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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리단길에서 포석정까지

by 아마도난

요즘 경주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는 황리단길. 그곳에 있는 작은 식당에 들어서자 밝은 표정에 활기가 넘치는 3명의 젊은이가 맞이했다. 식탁 위에는 ‘우연히 들러 단골이 되는 곳’이라는 문구가 적힌 작은 팻말이 놓여 있었다. 팻말을 가리키며 “진짜예요?” 하고 묻자 그녀는 “그럼요!” 하며 싱긋 웃었다. 이 말이 단순한 말치레가 아님은 식사를 마치고 알았다. 그들의 표정에 자신감이 넘치는 이유도 이해됐다.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황리단길. 그들의 생각과 행동의 세계를 엿보려고 밤거리로 나섰다. 골목마다, 주차장마다 젊은이들이 타고 온 차량으로 가득했고, 음식점마다 대기표를 받아 든 젊은이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이 시간에, 이곳에서 나는 ‘옥에 티’였다. 찢어지고 물 빠진 청바지를 입었다고 젊은이들의 정서나 생각에 곧장 녹아들지는 못한 것이다. 나이 든 사람이 어설프게 그들을 흉내 내기보다는 비켜주는 게 옳은 듯하여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경주 남산에 오르기 위하여 길을 나섰다. 마침 남산 가는 길목에 포석정이 있다고 하여 들러가기로 했다. 인터넷 지도에는 포석정 가는 버스정류장이 황리단길에 있었지만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정류장 표지판을 찾을 수 없었다. 부득이 황리단길의 어느 가게 주인에게 물었다.


“포석정 가는 버스를 어디에서 타죠?”

“조 앞쪽으로 조금만 가면 버스정류장이 있어요.”

버스정류장 찾기는 묻고 또 물은 끝에 1Km쯤 앞으로 걸어가서야 비로소 끝이 났다. 뒤쪽으로 조금만 가면 됐는데 앞으로 가란 말에 하염없이 걸어갔다가 벌어진 촌극이다. 배차시간도 길어 숙소를 나선 뒤 1시간쯤 지나 비로소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택시 타면 5분 남짓 거리인데 1시간을 훌쩍 넘겨 도착한 것이다. 비록 힘들기는 했어도 이런 것이 ‘뚜벅이 여행’의 묘미 아닐까?


포석정은 무척 한가했다. 황리단길에 넘치는 젊은이들 가운데 이곳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하긴 돌로 구불구불한 도랑을 만들고 신라 왕족이나 귀족들이 둘러앉아 흐르는 물에 잔을 띄우고 시를 읊으며 화려한 연회를 벌였다는 흔적만 있는 곳에 무슨 궁금증이 있을까? 그보다는 역동적이고 화려한 곳에 마음이 끌리겠지. 고즈넉한 포석정을 둘러본 후 노천박물관이라 불리는 남산으로 향했다.


어느 시대에나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에게 반항적이었다. 게다가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가난할 것이라고 하니 생각이나 행동이 기성세대와는 크게 다르겠지. 그래서일까? ‘노인의 돈은 통장에서 숙면하지만, 청년의 돈은 돌고 돈다.’라는 말이 있다. 기성세대는 자산을 지키려고만 하지만, 신세대는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곳에 기꺼이 돈을 쓴다는 뜻이다. 젊은이들이 위험성이 높은 투자, 특히 가상화폐에 집중하자 워런 버핏은 ‘비트코인은 납치범에게나 어울리는 화폐’라고 경고했다. 이런 경고에 대해 젊은 세대는 ‘불안해진 기득권 부자의 음모’라고 받아쳤다.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젊은이들의 이런 태도를 틀렸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들은 자신만만해 보이는데….


100세 시대, 은퇴하고도 4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시대에 아이러니하게도 영파워가 거세게 몰려오고 있다. 이러다가 바뀐 세상에서 기성세대가 포석정처럼 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에게 외면받으면 어떡하지? 그렇더라도 새로운 주인공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 ‘우연히 들러 단골이 되는 곳’이라는 팻말을 식탁에 올려놓은 식당의 젊은이들처럼 그들 모두 긍정적이고 패기 넘치는 세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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