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나누며 움푹 들어간 골든 혼(金角灣). 골든 혼은 해 질 녘이면 햇볕이 수면에 반사되어 황금빛으로 변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골든 혼을 가장 멋지게 볼 수 있다는 피에르 로티 언덕에 가기 위해 에미네뉴 역에서 트램을 탔다. 해안을 따라 운행하는 트램은 출발한 지 15분쯤 지나 에윱술탄 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가까운 에윱술탄 모스크는 메카, 메디나 및 예루살렘과 더불어 이슬람 4대 성지의 하나로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피에르 로티 언덕은 나지막한 산으로 에윱술탄 모스크에서 오스만제국 때부터 만들어진 ‘고급 공동묘지’ 사이를 20분쯤 걸어 올라가면 닿을 수 있다.
이곳에는 슬픈 이야기가 서려 있다. 프랑스 해군 장교이면서 소설가, 수필가였던 피에르 로티(본명, 줄리앙 바오, 1850~1923)는 이스탄불 주재 프랑스 상무관으로 근무하면서 ‘아지야데’라는 튀르키예 유부녀와 사랑에 빠졌다. 그들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밀어를 나눈 곳이 바로 이 언덕이다. 주변에 공동묘지가 많아 찾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3년의 임기가 끝나고 로티가 이스탄불을 떠난 뒤 아지야데는 ‘명예 살인’을 당했다. 명예 살인은 이슬람 사회의 관습으로, 가문의 명예에 먹칠했다며 가족이나 친족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말한다.
해군 장교로서 프랑스 식민지 및 세계 여러 지역을 다니던 로티는 일본에서도 근무했다. 당시 35세의 로티는 18세의 일본 여성 오키쿠상과 한 달 동안 계약 결혼을 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1887년에 『국화 부인』을 발표했다. 이 시기는 유럽이 일본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한 ‘자포니즘’에 휩싸이던 때였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로티의 『국화 부인』은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탄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로티는 임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여인을 만났다. 영국 해군에는 ‘지브롤터 해협을 넘어가면 모든 해군은 독신이다.’라는 이야기가 있다는데 로티도 해군답게(?) 많은 지역에서 다양한 여인들과 사랑을 나눴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토대로 소설을 썼다. 타히티의 풍치와 관능을 그린 『로티의 결혼』, 세네갈 사막에서 작열하는 애욕을 그린 『아프리카 기병』 등의 작품이 그것이다.
7년 만에 이스탄불로 돌아온 로티는 그녀가 명예 살인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자책하던 로티는 국적을 튀르키예로 바꾸고 둘이 사랑을 속삭였던 언덕에서 글을 쓰며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1879년에 발표한 그의 첫 작품은 첫사랑의 열애를 담은 『아지야데』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총 37편의 소설이 이곳에서 완성됐다.
첫사랑을 가슴에 묻고 살았던 그의 집이 지금은 피에르 로티 카페로 바뀌었다. 골든 혼의 뛰어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애절한 로맨스가 깃들어 있어 많은 연인으로 북적이는 명소가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다정하게 골든 혼을 바라보는 연인들을 볼 때마다 로티와 아지야데가 되살아난 것처럼 느껴졌다. 또한 정복자 술탄 메흐메드 Ⅱ세가 이곳 어디쯤에서 기상천외한 작전으로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는 장면도 떠올랐다.
이스탄불 여행을 떠올리며 커피 한 모금을 머금었다. 쌉싸름하다. 피에르 로티 카페에서 마신 커피의 향도 이랬던가? 문득 커피 향을 타고 로티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작품을 쓰려면 사랑부터 하라고!
*** 자포니즘(Japonism)은 19세기 중-후반 유럽에서 유행하던 일본풍의 사조로 이를 예술 안에서 살려내고자 하는 운동을 지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