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고 조명이 들어오자 월영교의 화려한 자태가 드러났다. 휘영청 밝은 달 대신 달무리가 조명과 어우러지며 환상적인 풍경이 만들어졌다. 안동호 속으로 사라진 월영대를 강 위에 다리로 환생시키다니…. 발상이 놀랍다. 안동댐 수력발전소 입구에도 놀라운 작품이 있다. 메타세쿼이아와 전나무로 둘러싸인, ‘한국의 지베르니’라고도 부르는 낙강물길공원이다. 지베르니는 프랑스 파리에서 기차로 1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으로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가 머물며 수많은 걸작을 남긴 모네 정원이 있는 곳이다. 모네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녀오려 하는 그 지베르니를 닮은 공원을 안동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예끼 마을과 지례예술촌의 넘치는 끼가 분수와 수련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한국의 지베르니’를 만들어냈나? 아니면 유안진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어제의 햇빛으로 오늘의 풍경을 만들어냈나? 모네를 상징하는 수련으로 포인트로 삼은 것도 기막힌 착상이었다. 프랑스의 지베르니보다 더 지베르니 같은 이곳의 풍경에 반하고 분위기에 취해 오랜 시간을 보냈다.
우리나라의 추로지향(鄒魯之鄕 : 공자가 태어난 노나라, 맹자가 태어난 추나라와 같은 정신적 고장)이라는 안동을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전통의 원형질을 지켜 온 문화유산의 보고’라고 했다. 그래서 안동을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영주의 소수서원을 찾아갈 때만 해도 그저 관광지의 하나를 본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소수서원에서 멋진 인상을 받고 여행 계획을 바꾸었다. 영주의 무섬마을을 필두로 안동의 병산서원, 도산서원은 물론 군자마을, 하회마을 등 양반문화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닌 것이다. 그리고 안동에서 우리 전통의 원형질을 본 감동을 이어가기 위해 조만간 전국의 서원을 찾아다니는 서원 기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양반골 이미지가 강한 안동에 무속도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하회마을 한복판에 600살이 넘은 느티나무가 신목으로 자리한 삼신당. 하회별신굿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 삼신당을 양진당, 충효당, 북촌댁, 원지정사 및 빈연정사가 둘러싸고 있다. 양반과 무당이 공존하는, 그렇지만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 버젓이 양반골의 중심에 존재해 온 것이다. 이는 무속마저도 차별 없이 받아들이는 안동의 넉넉한 마음 때문은 아닐까? 유안진 시인이 말한 것처럼 ‘과거로서 현재를 대접’하는 도시여서 그럴 수도 있겠다. 이런 토양에서 무가(巫歌)인 ‘성주풀이’가 시작되었다.
성주야 성주로구나. 성주 근본이 어드메뇨. 경상도 안동 땅 제비원의 솔 씨 받아, 봉동산에 던졌더니마는 그 솔이 점점 자라나서, 황장목이 되었구나. 도리기둥이 되었네.
하늘나라에서 쫓겨난 후 제비를 따라 제비원에 도착한 성주는 제비가 물어온 솔씨를 전국에 뿌려 황장목으로 키워냈다. 그 황장목 가운데 자손을 번창하게 해 주고 부귀와 공명을 누리게 할 성주목을 골라 집을 지었다. ‘성주풀이’는 성주가 집을 짓는 노래이면서 복을 기원하는 ‘초복(招福)의 노래’인 것이다. 집을 새로 짓거나 이사하면 집을 지켜주는 성주신에게 집안의 무사태평과 번영을 기원하는 ‘성주굿’이 비로소 시작된 곳이다.
안동이 품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의 하나인 병산서원에는 서원 건축의 백미라는 만대루가 있다. 담백하고 단아한 모습이 마치 선비를 보는 것 같은 그런 건축물이다. 서원을 모두 둘러보고 입교당 툇마루에 앉았다. 만대루 기둥 사이로 보이는 병산과 낙동강이 그야말로 그림 같다. 물안개라도 피어오르면 선경에 와있다고 착각할 것 같은 멋진 풍경이다. 하염없이 만대루와 주변 풍경을 바라보다 문득 봉정사 만세루가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산서원의 만대루가 유생들이 공부하던 강당이라면 봉정사 만세루는 학승들이 공부하던 강당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두 건물은 지어진 시기도 비슷하다는데 성주의 후손이 지어서 그런 느낌이 들었나?
봉정사 미륵전 앞마당에는 자그마한 돌무덤이 있다. 절집 뒤에 있는 것은 봤지만 앞마당에 있는 돌무덤이라니…. 보기 드문 풍경이다. 그 옆에는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봉정사를 방문했을 때 이 돌무덤에 돌 하나를 얹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절집 마당에 돌무덤이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고, 여왕은 돌무덤에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불교가 우리 무속에 관대하다고 해도 이 모습은 이색적이다. 안동의 넉넉한 기운이 절집에 이런 풍경을 만들어냈나?
유교적 전통뿐만 아니라 무속이나 민속 등 다채로운 정신세계를 폭넓게 끌어안은 곳. 그곳이 안동이고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였다. 고루한 선비의 세계가 아니고 예끼 마을이나 지례예술촌 등을 만들어내는 카멜레온 같은 도시다. 그래서 부시 미국 대통령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도 기꺼이 이곳을 방문한 모양이다. 어쩌면 성주가 집을 지을 수 있는 소나무 솔씨를 전국 방방곡곡에 전파했듯이 안동 사람들도 우리 정신의 원형질을 멀리멀리 전파해 온 것은 아닐는지…. 유안진 시인의 ‘어제의 햇빛으로 오늘이 익는 여기는 안동, 과거로서 현재를 대접하는 곳….’을 읊으며 안동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