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공을 들인 단편소설 5편이 완성됐다. 구성을 바꾸고 문장을 고치길 수없이 반복하여 마침내 탈고에 이른 것이다. 각기 다른 주제를 갖고 있지만 서로 연결되는 연작 소설이다. 오랜 인고의 시간이 끝났다는 안도감이었을까? 마음 한구석이 환해진다. 그런데 이게 끝일까? 현실적인 질문이 뒤따른다. 이 글을, 어떻게 세상에 내놓을 것인가.
몇 달 전, 문학상 시상식 뒤풀이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꺼냈다. 문학상을 운영하는 사람, 현역 출판인, 그리고 수상자까지 모인 자리였다. 술기운이 조금 올랐을 때 조심스럽게 주문형 출판, POD(Publish on Demand)를 주제로 올렸다. 독자가 주문할 때만 책을 찍어내는 방식이니 재고 부담이 없고, 작가나 출판사에게 위험부담도 적다는 점을 강조했다.
민감한 주제였을까?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반론은 뜨거웠고 완강했다. 그들에게 책은 ‘상품’이기 이전에 ‘성물(聖物)’이었다. 재고로 남을망정 단 한 사람이라도 읽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출판한 보람이 있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활자 곁을 지켜온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일 것이다. “책은 종이의 질감, 잉크의 향, 제본의 견고함까지가 모두 문학의 완성입니다. 레이저 프린터로 대충 뽑아낸 책에 작가의 영혼이 온전히 담길 수 있겠습니까?”
다른 이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재고가 무서워 도전하지 않는다면 문학의 야성은 어디서 찾겠습니까. 돈을 좀 들여서라도 제대로 된 ‘물성’을 갖춰야 독자도 그 무게를 느낍니다.” 그들이 말하는 ‘제대로 된 책’은 작가에게 요구하는 더 큰 책임감일 것이다. 수백만 원의 제작비를 감당하고, 재고의 하중을 견뎌내며, 그 무게만큼의 가치를 증명해 내라는 채찍질일 것이다.
문제는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설을 읽는 독자는 날이 갈수록 줄고 덩달아 서점도 줄었다. 진열 기간이 짧아지면서 새로 나온 책이 재고로 바뀌는 시간도 점점 빨라졌다. 이런 시대에 출판을 어떻게 봐야 할까? 출판의 형식은 ‘글을 대하는 태도’의 연장선이다. 대량 생산된 오프셋 인쇄의 책이 위엄 있는 ‘정장’이라면, POD로 태어난 책은 작가의 숨결이 닿는 대로 지어 입은 ‘생활 한복’ 같다고나 할까. 정장이 필요한 격식 있는 자리가 있듯, 편안하게 독자와 눈을 맞추고 싶은 순간도 있는 법이다. 누군가에게는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한 정성 어린 책이 더 소중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POD는 자본의 논리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을 수많은 ‘작은 목소리’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손길일지도 모른다.
POD는 종이와 인쇄의 질이 아쉽고, 유통과 홍보의 한계도 분명하다. 무엇보다 ‘책을 냈다’라는 감각이 어딘가 가볍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재고 없는 책이 가볍다고만 할 수 있을까? 재고가 없어서 가벼운 게 아니다. 선택받지 못하고 재고로 남는 책이 더 안타깝다. 책의 무게는 종이에서만 오는 것은 아닐 것이니….
‘본인의 저서는 내 혼을 담은, 내 이름 석 자가 담긴 유산과도 같습니다. 내가 죽어도 세상에 남아 있을 책을 아무렇게나 만들려고 하지 마십시오. 제대로 만든 책은 문인으로서 의무이자 자존심입니다.’ 뒤풀이 자리에서 들은 주장이 귀에 쟁쟁하다. 책을 허술하게 만들 생각 따위는 버리라는 강한 외침이다. 작가로서의 강한 자긍심이 있어야 한다는 말일 텐데…. 그의 말에도 공감은 간다. 그렇다고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기계가 찍어내든 장인이 엮어내든, 그 안에 담긴 문장이 독자의 마음을 울릴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것으로 책은 이미 자신의 소명을 다한 것이 아닐까? 출판이라는 형식의 틀에 갇히기보다, 내 글이 세상과 닿을 가장 진실한 통로를 찾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마지막 퇴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