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여러 가지 내용으로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 우리 신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쓰려고 합니다. 그 동안은 신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 없이 쓰려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나 봅니다. 이제 줄거리가 조금은 정리되어 본격적인 서사(敍事)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에는 신화를 ‘우주의 기원, 초자연의 존재의 계보, 민족의 시원 등과 관련된 신에 대한 서사적 이야기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럼 우리 조상님들은 어느 지역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유감스럽게도 그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마땅한 기록이 없다. 다만 『삼국유사』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庶子)인 환웅(桓雄)이 천하에 자주 뜻을 두어,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 내려다보니 인간(人間)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웅(雄)이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정상의 신단수(神壇樹, 神檀樹) 밑에 내려와 신시(神市)라 하고 이에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하였다.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악(善惡) 등 무릇 인간의 삼백육십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며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1. 묘향산설 (전통적 관점)
묘향산에는 단군과 관련된 전설이 많고, 지리적으로 한반도 내륙의 중심적인 위치에 있어 신성시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묘향산을 태백산(太伯山)이라고도 한다는 기록이 있다.
2. 백두산설
현대인들에게 가장 익숙하고, 많은 학자가 지지하는 설. '크고 하얀 산'이라는 '태백'의 의미가 백두산의 이미지와 완벽하게 일치하기 때문.
고조선의 중심지가 요동과 만주 일대였다는 고고학적 유물(비파형 동검 등)의 분포와도 잘 맞아떨어짐.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영산이며, 사계절 내내 흰 눈이나 부석으로 덮여 있어 '태백'이라는 이름에 걸맞다.
3. 백주(백산) 또는 요서 지역설
고조선의 건국 초기 중심지를 한반도보다 훨씬 서쪽인 요서 지역이나 대흥안령 산맥 부근으로 보는 견해.
홍산 문화 등 요하 문명의 발견으로 인해, 우리 민족의 기류가 만주 서부에서 시작되어 점차 동남진했다는 분석에 기초.
신화 속 '신시'를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거대한 유목·농경 복합 문화의 발원지로 해석.
※※ 집필하려는 신화 이야기는 요서지역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
환웅이 웅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단군(檀君)은 고조선을 건국한 제정일치 시대의 최고 통치자(제사장 겸 군주)를 뜻하며 당골네는 주로 전라도 지역에서 무당을 부르는 말로 고대 제사장이었던 단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당골네(단골)는 신의 힘으로 병을 고치고 제사를 지내던 권위 있는 존재였으며 자주 찾는 무당집을 뜻하던 '당골'에서 지금의 단골손님이라는 말이 유래했다.
의무려(醫巫閭)는 중국 요령성에 위치한 명산인 의무려산(醫巫閭山)을 지칭하며 만주어로 '푸르른 산' 또는 '크다(大)'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자로는 '치료하는 무당/산'이라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하며 고조선의 주산(主山)으로 숭상 받기도 했다.
※※ 신화이야기에서는 태백산의 위치를 요서지방의 의무려산으로 설정했다.
환웅이 인간세계로 내려왔다는 태백산의 위치 못지않게 흥미로운 신단수. 신단(神壇) 위에 있는 나무일까 아니면 신령스러운 박달나무(神檀)일까?
※※ 북유럽신화의 우주 나무인 위그드라실처럼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신단수(神壇樹). 신단수 꼭대기에는 하늘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는 새(소호, 少昊)가 있음. 소호는 환웅의 신하이며 천손 신앙을 뒷받침하는 새 토템을 상징,
고대인들에게 '조상'은 곧 '신'이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행위와 조상을 모시는 행위가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과 가장 가까운 높은 곳(제단)이 곧 가장 존경받는 자의 안식처(무덤)가 되었다.
1. 홍산문화의 '단묘총(壇廟塚)' 일체형 구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홍산문화의 우하량 유적. 이곳에서는 제단(壇), 여신 묘(廟), 적석총(塚)이 한곳에서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공동체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었다. 그 후 공동체의 수장(제사장)이 죽자, 그를 '하늘과 연결된 존재'로 보아 제단 근처나 제단 그 자체에 매장하기 시작했다.
제사를 지내던 성스러운 공간이 특정 지배자의 무덤으로 성격이 전이된 것.
※※ 홍산문화는 기원전 4500년~3000년경, 만주 서쪽의 요하(Liao River) 유역에서 꽃피운 신석기 시대 문화. 황하문명보다 앞선 시기에 정교한 국가 형태의 기틀을 갖추고 있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2. 고구려 장군총: '무덤 위의 제단'
장수왕릉으로 추정되는 장군총은 제단과 무덤의 기능이 완벽하게 결합된 형태라고 한다.
장군총 맨 윗단에 남아있는 기와 건물 흔적은 단순히 시신을 덮어두는 곳이 아니라 후손들이 올라가 제례를 올리던 제단이었다고 한다.
왕의 무덤 자체가 거대한 제단이 됨으로써, 죽은 왕을 신격화하고 국가의 결속을 다지는 장소가 된 것.
3. 이집트 피라미드와 마스타바
이집트의 피라미드 역시 처음부터 거대한 삼각형 모양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평평한 직사각형 모양의 '제단(마스타바, Mastaba)' 같은 형태였다.
마스타바를 층층이 쌓아 올리면서(제단을 높여 하늘에 닿으려는 시도) 우리가 아는 계단식 피라미드가 되었고, 결국 거대한 왕의 무덤으로 완성되었다.
※※ 홍산문화에서 보듯 적석총 역시 당초에는 제단(神壇)으로 조성됐으나 권력자의 무덤으로 진화했다. 고구려에 광범위하게 분포된 적석총은 초기의 제단 기능은 사라지고 무덤으로만 존재한 것.
적석총은 주로 요하 유역(홍산문화 지역)을 시작으로 만주 송화강, 압록강 유역(고구려 지역), 그리고 한반도 중남부(백제 초기 및 신라 지역)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 적석총은 빗살무늬 토기와 함께 동이족의 활동 지역을 특정하는 주요 유적이다.
요서 지역: 홍산문화 시기의 초기 적석총 발견.
압록강/지안 지역: 장군총과 같은 고구려의 거대하고 정교한 계단식 적석총 집중.
한강 유역: 백제 초기(석촌동 고분군 등)에 고구려 양식을 계승한 적석총이 나타남.
중국인은 황제(黃帝)와 염제(炎帝)를 조상으로 숭배.
황하 상류에서 세력을 떨치던 황제가 반취안(판천, 阪泉)을 지배하던 염제를 공격하여 승리한다. 이를 판천대전 혹은 염황 대전이라 부르며, 두 세력이 하나가 되어 탄생한 것이 오늘날 중국인의 조상인 화하족(華夏族).
반취안을 차지한 황제는 줘루(탁록, 涿鹿)에서 세력을 떨치던 치우(蚩尤) 마저 제압한다.
반취안과 줘루는 모두 오늘날 베이징의 북쪽에 있는 장자커우(張家口) 부근에 있다. 이곳은 화하족이 일으킨 앙소 문화와 동이족이 일으킨 홍산문화가 만나는 곳. 탁록전투는 앙소 문화와 동이 문화의 충돌을 상징하는 신화시대의 전쟁이다.
단군신화와 제주신화를 중심으로 풀어갈 예정이다. 이에 더하여 우리 조상님들(동이족 포함)의 활동 무대가 만주와 한반도 및 산동반도 일대에 걸쳐 있었으므로 중국 신화의 일부도 우리 신화와 연결시킬 예정이다.
따라서 우리 신화 가운데 중국인 조상들의 이야기가 섞여 있을 수 있고, 중국 신화에도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가 섞여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여 팩션과 유사한 픽션을 구성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