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정 끝에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여 핸드폰을 켜니 대한민국 외교부 이름으로 안내 메시지가 여러 개 들어왔다. 그 가운데 하나가 ‘【외교부】런던 시내 경찰 사칭 검문검색 빙자한 지갑 절취 범죄 증가, 각별한 유의 요망’이었다. 매우 중요한 정보였는데 힐끔 보고 무심히 넘겼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늘 보내는 그런 문구쯤으로 치부해 버린 것이다.
늘어지는 몸만큼이나 무거운 가방을 질질 끌며 전철을 이용하여 예약해 놓은 호텔 근처 역까지 무사히 왔다. 역무원에게 호텔 가는 길을 묻고 역을 나서는데 인상 좋은 사내가 나타나 호텔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앞장섰다. 중간에 경찰의 검문도 받았지만 별다른 무리 없이 통과했다. 현금 일부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호텔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세상에! 영국 신사인 줄로만 알았던 길 안내를 맡은 사내는 소매치기단의 바람잡이였고 경찰을 사칭한 자들은 소위 말하는 기술자(?)였던 모양이다. 외교부가 보낸 경고 문구를 소홀히 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이다. 도착하기가 무섭게 어처구니없는 꼴을 당하고 나니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 부쩍 높아졌다.
리젠트 공원은 하이드파크, 그린파크 등과 더불어 런던을 대표하는 공원으로 주변에 셜록홈스 박물관, 밀랍인형 박물관 그리고 비틀스 스토리 등 눈요기할 만한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공원 안에도 퀸 메리스 로즈 가든스(Queen Mary’s Rose Gardens)와 같은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다. 화려한 꽃들로 멋지게 조경해 놓은 가든을 둘러보며 여왕은 금수저가 아니라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한 것으로 만든 수저를 물고 태어났을 거라며 농을 주고받았다.
바로 그때 어떤 신사가 다가오더니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핸드폰을 달라고 했다. 순간 우습게도 소매치기 일당이 했던 ‘현금과 핸드폰을 특히 조심하라’는 말이 떠오르며 경계심이 발동했다. 잠시 주저하는 나를 보고 그 신사는 다시 한번 핸드폰을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그의 일행은 셋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 여자였다. 설마 여자가 낀 소매치기단은 아니겠지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넘겨주었다. 그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몇 장의 사진을 찍어주고는 즐거운 여행(Have a nice trip!)하라는 말과 함께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한동안 민망한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 진짜 영국 신사를 오해하다니….
리젠트 공원에서 멋진 영국 신사를 만났지만 여전히 경계심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다음날, 현지의 한국인 여행사를 통해 스톤헨지와 바스(Bath)를 다녀왔다. 영국인들은 스톤헨지를 세계 7대 불가사의 하나라며 몹시 자랑스러워했다. 특히 세계 4대 문명 가운데 어느 하나도 유럽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심리적 열패감을 느끼던 다른 유럽인들도 기원전 1,7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스톤헨지에 대해서는 모두 자부심을 갖고 기회가 되면 찾는다고 한다. 동양 문명과의 시간적 격차를 줄여주는 유물이기 때문이다. 그날도 프랑스에서 단체로 온 학생들이 있었다.
스톤헨지를 떠나 바스로 향했다. 서기 4세기경 로마인들에 의해 만들어져서 로만 바스라고도 불리는데 목욕하다는 뜻의 영어 표현인 ‘Bath’의 기원이 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바스는 영국에서 유일하게 천연온천이 나오는 곳이어서 오래전부터 휴양도시로 자리매김 해왔다고 한다. 명성에 걸맞게 바스에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많았는데 반달형으로 지어진 The Royal Crescent가 특히 멋졌다. 예전에는 왕족과 귀족들의 별장이었는데 지금은 호텔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가이드는 이곳이 키이라 나이틀리가 주연을 맡은 영화 ‘공작부인’을 촬영했던 곳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크레센트는 환상적으로 다가왔다.
멋진 모습에 반해 잔디밭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아내의 핸드폰이 사라진 것을 뒤늦게 알았다. 어딘가에 떨어뜨린 모양이다. 낭패스러웠다. 핸드폰도 핸드폰이지만 그곳에 온갖 잡동사니 정보가 다 들어 있어서 복구하는 게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중고 핸드폰은 우리 돈으로 몇 십만 원에 거래된다고 했다. 가이드는 이런 정황과 다른 손님들을 의식한 듯 런던에서 분실신고를 하고 한국에 돌아가서 보상을 받으라고 제안했다. 일행 중에도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맞장구를 치는 사람이 있어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포기하려고 했다. 바로 그때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예쁜 아가씨 둘이 웃으며 다가와 어떤 사내가 핸드폰을 주워 경찰서로 가져갔다며 확인해보라고 했다. 이런 천사 같은 아가씨들이 있나! 고마운 마음에 와락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경찰서로 뛰어갔다.
분실물을 담당하는 경찰이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몇 가지를 묻고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게 하더니 핸드폰을 내주었다. 집 나간 자식이 돌아오면 이렇게 반가울까? 이런 기쁨을 가져다준 젊은 아가씨들은 크레센트에 살던 공주들이, 핸드폰을 경찰서에 가져다준 사람은 멋진 기사(騎士)가 지금 세상에 환생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 그녀들에게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 했는데 앞으로 그녀들에게 행운만 있기를 기원한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영국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은 눈 녹듯 사라졌다.
친절한 영국인들은 런던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요크에서 에든버러로 가는 열차에서는 친구사이인 세 쌍의 부부와 얼굴을 마주 보며 앉아야 했다. 70살은 넘은 듯 보이는 일행들은 웃고 떠들며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Angel of the North’하며 차창 밖을 가리켰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안토니 곰리라는 세계적 설치화가의 작품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기차가 빨리 지나는 바람에 우리가 그 작품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그들의 대화에 끼워주었다. 에든버러 역에 도착해서 그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역에서 호텔까지는 멀지 않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체크인을 끝내고 방열쇠를 받아 든 순간 낯익은 얼굴들이 나타났다. 열차에서 만나 이야기를 하며 함께 온 그 노부부들이었다. 참 묘한 인연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우리를 보며 박장대소를 했다. 이들과는 전생에 깊은 인연이라도 있었던 것은 아닌지....
에든버러에서도 영국 신사를 만났다.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관광을 포기하고 목적지 없이 하루 종일 시내버스를 타고 에든버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로 하던 날이었다. 종점에서 내려 다른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버스기사가 그냥 자리에 앉아있으라는 것이다. 도중에 보타닉가든이 있었는데 우리가 그곳을 가려다 하차지점을 놓친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호의를 뿌리칠 수 없어 그의 말대로 하자 되돌아가는 버스에서 하차지점을 앞두고 일부러 안내방송을 해 주었다. 그는 버스에서 내리는 우리에게 윙크까지 해주었다. 행운을 비는 그런 윙크였겠지?
보타닉가든의 입구는 좁아서 초행길인 사람이 찾기에는 어려웠다. 근처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한 사내가 곧장 100미터쯤 앞으로 가라고 손가락질을 하며 가르쳐줬다.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30미터쯤 갔을 때 왼쪽으로 보타닉가든 서문이라는 팻말이 나타났다. “겨우 찾았네!”하며 그곳으로 향하려는 순간 등 뒤에서 사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봐요, 거기가 아니고 좀 더 앞으로 가요!” 그는 우리가 제대로 찾아가는지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말대로 앞으로 더 가니 서문보다 훨씬 작은 동문이 나타났다. 그곳이 정문이고 출입문이었다. 입구가 작아서 그 사내 아니었더라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영국에 도착한 첫날 전철역에서 만난 친절한 신사(?)들 때문에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 부쩍 생겼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어리석게도 영국 사람을 오해했던 것이다. 영국은 ‘신사의 나라’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