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분이 멋진 카페를 차렸네요. 바깥 풍경도 멋지고 실내 분위기도 고급스러워요. 무엇보다도 커피맛이 좋네요."
손님이라곤 나밖에 없는 한가한 오후 시간. 구드레 근처의 식당 2층에 자리한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젊은 여주인에게 말을 건넸다.
"제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이런 카페를 차릴 수 있겠어요. 아빠가 도와주신 거예요."
"그래요? 아빠가 능력이 있으신가 봐요."
"이 아래 향우정이 아빠가 하는 식당이에요."
향우정이라는 이름을 듣자 생각은 추억을 더듬으며 먼 과거로 날아갔다. 아버지는 부여에서 서점을 운영했다. 그 시절 맨손으로 시작한 사람들이 다 그랬듯이 아버지도 많은 고생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점은 부여를 대표하는 규모로 성장했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외부활동도 많아졌다. 그 무렵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향우회관이라는 허름한 식당이 생겼다. 겉은 옹색했지만 음식 맛이 좋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부여 맛집으로 자리매김한 향우회관은 구드레 음식문화거리에 번듯한 건물을 짓고 이전하더니 향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옥호도 바꾸었다.
"예전 향우회관이 지금의 향우정이 됐군요. 그 무렵 내 부친도 그 근처에서 서점을 하셨는데..."
"아, 학원서림요? 저희 식당 앞에 있던? 저도 책은 거기에서 다 샀는데...."
"학원서... 림? 그 서점은 그때 새로 시작했고 당시 제일 큰 서점은 동아서점이었는데..."
"동아서점요? 들어본 적 없는.... 데?"
30세쯤으로 보이는 카페 여사장의 머릿속에 아버지가 운영하던 서점은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기분이 묘했다. 그 유명한 서점을 모르다니.... 부여에서 나는 '동아서점 아들'로 불리었다. 아버지가 서점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 다음에도 꽤 오랫동안 그렇게 불리었다. 그 동아서점이 사라진 것이다. 그럼 '동아서점 아들'이라 불리던 나는 누구?
카페를 나와 서점과 살림집이 같이 있던 옛집 앞으로 갔다. 집은 그대로인데 모든 게 바뀌었다. 서점 대신 자전거 가게가 들어서 있고, 나이 든 아버지 대신 나보다 젊은 남자가 보였다. 그곳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동아서점 간판이 보였다.아버지에게서 동아서점을 인수한 사람이 옮겨간 자리였다.간판이 걸려있는 건물엔 서점은 온데간데없고 빵집이 들어서 있었다. 마음의 양식이 일용할 양식으로 바뀌었나?
언제까지라도 이름이 전해질 것이라고 믿었던 동아서점은 간판만 남았다. 그 지위를 물려받은 서점은 학원서림이었다. 내 또래의 남자, 동아서점이 위세를 떨칠 때 처음 시작됐던 서점이 이제는 터줏대감이 되었다.흥망성쇠의 명암이 어김없이 작용한 것이다.
고개를 들어 간판을 바라봤다. 기세 등등했던 세월을 뒤로하고 처량하게 걸려 있는 간판. 이제 내 손으로 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