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미 작가. 같은 고향에서 자란 동창이라는데 이름이 낯설다. 고향 친구들에게 그녀를 묻자 에피소드를 포함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에피소드와 그들이 말한 어느 것도 내겐 낯설었다. 어쩌면 너무 이른 나이에 고향을 떠나서 친구들과 공유한 추억이 적은 탓이리라. 그 김용미 작가의 수필집 『포토맥에 뜨는 일곱 개의 달』을 만났다.
제목을 보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경포호의 다섯 개 달’이었다. 하늘의 달, 호수에 비친 달, 바다에 비친 달, 술잔에 비친 달, 님의 눈에 비친 달. 풍류를 즐기는 가벼운 이야기다. 경포호보다 더 많은 달이 떴다는 포토맥강에는 어떤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궁금했다. 그 천박한(?) 궁금증은 작가의 프로필을 보는 순간 바뀌었다. ‘경희해외문학상’, ‘윤동주해외문학상’ 수상자라는 이력이 그녀가 범상치 않은 사람임을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서문을 읽으며 그녀의 내면이 가없이 깊다는 것을 느꼈다.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 그 경계에 선 삶과 내면을 담백하게, 그렇지만 향토색 짙게 풀어낼 것임을 알았다. 디아스포라 문학의 핵심인 모국어에 대한 깊은 애정을 수줍은 시골 처녀처럼 풀어낼 것임을 짐작하게 했다.
정작 우리 땅에는 우리말을 희롱하는 이가, 무분별한 언어 사대주의에 함몰된 이가 많지 않던가? 작가는 언어 사대를 받는 나라에 살면서도 우리말을 맛깔스럽게 펼쳐 놓았다. 말이 지닌 정서를 누구보다 차지게, 아름답게 풀어놓았다.
‘시렁 아래 윗목으로 비켜 앉은 그 어둠이 함께 있어 더욱 아늑했던 밤이 나는 좋았다.’ 「개밥바라기 별」,
‘첫사랑은 하늘색 비닐우산을 닮았다. 온전히 비를 가릴 수 없는 우산이었지만 누구나의 가슴에 맑은 풍경처럼 하나씩 접혀있기 때문이다.’ 「지우산」.
고국을 떠난 지 40년이 되었다는데 어찌 이리 섬세한 표현이 가능할까? ‘꽃’이라 이름하고, ‘별’이라 불러보고, ‘밥’이라 소리 내 보았다더니…. 모국어를 잊지 않으려는 그녀의 치열함이 맛깔나고 가슴을 두드리는 표현으로 살아난 모양이다.
‘우리 아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모두 한국어를 잘하고 또 잘 쓰는 편이다. 어릴 때부터 한국어로 말하지 않으면 우유도 안 주고 밥도 안 줄 만치 철저히 가르친 덕분이다.’ 「똥강아지가 보낸 편지」
‘과거에 대한 기억 없이는 어떠한 아름다움도 없다고 한다. 내게 채송화가 더 특별한 이유는 먼 기억의 저편에서 피고 졌던 여름꽃들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채송화 연가」.
고향을 떠난 지 40여 년. 미국 집 앞뜰에 심은 채송화가 고향 집 빨랫줄 밑에서 자란 채송화를 기억하게 했다지? 그 긴 세월이 그녀에게 얼마나 많은 고달픔과 기쁨과 뿌듯함을 엉키게 했을까? 김우종 평론가는 ‘뜨거운 정열도 버리고 심오한 지성도 버리고 조용한 숲 속 오솔길로 피신해 있던 형태의 다수 국내 문학과는 아주 다른 지성의 깊이와 책임감을 나타내는 것이 김용미 수필이다.’라고 평했다. 그의 말처럼 그녀의 글에는 깊은 지성과 책임감이 있다. 고향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글을 읽으면 뭉클해진다.
포토맥에 뜨는 일곱 개의 달은 김용미 작가가 마음속에서 미국 생활의 희로애락을 삭히고 삭혀 게워낸 곰삭은 세월이었을 것이다. 디아스포라로서의 그녀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상징이다. 이와 더불어 그녀가 자기의 내면을 치열하게 들여다보고, 단단하게 다질 수 있는 원천이었을 것이다.
포토맥의 달은 경포호의 다섯 개 달과는 완연히 다르고 오히려 백마강의 달과 끈끈하게 닿아있다. 한 잔 술에 기분이 좋아진 작가의 아버지가 목청껏 뽑은 ‘백마강 달밤에~’라는 가락 속에 풍덩 잠겨 있다. 포토맥의 달은 작가의 물리적 고향을, 이제는 정신적 지주가 된 그곳을 향해 비추는 달이다.
힘든 이민자의 생활을 디아스포라 문학으로 승화시킨 사람. 비록 그동안엔 알지 못했던 사람이지만 지금은 이름을 불러보고 싶다. “용미야, 잘 지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