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단체방에 한 친구가 글을 올렸다. 최근에 개인 유튜브를 개설했다며 성원을 요청한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돈 드는 것도 아니어서 '좋아요'를 누르려고 하니 로그인을 하라는 안내 문자가 떴다. 굳이 회원가입까지 하면서 '좋아요'를 누르고 싶지 않아 단톡 방에 "로그인 없이 좋아요가 눌러지지 않는구만. 방법이 있으면 알려주시게" 하는 말을 올렸다. 곧이어 다른 친구도 "로그인 안되서..ㅠ 알써, 비번이 계속 틀려"라는 말을 올렸다. 잠시 후 유튜브를 개설한 친구의 "컴맹들!" 하는 답글이 올라왔다. 말투에서 불만이 느껴진다. 그 말투에는 덥수룩한 구레나룻을 비집고 나오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도 담겨있는 것 같았다.
대기업에서 해외지사장으로 근무하다 정년퇴직을 한 친구는 퇴직자금을 모두 쏟아부어 부암동에 게스트하우스를 마련했다. 음식 솜씨가 좋은 친구 부인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요리를 가르쳐주는 등 인상적인 추억을 심어줬다. 친구는 가이드를 자처하여 서울시내 곳곳을 안내하기도 하고 저녁에는 서울성곽길 북악산 코스를 같이 걷기도 하며 우리 역사를 알렸다.부부의 노력에 호응하여 다녀간 외국인들도 입소문을 내면서 'Lonely Planet(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여행 가이드 북)'에 소개되었고, 미국 CNBC도 '한국 은퇴자의 생활 (A second career as Airbnb hosts)'이라는 제목으로 40분짜리 프로그램을 제작해서 방영했다.
CNBC인터뷰 캡쳐 화면
어느 날 친구로부터 저녁에 서울을 출발하여 포항에 가서 회나 한 접시 먹고 일출도 보고 오자는 연락이 왔다. 참으로 뜬금없다 싶어 친구의 제안을 가볍게 거절했다. "못 이기는 척하고 들어주지 빼기는...." 하며 웃어넘기는 친구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밤잠을 설치며 포항을 다녀오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1톤 트럭을 장만하여 개인 용달업을 하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운영만으로는 생활비가 부족하여 부업으로 개인 용달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평생을 관리직으로 일했던 사람이 생계를 위해 짐을 싣고, 내리는 것뿐만 아니라 고객의 창고에까지 옮겨다 주는 고된 일을 하고 있었다.그러던 중에 아침까지 포항에 배달할 화물이 생기자 동행을 제안했던 것이다.
첫 번째 게스트하우스가 자리를 잡자 그는 조금 더 거창한 두 번째 게스트하우스를 꿈꾸었다. 화물을 싣고 전국을 누비면서 마땅한 후보지를 찾는 노력도 병행했던 것이다. 내게 포항에 가자고 제안한 이유도 자기의 사업구상에 대한 조언을 들으려는 것이었다.몇 달 뒤, 그는 강원도 고성의 화진포 인근에 게스트하우스를 계획하고 있다며 친구들에게 투자를 요청해왔다. 안타깝게도 친구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고성군으로부터 귀농귀촌 자금을 지원받는 데 성공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기쁜 일이 생겨도 잔망스러운 표현 없이 덥수룩한 수염 사이로 담담한 미소만 짓던 친구. 그는 힘들여 얻은 성공 경험을 귀농귀촌을 꿈꾸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유튜브에절차와 요령을 올려놓았다. 힘들여 얻은 노하우를 필요한 사람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려 한 것이다. 그런 친구의 부탁을 번거롭다는 이유로 '좋아요'나 '구독하기'를 눌러주는 것도 주저하다니....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도전하고 성공일기를 써나가는 그의 삶에 이제라도 '좋아요'를 꾸욱 눌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