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처럼 새하얀 북극곰은 단연코 기후 위기의 '포스터 차일드'입니다.
* 포스터 차일드: 선전 포스터에 게재된 아동 / 전형적인 인물
즉 '기후변화'라고 하면 딱 각인된 이미지가 되어버렸지요. 기후 위기에 대한 저의 첫 책도 너무도 당연히(?) 북극곰이 표지에 들어갔습니다. 빙하가 녹으며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가엾은 북극곰은 누구에게나 호소력을 갖는 듯합니다. 콧구멍에 빨대가 낀 불쌍한 바다거북이가 플라스틱 쓰레기의 포스터 차일드가 된 것도 비슷하죠. 사람들은 아무래도 귀엽고 무력한 동물들에 더 관대해지나 봅니다.
북극곰이 뚱뚱해졌다니
그런데 최근에 타임 지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스발바르 제도(노르웨이령이고 지구본을 보시면 정말 무지무지하게 북쪽에 위치합니다)에 사는 북극곰을 조사해 본 연구 결과가 실린 건데요, 아니 북극곰들이 최근에 뚱뚱해졌단 겁니다. (뚠뚠이) 생존의 기로에 서 계셔야 할 그분들이 왜 오히려 살이 찌신 거죠?
사실 불쌍한 척은 다 하던(?) 북극곰이 잘 살고 있단 뉴스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실제로 몇 년 전에는 북극곰의 개체 수가 증가했다는 뉴스도 나왔었거든요.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 북극곰이 잡아먹는 월러스와 순록에 대한 사냥 금지법이 생기며 북극곰이 먹이를 구하기 쉬워진 까닭도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워낙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지역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극지방은 기후변화를 극심하게 겪고 있습니다) 오히려 물개 새끼를 잡아먹기가 쉽다고 합니다. 새끼가 놓여있는 얼음 덩어리 자체가 작아졌으니까요.
그러나 이 연구를 진행한 노르웨이 연구진은 강조합니다. 지속적으로 얼음이 녹는 경우 당연히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이에요. 지금 단편적으로만 보았을 때는 북극곰들이 마치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지만, 더워지는 지구에서 장기적으로 그들의 미래가 밝을 리가 없단 거죠. 괜히 포스터 차일드일리가 없습니다.
자연의 “적응”에 관하여
그런데 주목할 만한 점은 북극곰들이 먹이 자체를 예전보다 더 폭넓게 구하고 있단 겁니다. 예전 같으면 주로 물개만 먹었을 북극곰들이 새나 인간이 버린 쓰레기 등 다른 것들도 먹으며 나름대로 '적응'을 하고 있는 거죠. 인간이 온실 가스를 마구 내뿜으면서 지구와 생태계가 당하고만 있을 것 같지만, 또 그렇지만도 않단 겁니다.
최근에 <버려진 섬들>이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이를테면 체르노빌이나 비무장지대처럼 모종의 이유로 인간의 발길이 끊겨 완전히 야생의 상태에 버려진 곳들을 취재하고 쓴 책입니다. 인간이 없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야말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극장과도 같은 도서입니다.
물론 체르노빌 같은 곳은 생태계 자체가 극심하게 파괴되었었지만, 의외로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며 생물이 살기 시작하고 오히려 번성하는 곳들도 생깁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아름다운' 자연은 아닐지 몰라도, 동식물은 황폐한 땅에 적응하여 오히려 독특한 생태계를 만들어 냅니다. 심지어 40-50년대에 미국이 핵실험을 했던 태평양의 비키니환초의 경우 극심하게 오염되어 생명체가 전혀 없었는데, 2008년 국제 조사팀이 방문해 본 결과 폭발 분화구에 수중 생태계가 번성하고 있었다고 해요. 심지어 중금속으로 심하게 오염된 지역에서도 '중금속 고축적 식물'이라는 것이 수백 종류 자랄 수 있다고 하니, 인간이 아무리 망쳐놔도 (...) 자연의 회복탄력성이 존재한단 게 경이롭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적응'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 많던 온실가스는 다 어디로 갔을까
사실 인류가 내뿜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정말 어마어마한데요, 그 많은 온실 가스가 그대로 다 지구의 기온을 높이고 있는 게 아니거든요. 카본 싱크(Carbon Sink)라고 해서, 지구 어딘가에서는 온실 가스를 꿀꺽꿀꺽 먹고 있어서 대기를 데우는 걸 막아 줍니다. 마치 매일같이 나 몰라라 폭음을 했는데 의외로 괜찮은 간수치(?)처럼, 대기 중 탄소 농도는 우리 예상만큼은 빠르게 상승하지 않고 있어요.
흥미롭게도 많은 부분은 예전에 경작지였다가 더 이상 쓰지 않는 황폐한 땅에 흡수되기도 한다는 거예요. 숲을 베어서 농경지로 만들면 토지 전환뿐 아니라 질소 비료 사용 등으로 온실 가스 배출량이 엄청나게 많아지는데, 그걸 그냥 버리고 내버려두면 카본 싱크가 일어난단 것이에요. 결국은 인간이 손을 대지 않아야 회복이 일어난단 걸까요?
(체르노빌에서) 분명 방사능이 해를 끼치긴 하지만 동물로선 인간이 부재해 얻는 이익이 방사능에 의한 해보다 사실상 훨씬 큰 것이다.
- <버려진 섬들>, p. 117 -
태피스트리를 지키기 위하여
그러나 이런 회복력을 두고 '히히, 그럼 앞으로도 이렇게 흥청망청 살아야겠다'라고 결론을 내리면 곤란합니다. 스톡홀름복원센터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현재 온난화 속도는 자연적 온난화의 170배에 달하며, "점진적 변화라기보다 운석 충돌에 더 비견할 만하다"라고 하니까 말이죠.
자연에서 무언가 하나를 잡아당기면 그것이 나머지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너무 세게 잡아당기면 아름다운 태피스트리 전체가 풀려버릴 수 있다.
- 존 뮤어
인간이 태피스트리의 올을 당기듯 기후 위기를 자초한 가운데, 자연계는 이미 적응을 하고 있습니다. <버려진 섬들>에 따르면, 무려 전체 종의 3분의 2가 더 시원한 북쪽으로 서식 범위를 확장하고 있는데, 이는 매일 4.5미터씩 극지방을 향해 이동하고 있는 셈이라고 해요. 물론 모든 종이 이렇게 위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취약성에 그대로 노출되어 죽어가는 생물들도 무수히 많습니다. 향후 몇 년만 지나도 어떤 변화와 손실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죠.
달이 보고 웃는 대상은 우리가 아니다. 우리 외로운 인간은 너무 작고, 달이 우리를 조금이라도 알아차리기에 우리 삶은 너무 순식간이다.
- 로런 그로프, <플로리다>, p. 26
대자연과 지구의 순환은 큰 관점에서 보면 정말 별 것 아니고 순식간일지도 모릅니다. 자승자박이라고, 이 와중에 결국 적응을 제일 못하는 건 인간 아닐까 싶어 가슴이 서늘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