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에 다니는 친구가 이스탄불 지사장으로 발령이 났다. 이스탄불? 터키? 세상에 이렇게 부러운 일이! 이 소식을 듣고 나니 터키 여행을 하던 몇 년 전 모습들이 슬며시 떠 오른다. 사실 터키는 여러 번의 우여곡절 끝에 계획한 지 3년 만에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처음에 세운 터키 여행 계획은 출발 이틀 전에 허리 디스크로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취소했다. 그 이듬해에는 아버지가 유명을 달리해서 포기해야만 했다. 세 번째 계획을 세우고 나서야 터키 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터키 여행이 더욱더 기억에 남게 되었나 보다.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무슨 까닭인지 터키는 모든 면에서 우리보다 한 수 아래라는 근거 없는 선입관을 갖고 있었다. 이런 맹목적인 우월감 때문인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월드컵 4강에 올라 전국이 감격의 도가니에 빠졌지만 나는 터키에 패하여 4위를 했다는 사실에 못마땅했었다.
터키행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도 터키에 대한 편견은 사그라지지 않았었다. 터키에 도착한 첫날, 헬레니즘 시대에 전성기를 누리고 기독교의 성지중 하나가 된 에페소 관광을 필두로 터키 여행이 시작되었다. 헬레니즘 및 로마시대 건축물인 대형 원형극장, 도서관, 대규모 공중화장실 등의 유적이 폐허 속에서도 뚜렷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놀라웠다. 터키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터키에서의 첫날 에페소에서 큰 충격을 받은 나는 ‘목화의 성’이라는 뜻을 지닌 하얀 석회층의 파묵칼레와 그 위에 세워진 거대한 로마시대 도시 히에라폴리스를 보고 나서는 터키에 대한 편견이 눈 녹듯 사라졌다. 위대한 자연과 뛰어 난 문화적 전통을 지닌 터키의 속살에 압도되기 시작했나? 파묵칼레는 세계문화유산과 자연유산지역으로 동시에 등재된 전 세계에서 유일한 곳이라고 한다.
이후에도 터키는 카파도키아와 같은 매력적인 자연유산을 많이 보여줬지만 나는 문화유산에 더 강한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감성적이기보다는 차가운 이성을 갖고 있고, 사람 사는 모습에 더 관심을 갖는 성격이 숨겨지지 않는가 보다. 아니면 인종학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 터키와 우리나라는 뿌리가 같다는 말을 많이 들은 탓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여행하면서 터키와 우리나라 간의 동질성을 찾아보려고 무의식 중에 사람들을 유심히 살피며 다녔던 듯싶다. 그렇게 그들의 생활을 쳐다보다 우습게도 ‘빵’에 푹 빠지고 말았다. 덕택에 터키 체류기간 내내 케밥 같은 터키 음식은 맛보기 정도로만 먹고 그저 빵만 찾았다.
“이런 제길 또 군침이 도네!” 터키 사람들 참 순박했다. 수줍은 듯 외국인을 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폴론 신전의 유적이 있는 시데를 둘러보고 실크로드를 따라 콘야로 이동하다 휴게소에 들렀다. 그곳에서 고등학생쯤 되는, 과일을 파는 어린 아가씨를 만났다. 여러 가지 과일을 파는데 낯선 것이 대부분이어서 과일 이름을 물었더니 터키 말로 대답한다. 알아듣지 못하는 표정을 지으니 갑자기 어디론가 가서 젊은 남자를 데리고 온다. 휴게소에서 영어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란다. 그래도 대화가 안 된다. 내가 그 과일의 영어 이름을 모르니까. 과일 이름을 놓고 대화하는 우리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던지 갑자기 과일 파는 아가씨가 까르르 웃는다. 그다음부터는 웃음을 멈추지 못한다. 웃음보가 터져 버린 것이다. 때 마침 가이드가 다가왔다. 가이드를 보는 순간 장난기가 발동하여 가이드를 사이에 두고 그 아가씨에게 말을 걸었다.
“서울 알아?” “네, 알아요.” “그럼 나하고 서울 갈래?” “좋아요!” “진짜?” “진짜!” “좋아! 지금 당장 가자!”
아가씨의 손을 잡고 버스로 가는 시늉을 했더니 눈이 똥그래진다. 놀랬나 보다. 꼭 울 것 같은 그 표정 때문에 한참을 웃었다. 이 어린 아가씨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해서 버스에 오르기 전에 과일을 두둑이 사서 이동하는 버스에서 나눠 먹었다. 내가 물어봤던 그 과일은 무화과였다.
콘야에서도 기억나는 일이 있었다. 서둘러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도시 구경에 나섰는데 마침 호텔 가까운 곳에 재래시장이 있어 그곳으로 갔다. 시장 앞의 주차장을 지나는데 갑자기 “빠앙”하며 자동차 경적음이 들린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웬 터키인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바라본다. 다시 몸을 돌려 가려는데 다시 “빠앙”하며 경적음이 울린다. 또 그 친구다. 인상을 찌푸리며 쏘아봤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친근감의 표시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나도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니 아주 좋아했다.
동지중해 최고의 휴양지 안탈리아와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카파도키아 관광을 마치고 이스탄불에 왔다. 터키 여행의 핵심에 이른 것이다. 소피아 성당, 블루 모스크 등의 종교시설, 화려하고 웅장한 궁궐들, 지하도시 등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다. 수도 없이 많은 외국인들로 하여금 이 나라에 관광 오게 하는 나라. 대단했다. 그리고 부러웠다. 그러면서 “우리 조상님들은 무얼 하셨나? 이런 거 하나 남겨 주지 않으시고.”하며 잠시 원망도 해 봤다. 뜨거운 여름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이스탄불의 이곳저곳을 하나라도 더 볼 요량으로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렇게 길을 걷는데 웬 사내가 다가와 담뱃불 좀 빌려 달라고 했다. 말없이 1회용 라이터를 건네줬더니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 하니 “오! 형제의 나라” 하며 반색을 한다. 라이터에 새겨진 글자가 한국말이냐고 물어 그렇다고 했더니 기념품으로 라이터를 달라며 대답도 하기 전에 주머니에 넣고 휴대용 성냥을 대신 준다. 순간 그의 무례함에 화가 나서 단호한 표정으로 라이터를 돌려 달라고 했더니 이 친구 당황한 표정으로 라이터를 돌려주었다.
그 터키인과 헤어져 얼마쯤 가다가 “그 친구는 호의를 보였는데 너무 야박하게 굴었구나.” 하는 후회가 들어 부리나케 뒤돌아 가 보았다. 아뿔싸! 그 친구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얼마나 미안했던지…… 그 뒤로는 해외에 나갈 때마다 매듭으로 만든 핸드폰 고리 몇 개를 꼭 지니고 나간다. 감사의 표시로, 때로는 기념품으로 주기 위하여.
여름휴가 때 터키로 여행할 계획이라고 영국인 사장에게 말을 건넸을 때 그는 아주 적극적으로 호응을 해 주었었다. 꼭 가 볼만한 나라라며 자기도 두 번이나 다녀왔다고 한다. 대영제국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이 친구가 터키 문화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이유는 여행을 마치고 나서 충분히 공감했다. 거기에다가 터키를 여행하는 내내 한국인에게 호의를 보이는 터키인들을 많이 만났다. 그리고 여행하는 동안 그들이 많이 하던 말 ‘Brother Country’는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터키는 다시 한번 가 보고 싶은 나라다. 터키에 다시 가게 되면? 이번에는 한글이 새겨진 1회용 라이터를 한 박스 들고 가려고 한다. 나의 ‘Brother’들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