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장대하게 뻗어온 산줄기도 섣불리 강물을 가로지르지 않고, 표표 탕탕 흐르는 물은 산허리를 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산과 강이 태극처럼 서로 부드럽게 감싸 안은 곳에 물돌이 마을이 있다. 우리나라에 흔하지 않은 물돌이 마을. 그 가운데 3개가 경상북도 영주, 안동 그리고 예천 땅에 있다.
안동의 첫 이미지는 흐트러짐 없이 고고하고 꼿꼿한 양반의 모습이다. 도산서원이나 병산서원이 그렇고 하회마을이나 군자마을이 그랬다.
우리나라에서 문화재가 가장 많다는 안동. 그중 하나인 병산서원 입교당 마루에 앉아 만대루 너머 낙동강과 병산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멋지다. 병산서원의 기를 듬뿍 받고 강물이 감돌아 나간다는 하회(河回) 마을로 향했다. 하회마을은 태극형 또는 연화 부수형 땅으로 자손이 대대로 번성하고 걸출한 인물이 많이 나는 명당으로도 알려져 있다. 실제로 조선 시대에 하회마을에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99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햇볕이 무척 따가웠다. 지친 몸도 쉬게 하고 햇볕도 피하려고 만송정 솔숲으로 들어갔다. 선조 때 문신 류운용이 강 건너 부용대의 거친 기운을 완화하고 북서쪽의 허한 기운을 메우기 위하여 풍수적 비보(裨補)가 가미된 숲이다. 풍수라니…. 유교를 근간으로 하는 고고한 선비의 모습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긴 헛제사 밥이나 양반들을 희화화한 하회별신굿 등도 이곳의 유산이니 카멜레온처럼 다채로운 안동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강 건너 부용대에서 낙동강이 휘돌아 나가는 하회마을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예전에는 만송정 솔숲 옆에 나룻배도 있었고, 최근에는 섶다리도 있어서 쉽게 갈 수 있었다는데 지금은 먼 길을 돌아서 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아쉽기는 해도 예전에 봤던 모습을 되새김하고 하회마을을 떠났다.
물돌이 3남매의 둘째는 별명이 ‘작은 하회마을’인 영주 무섬마을이다.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관광안내소를 찾아 내부를 볼 수 있는 고택을 알려 달라고 하자 속절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밖에 자물쇠가 걸려있는 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니 보실 수 없고, 사람이 사는 곳은 양해를 받고 들어가 구경하시면 돼요.” 아무 집도 보지 못했다. 영주 선비촌에서 재현된 해우당 고택을 보고 난 뒤여서 그나마 아쉬움은 달랠 수 있었다.
마을을 구경하다 ‘초가 카페’라는, 무섬마을의 유일한 카페를 발견했다. 마치 조선 시대 주막 같은 느낌이 드는 곳으로 커피가 무척 맛있었다. “이곳에 있는 집은 다른 곳과 달리 모두 강을 바라보도록 지어서 어느 집에서나 강이 잘 보이지만 만죽재 툇마루에 올라서면 아주 멋진 내성천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문화해설사보다 그녀에게서 동네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무섬마을에는 다리가 세 개 있어요. 가장 왼쪽에 있는 다리로는 농사지으러 다닙니다. 가운데 다리는 영주에 장 보러 갈 때 주로 건너고 콘크리트로 지은 수도교는 어린 학생들이 학교 갈 때 주로 건넌답니다.” 카페에 손님이 거의 들지 않아 쥔장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문득 그녀가 바가지에 옥수수 튀긴 것을 가득 담아오며 말했다. “서울에서는 강냉이라고 하던데 여기에서는 튀밥이라고 해요. 맛있으니 좀 드셔 보세요.” 푸근한 시골 인심이 담긴 튀밥은 정말 고소했다.
쥔장이 추천해준 대로 일직선으로 놓인 외나무다리로 내성천을 건넌 후 둘레길을 걸어 ‘S’ 자 형태의 외나무다리를 통해 다시 무섬마을로 돌아왔다. 국토해양부가 지정한 ‘우리나라 아름다운 길 100선’이라는 찬사가 전혀 과장되지 않은 멋진 길이었다. 강물의 깊이가 무릎 정도밖에 안 되는데도 다리 위에 서니 은근한 현기증이 느껴졌다. 짧은 여행 일정 때문에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물안개가 환상적인 물돌이 마을’을 경험하지 못한 것은 내내 아쉬웠다. 카페 쥔장이 ‘손님은 고택 내부를 못 봐서 섭섭하겠지만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낯선 사람이 방문할 때마다 얼마나 번거롭겠어요? 이해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한 말을 되새기며 무섬마을을 떠났다.
물돌이 마을의 막내는 예천 회룡포다. 최근 여러 가수가 부르고 있는 대중가요 ‘회룡포’를 모두 들으며 회룡포를 내려다볼 수 있는 회룡대로 향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아찔한 비룡산 산길을 굽이굽이 돌고, 오르락내리락하며 팔이 뻐근해질 때쯤 목적지에 도착했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가 있었더라면 상당히 애를 먹을 뻔했지만 멋진 길이었다.
강줄기가 용이 휘돌아 가는 형태와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회룡포. 산자락과 강물이 태극 모양을 이루듯 휘감겨 서로 조화를 이루며 350도로 돌아나가는 모습이 가히 환상적이었다. 마치 예쁜 아가씨가 버선발이 보일 듯 말 듯하게 치마를 살짝 들어 허리춤에 가볍게 감은 모습 같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풍경에 슬픈 이야기가 빠질 수 있을까? 마의태자가 예천군 지보면 마산리에서 강 건너 용궁면 무이리로 가는 십리 길의 내성천을 세 번이나 건넜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세 번의 물’이 경상도 사투리로 ‘시물’이란다. 그래서 ‘시물건네(세 물 건너)’라고도 불린다. 물길이 유려하고 장대해서 세 번에 나누어 건넜나? 아니면 통한의 눈물을 흘리느라 세 번을 건넜을까? 마의태자의 마음이 어떻든 회룡포에는 질리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는 ‘직선은 인간의 것이고, 곡선은 신의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물돌이를 표현하는데 이보다 더 멋진 말이 있을까? 물돌이 3남매는 ‘산은 물을 넘지 않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라는 말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욕심부리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우리에게도 둥글고 유연하게 살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 그 속에서 오늘까지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