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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얼굴'로 오랜만에 '혼영'

영화가 이렇게 좋은 거였군요.

by 환오

잊고 있었다.

내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2년 전에 아이들과 슈퍼마리오 영화를 마지막으로 극장에 가질 않았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으른' 영화를 본 지는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최근에 꽂힌 배우가 한 명 있다.

책을 낸 작가이자 출판사 대표면서 본업은 배우인 박정민.

그의 연기를 제대로 본 기억은 없다.

예전에 응팔 시리즈에서 보라한테 막말을 한 구남친 역할로 십분 출연에 악플만 3천 개 달렸다는 전설의 씬은 기억난다.

그는 이미 그때부터 작은 역할이더라도 관객들 눈도장을 확실히 찍는 연기 장인이었다.


오늘 특별히 남편이 영화 '얼굴'을 예매해 줬다.

얼마 만에 혼자 문화생활이던가.

그것도 좋아하는 배우의 연기가 보고 싶어 가는 거라 어젯밤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설렜다.


그는 '얼굴'에서 1인 2역을 하며 장님 역할까지 훌륭히 소화해 냈다.

이 역할을 박정민 아니면 누가 하지? 싶을 정도로 캐스팅은 완벽했다.

권해효 배우의 연기도 그가 쌓아온 수십 년의 내공이 무르익을 대로 익음을 스크린 위에서 남김없이 보여줬다.

스포는 하고 싶지 않기에 궁금하면 다들 영화가 내리기 전에 극장 가서 확인하시길 바란다.

눈치가 빠른 나는 처음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범인이 누군지 짐작되어서 영화의 긴장감은 좀 빠졌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범인이 누군지 밝히는 그런 스릴러 영화라기보다는 인물의 변해가는 심리에 초첨을 두면 훨씬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

그래서 아들 역과 젊은 시절 아버지 역까지 두 얼굴을 왔다 갔다 연기하는 박정민이라는 배우의 연기의 선에 더 몰입해서 봤다.


후반부로 갈수록 나도 모르게 입이 점점 벌어졌다.

극 중 아들역할을 하는 박정민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안타까운 마음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바로 극장 밖을 나갈 수가 없었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묵직했다.


제목처럼 '얼굴'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잘생기고 예쁘면 일단 50점은 따고 들어간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얼굴에 점수를 많이 주는 나라.

얼굴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사실 말뿐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것에 눈이 쏠린다. 나도 모르게 호감이 생긴다.

그렇지만 못 생겼다고 죄는 아니다. 멸시받을 일도 아니고 차별을 당해서도 안된다.

하지만 대중들의 심리는 은연중에 못 생긴 사람을 낮춰 보는 경향이 있다.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두 명이 세 명이 되면 군중들의 심리는 똘똘 뭉치게 된다.


영화 속 영희가 너무 불쌍해서 안아주고 싶었다.

영화 내내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도 예쁘게 묶어주고 싶었다.

안 못생겼다고, 그렇게 못생겼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못생긴 거라고.

영화 속에 있는 영희를 내가 손을 잡고 데리고 나오고 싶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추악함.. 진실을 알아도 외면해 버리는 사회..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도 영화 속 세상과 다르지 않아 씁쓸하다.

진한 영화 한 편이 가슴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이제부터 박정민 배우의 영화들을 처음부터 정주행 해야겠다는 강한 욕망이 꿈틀댄다.


아직 안 보신 분들 극장으로 고고하세요.
많은 것들을 생각해 주는 영화라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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