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윈저성으로 가는 방법은 해머스미스 역에서 기차를 타는 방법과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에서 버스를 타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언제 다시 가볼지 알 수 없는 상황이어서 두 가지 교통수단을 모두 겪어보기로 했다. 갈 때는 버스를, 돌아올 때는 기차를 타기로 한 것이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버스가 붐빌 것으로 예상하고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빅토리아역에 도착했다. 버스터미널인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은 빅토리아역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고 했는데 황당하게도 버스터미널을 찾지 못해 헤매고 말았다. 불안한 마음이 겹치면서 조금씩 짜증을 내다가 20여 분만에 겨우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다음엔 매표소를 찾느라 또 우왕좌왕해야 했다. 우리나라처럼 매표창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여행사 사무실 같은 작은 공간에서 버스회사별로 승차권을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렵게 사무실을 찾아 승차권을 사려고 하니 왕복표는 자기들이 팔지만 편도의 경우는 버스기사에게 직접 구입하라고 한다. 뭐가 이리 복잡해? 투덜거리며 승강장에 가보니 버스는 이미 떠나버렸고 다음 버스는 1시간 뒤에 출발한단다. 아침 일찍 나서고도 버스를 타지 못한 나 자신에게 화도 나고 기다리는 시간도 아까워 윈저성 가는 날을 뒤로 미루었다.
빅토리아역에서 15분쯤 걸어가면 영국 여왕이 거주하는 버킹엄궁이 나온다. 이틀 전에 근위병 교대식을 보러 갔던 곳이다. 11시부터 시작되는 교대식을 보려고 이른 아침부터 버킹검궁 앞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궁 안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철창으로 만든 담장 틈 사이로 봐야 하는데 그렇게라도 보겠다는 사람들이 일찌감치 모여든 것이다. 그 인파 속에 끼어 겨우 눈동냥을 했었다.
이틀 전과 다름없이 철창에 매달려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교대식이 시작되기 전에 근처에 있는 Queen’s Gallery를 먼저 관람했다. 흥미로운 것은 궁이 있는 곳에는 대부분 Queen’s Gallery가 있다는 점이다. 그리니치에도, 켄싱턴에도 그리고 에든버러의 홀리루드에도 있었다. 여왕의 살림살이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나?
버킹엄궁 인근에는 Queen’s Gallery 외에 Royal Mews도 있다. 왕실에서 쓰는 의전용 차량과 호화스러운 마차와 말을 보관하는 왕실 마구간이 있고, 버킹엄궁에서 일하는 시종들의 숙소가 있는 곳이다. 화려한 마차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눈요기할 만한 것도 없으면서 입장료만 비쌌다.
윈저성 가기를 포기하고 심드렁한 마음으로 Royal Mews를 관람한 뒤 걸어서 5분쯤 거리에 있는 버킹엄궁 앞으로 갔다. 근위병 교대식을 한번 더 보고 워털루 전투의 영웅 웰링턴의 동상과 그의 저택이 있는 곳으로 갈 요량이었다.
그런데 버킹엄궁이 가까워지면서 엄청난 함성이 들려왔다. 여왕이 생활하고 집무하는 궁 앞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소리에 순간 광화문 집회를 연상하며 잰걸음으로 가보니 뜻밖의 광경이 펼쳐졌다. 그리니치를 출발해서 버킹엄궁에 골인하는 ‘2018 런던 마라톤대회’를 보려고 수많은 관중이 모여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1위를 한 선수는 이미 골인을 했지만 관중들은 순위에 관계없이 완주하는 마라토너들에게 계속해서 환호와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었다. 뜨거운 축제를 같이 즐기려고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무리 속에 끼여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대박!
숙소에 돌아와 런던패스 안내서를 읽어보다가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윈저성에 가기 위해 교통비를 따로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파리패스나 로마패스처럼 런던에도 주요 유적지나 유명 관광지를 무료로 드나들 수 있는 ‘런던패스’가 있다. 그 런던패스가 있으면 해머스미스 역에서 윈저성에 가는 기차도 무료, 윈저성도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에 런던패스를 할인해서 샀는데 런던에 도착해서도 그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통비를 따로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아는 순간 마치 횡재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뿐이던가? 영국에 도착한 이후 내내 화창하던 날씨가 윈저성으로 가는 동안에는 비를 뿌리더니 우리를 축복이라도 해 주듯 열차에서 내릴 때쯤에는 그쳐 있었다. 운도 좋지. 교통비 절약(?)한 돈으로 윈저성이 잘 보이는 레스토랑에 앉아 영국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애프터눈 티로 점심을 가름했다. 또 대박!
윈저성에 가려다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일정을 바꾸었고 그 덕분에 버킹엄궁 앞에서 런던마라톤 골인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이야말로 전화위복 아닌가? 게다가 교통비까지 절약했으니 운이 나쁜 날이 아니라 행운이 겹치고 겹친 기분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