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다른 전공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저는 소수어과를 선택해서 공부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기계적인 번역 수요는 줄었을지언정, 언어와 언어를 잇는 '사람'의 역할은 언제나 필요할 것이란 생각 때문이죠. 게다가 잘하는 사람이 쌔고 쌘 영어나 중국어가 아닌, 특수한 언어를 한다면 그 능력으로 두드릴 수 있는 문이 그만큼 특별하지 않을까요?
줌파 라히리가 번역에 대해 쓴 구절처럼, 언어가 열어주는 문은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낯선 세계에 발화자를 데려다줍니다. 그리고 그 여정은 끝이 없지요. 그게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릅니다.
이 언어를 사랑하게 된 이후로, 나는 수 십 년째 잇달아 나타나는 문들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나의 문은 매번 나를 또 다른 문으로 데려간다. 그것들을 대면할수록, 그것들을 통과할수록 열어야 하고 극복해야 할 더 많은 문이 나타난다.
- 줌파 라히리, <나와 타인을 번역한다는 것>
나만이 할 수 있는 언어
사실 요즘 글쓰기에 영 흥이 나지 않았습니다. 일단은 쓰고 있는 책을 갈아엎으며(...) '쓰기'라는 활동이 약간은 부담스럽게 다가온 것도 있고요. 그와 함께 '읽기'라는 활동도 게을러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근간에는 "남들도 쓸 수 있는 글을 쓰는 건 쓸모없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깔려 있었습니다.
언어와 마찬가지로, 나의 경험과 공부도 결국은 나의 세계를 넓혀주는 문이잖아요. 그런데 그 문이 너무 남들과 똑같이 생긴 경우, 사람들은 그 문을 열어보고 싶지 않을 겁니다. 살짝 열어보았을 때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환상적인 하늘이 펼쳐진다면 좋겠지만,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윈도우즈 배경 화면이라면 "굳이..?"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단 말이죠. 그래서 나의 삶을 소처럼 반추하며,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과연 뭘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게 독특한 점이라면,
- 말에 물린 적이 있다(!).
- 아이 둘을 해외에서, 그것도 각각 다른 국가에서 낳았다.
- 10년 넘게 미국 회사에서 재택근무로만 일을 하고 있다.
첫 번째 사건을 제외하곤 쭉 글을 써 왔던 주제입니다. (첫 번째 사건도 별 거 없습니다. 말 앞에서 까불다가 허벅지를 물렸는데 말 이빨 모양으로 부풀어 올라서 한 달 넘게 피멍 들어 있었음) 나만의 언어는 과연 충분히 매력 있을까요? 나만이 전할 수 있는 메시지가 있을까요?
같은 사건에서도 작은 틈을 발견하기
하지만 굉장한 작가님들이라고 뭐 슈퍼히어로 같은 삶을 사셨겠어요? 의외로 평범하고, 의외로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시는 분들이 더 많겠지요. 결국은 더 많이 읽어서 삶의 주름이나 균열을 발견하는 눈을 키우고, 오래오래 사유하고, 이를 나만의 생각으로 풀어나가는 게 재주 아니겠어요?
매주 쓰던 글을 한참이나 멈추고 있다 보니 이상한 부채감이 생겨, 주절주절 떠들어 보았습니다. 조만간 나만의 언어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라며..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