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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May 29. 2024

낯설지만 감동적이었던 파노라마 미술

스위스 & 튀르키예 여행

정복자 술탄 메흐메트 2세(Fatih Sultan MehmedⅡ). 그에게는 정복자(Fatih)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는다. 23세라는 젊은 나이에 콘스탄티노플(오늘날 이스탄불)을 함락시켰고, 발칸반도뿐만 아니라 아나톨리아 지방의 수많은 나라를 정복했기 때문이다. 특히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면서 로마는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는 메흐메트 2세가 이끄는 오스만튀르크가 대신했다. 바야흐로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초강대국이 등장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물 중에는 17세에 왕위에 올라 고구려의 영토를 베이징까지 확장한 광개토대왕이 이에 버금갈 정도가 아닐는지….


튀르키예 곳곳에는 ‘Fatih’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 많고, 메흐메트 2세를 기리는 유적들도 많이 남아 있다. 그 가운데 2009년에 문을 연 『파노라마 1453 박물관』이 있다. 정복자 술탄 메흐메트 2세가 난공불락이던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1453년을 기념하는 박물관이다. 지름이 38m에 이르는 거대한 원형의 벽면에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을 묘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고 총소리, 군인의 함성, 전투 음악 등 다양한 음향효과가 곁들여져 있다. 이곳은 외국인보다는 현지인의 관람이 월등히 많았다. 그들은 파노라마 그림을 보면서, 음향이 곁들인 동영상을 보면서 열광했다. 그들의 역사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되새김하며 환호하고 있었다.




이런 원형 파노라마 그림은 이스탄불에 오기 전 루체른의 『부르바키 파노라마 박물관(Bourbaki Panorama Lucern)』에서 보고 왔다. 프랑스와 프로이센이 전투를 벌인 보불전쟁이 시대 배경이다.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로이센은 당시 강대국이던 오스트리아에 이어 프랑스군마저 격파했다. 이때 프랑스군의 지휘관 가운데 한 명인 부르바키는 프로이센에 투항하는 것을 거부하고 스위스로 이동했다. 중립국이던 스위스는 프랑스군의 무장해제를 전제로 입국을 허락했고, 프로이센도 스위스의 국제적 지위를 인정하여 프랑스군을 더는 공격하지 않았다. 이 상황을 묘사한 것이 부르바키 파노라마 그림으로 스위스의 인류애 혹은 박애 정신을 담은 그림이다. 길이가 112m, 폭이 10m나 되는 대작이다.



규모에 압도되어, 정교한 그림에 감탄하며 감상하고 있을 때 어느 스위스인이 다가와 파노라마 그림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다. 순간 떠오른 것이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본 모네의 「수련」이었다. 하지만 대작이기는 해도 파노라마 그림과 비교할 규모는 아니어서 모른다고 대답하자 「부르바키 파노라마」 작품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마치며 파노라마 그림은 현재 전 세계에 10점 정도가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 자기가 직접 본 것은 러시아와 평양에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평양에는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과 북한군이 유엔 및 한국군을 물리친 것을 기념한 작품이 있다는 것이다. 낯선 형식의 그림인데 평양에도 있다고 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했지만 그가 말한 그림을 찾을 수는 없었다. 혹시 청천강 발전소 공사 현장을 그린 「청천강의 기적」이라는 집체화를 오해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과 한국군이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전세를 뒤집었듯, 중공군과 북한군도 「청천강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전세를 다시 뒤집었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는 파노라마 작품을 만들었을 가능성은 있다.



파노라마 미술은 그림의 크기가 방대해서 웬만한 사실을 모두 묘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듯하다. 이런 장점 때문일까? 캄보디아에도 앙코르 파노라마 박물관이 있다. 이곳에는 크메르 제국의 전성기인 12세기 앙코르 역사를 묘사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길이 120m, 높이 12.5m의 대작이다. 흥미로운 것은 북한의 만수대창작사가 그린 작품이라는 점이다.



베트남에도 있다. 『디엔비엔푸 역사승리 박물관』에는 「디엔비엔푸 전투」를 배경으로 이 360m, 이 20.5m, 지름 132m의 거대한 파노라마 작품이 있다. 세계에서 전쟁을 주제로 한 그림 중 최대 규모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한국전쟁 당시 「청천강 전투」 결과가 베트남의 「디엔비엔푸 전투」의 승리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있어 흥미롭다. 청천강 전투에서 중공군에게 노획된 미군 무기가 베트남에 전달되어 프랑스군과의 전투에 사용됐다는 것이다.





파노라마 미술은 역사적 사실을 주로 묘사하여 사람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듯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도 이순신 장군이나 국민적 자긍심이 높은 인물을 기리는 파노라마 작품 하나쯤 제작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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