야기를 탈탈 턴 다음에는?

무슨 이야기로 글을 써야 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이래서 인풋이 있어야 한다는 건가.

들어오는 게 없으니 나갈 것도 없겠지.


서두르지 말라. 너 개인의 일에 열중하라. 거북이를 생각하라. 여름, 즉 거북이 알이 부화되기까지 걸리는 6월과 7월과 8월이 지나치게 긴 시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마 그동안 너는 세상에 대해 절망한 나머지 근심하며 인생의 종말을 생각했을 것이고, 모든 것이 파멸로 치닫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연은 거북이 알이 부화되는 속도로 꾸준히 그리고 고요히 전진한다.

어린 거북이는 알 속에서 자신의 유아기를 보내며 알 껍질을 통해 세계의 존재 방식을 경험하고 배운다. 거북이의 알이 세심하게 구멍 가장자리에 놓여 있는 동안 인간은 급하게 계획을 실행하고 파멸해 간다. (주 2)


오늘부터 입 닫고 책이나 읽어야겠다.

소로우 아저씨 말대로 서두르지 말아야겠다.

고작 얼마나 했다고 나 자신을 과대평가하는가.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겸허히, 묵묵히, 나아가자.


<주 1,2> 소로우의 일기/헨리 데이빗 소로우/도솔/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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