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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May 27. 2023

어쩌다 얻은 지식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오스트리아 그라츠의 에겐베르크 성. 궁도 아름답지만 주변을 둘러싼 정원도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정원 곳곳에 공작을 방목하고 있었다. 마치 이탈리아 밀라노 근교 이소라벨라의 하얀 공작을 떠올리게 해서 이탈리아 장인이 디자인한 정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궁에는 한스 울리히 폰 에겐베르크  공이 수집해 놓은 미술품을 전시해 놓은 미술관이 있다.

그라츠에 오기 전에 비엔나를 이미 들른 터라 에겐베르크 미술관에 별 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오산이었다. 소장품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많았고 대가들의 작품도 적지 않았다. 몇 개인지 알 수 없는 전시실을 지나다가 독일의 밤베르크에서 봤던 작품과 비슷한 작품이 이곳에도 걸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작품명을 살폈다. '루크레티아의 자살'이었다. 밤베르크에서 본 작품명과 똑같았다. 복사품인가 싶어 검색해 보니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이었다. 화풍이 비슷해서 같은 작품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루크레티아의 자살, 루카스 크라나흐, 에겐버르크 성 미술관
루크레티아의 자살, 루카스 크라나흐,독일 밤베르크



검색하는 과정에서 '루크레티아의 자살'이라는 작품이 많은 시대에 걸쳐 수많은 화가들이 그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렘브란트도 그렸고 알브레히트 뒤러도 그렸다. 궁금했다. 루크레티아가 누구길래, 그녀의 죽음이 무슨 의미길래 많은 대가들이 소재로 삼았을까?

섹스투스라는 인물이 있다. 로마 황제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의 아들인데 호색한이었다. 루크레티아는 뛰어난 미모를 가진 여인으로 섹스투스의 사촌인 콜라티누스의 아내였다. 사촌이 집을 비운 사이 섹스투스는 루크레티아를 범하려고 했다. 당시는 여인에게 정숙함을 요구하던 시절이어서 여인의 외도는 집안을 몰락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당연히 루크레티아는 섹스투스의 성폭행에 대해 저항했다. 그러자 섹스투스는 루크레티아에게 순순히 응하지 않으면 하인과 함께 죽여서 나란히 발가벗겨 놓겠다고 협박했다. 하인과 간통한 여인으로 만들겠다는, 그래서 집안의 명예를 떨어뜨리겠다는 협박에 루크레티아는 저항 의지를 잃고 만 것이다.

섹스투스가 돌아가자 루크레티아는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남편의 친구인 부루투스 등을 불러 성폭행당한 사실을 고백하고 복수 부탁한 뒤 단검으로 그 자리에서 자살했다. 부루투스는 루크레티아의 시신을 로마 광장으로 옮긴 다음 독재 왕권의 폐단과 섹스투스의 만행을 시민들에게 고발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로마시민들이 봉기하여 로마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루크레티아의 죽음, 에두아르도 곤잘레스


루크레티아의 자살이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와 더불어 루크레티아는 정숙한 여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렇게 극적이니 수많은 화가들이 소재로 삼으려 했겠지.... 같은 작가의 다른 그림을 똑같은 작품으로 착각했다가 엉뚱하게도 로마사의 한 토막을 알게 됐으니 나도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루크레티아의 죽음, Sodoma (본명, Giovanni Antonio de'Bazzi), 부다페스트 미술관


검색한 작품들을 다시 감상했다. 루크레티아의 심정을 상상하며 한 점씩 살펴보다가 갑자기 쓴웃음이 나왔다. 그 많은 작가들이 대부분 상반신을 드러냈거나 알몸인 루크레티아가 칼을 들어 자결하는 모습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가족, 친지를 모아놓고 그런 모습으로 죽었을까?

"젠장! 죽기로 작정한 여인이 상반신을 벗거나 알몸이 되었을까? 이건 작가들의 지나친 탐미주의지!"
나도 모르게 한 마디가 툭 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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