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도쿄돔, 그리고 에너지 소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세계 각국의 건장한 남자들이 하는 복잡한 공놀이를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중에 한 명은 나다. (그리고 도파민 폭발해서 잠을 못 자는 중.)
대회가 생기고 초반에는 한국이 꽤나 선전했었는데, 최근 3 연속 '광탈'한 지라 이번에는 칼을 갈고 준비했다고 한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 뿐 아니라, 어머니가 한국인인 외국인 선수들도 합류하여 타선이 꽤나 단단해졌다.
그런데 문제는 마운드. 흔히 야구는 '투수놀음'이라고들 하는데 부상 이탈자가 생기며 투수력이 약해진지라, 실점이 생각보다 많아졌다. 올해도 아마도 다음 라운드 진출은 어려워질 듯했는데, 오늘밤 바늘구멍이 뚫렸다(...). 국가대표 경기는 종목을 막론하고 재미있는데, 이렇게 피를 말릴 줄은 몰랐다.
이번 대회에서 특히 실점이 많은 이유는 홈런 때문이다. 야구를 모르는 사람들도 홈런이 한 방에 점수를 내는 특효약이란 건 잘 알 것이다. 주자가 없어도 1점이 단번에 나고, 루상에 주자가 꽉 차면 4점까지도 난다. 체코와의 첫 경기에서도 만루에 문보경(보물이라 읽는다)이 그램드슬램을 쳐서 4점을 단숨에 뽑아서 경기가 쉬워졌다. 바로 다음 날, 일본의 오타니도 대만과의 경기에서 바로 만루포를 쏘아 올렸다. 특히 오타니의 홈런은 발사각이며 비거리가 굉장해서, 쭉쭉 뻗어 나가는 홈런볼(과자 아님)을 볼 수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속한 C조는 대한민국, 일본, 호주, 대만, 체코의 5팀으로 이루어져 있고, 일본 도쿄에서 경기가 열렸다. 도쿄의 야구장 도쿄돔은 말 그대로 '돔' 구장이다. 즉 야외로 뚫린 구장이 아니라 지붕이 덮여 있는 형태다. 한국에도 키움 히어로즈 홈구장이 국내 첫 돔구장인 고척돔이고, 청라에도 SSG 랜더스가 새로 돔구장을 짓고 있다.
야구 경기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비가 많이 내릴 경우 '우취', 즉 우천 취소가 되기도 하고, 너무 덥거나 추우면 선수들이나 관중들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특히 요즘 한국 여름은 무척 덥기 때문에 관중들이 아이스팩을 이마에 붙이고 손 선풍기를 연신 틀어대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수비를 하러 나갈 때도 그렇고, 안타라도 쳐서 출루하면 한참을 경기장 한가운데 나가서 서 있어야 하는데, 땀을 비 오듯 흘리는 걸 볼 수 있다.
날씨가 추워졌다고 쉬운 건 아닌데, 선수들의 몸이 풀리는 데 오래 걸려 부상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투수들은 어깨가 '식으면' 인대나 팔꿈치 부상 위험이 급증해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리그가 쉬운 겨울철 프로팀들은 호주나 오키나와, 사이판처럼 따뜻한 나라로 스프링캠프를 가는데, 그 편이 훨씬 더 운동하기에 좋다고 한다.
그래서 돔구장은 매력적이다. KBO 10개 팀 중 키움만이 여름철에도 유일하게 낮에 홈경기를 할 수 있는 팀이다. 다른 팀들은 여름철이 되면 주말에도 해가 기울 무렵 경기를 시작해야 한다. 안 그러면 선수들이나 관중들이나 일사병으로 쓰러질 것이다.
돔구장이 시원하고 따뜻할 수 있는 건 물론 냉난방 덕이다. 지붕이 있다고는 하지만 지붕만 덮었다가는 환기가 되지 않아 오히려 더 더워질 수 있다. 냉난방과 환기 시스템이 돔구장의 필수 조건이며, 따라서 돔구장의 에너지 소비는 일반적인 오픈형 구장보다 훨씬 더 크다. 같은 크기, 같은 지역의 일반 구장과 돔구장을 비교할 경우 에너지 소비가 1.5-3배까지도 된다고 한다.
에너지 소비량을 따질 때는 경기장의 크기 역시 중요하다. 한국의 작은 구장들에 비해 수만 관중석이 기본인 메이저리그는 에너지 소비량이 차원이 다르게 크다. 가장 대규모 야구장은 LA 다저스의 56,000석 규모의 구장이고, 다른 구장들도 35,000석에서 40,000석 이상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가장 큰 잠실 야구장이 최대 25,000석인 것을 생각해 보면 확실히 크다. 게다가 관중이 많을 때 사람 한 명 한 명이 난로처럼 열기를 뿜기 때문에, 더울 때 이를 식히기 위한 에너지 필요량은 매우 커질 수밖에 없다.
도쿄돔의 경우 돔구장 중에서도 에너지 소비가 매우 큰 편이다. 이미 지어진 지 한참 되어서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구장의 천장 스타일이 공기압으로 지탱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철근 등 건축 자재를 획기적으로 절약할 수 있어 좋은 방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공기를 쏘아줘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량이 매우 크다. 아이들이 들어가서 노는 에어 바운스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계속 공기를 불어넣어 주지 않으면 허물어져 버리니까. 얇은 돔 아래에 송풍 팬으로 공기층을 만들어 지탱하는 구조다.
최근 지어지는 돔구장들은 개폐식으로 지어지기 때문에 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고척돔 역시 개폐식으로 만들어서 자연 환기를 최대한 이용하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량이 많이 줄어든다.
홈런볼이 날아가는 돔구장을 중계 화면으로 바라보며, 혹시 돔구장은 외부 공기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홈런이 자주 나올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찾아보니 의견이 갈렸다. 최근 나온 기사를 보니 장타 가능성을 높이기는 해서 도쿄돔이 타자 친화적 구장으로 꼽힌다고. 그런데 다른 자료를 찾아보니 영향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시할 수 있는 정도의 요소라고 한다. 그보다는 고도, 기후, 공인구 종류에 따라 훨씬 더 크게 홈런 및 장타 여부가 달라진다고 한다. 예를 들어 콜로라도 로키스의 홈구장인 쿠어스필드는 해발 고도가 높은 지역에 있기 때문에 타구 비거리가 길다. 그만큼 공기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타자들에게는 장타 공장이지만, 투수들에게는 쥐약이라 '투수들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현대 야구는 구장마다 다른 요소들을 집어넣어 스탯을 보정하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이번 WBC에서 결국 홈런을 빵빵 맞은 것은 돔구장 탓만이 아니라 결국 투수력 때문일까.
인공지능의 시대에 사라질 직업이 너무도 많지만, 개인적으로 스포츠만큼은 지속되지 않을까 늘 생각한다. 일상과는 하등의 상관도 없는 스포츠들 -- 활 쏴서 엄청 멀리 떨어진 과녁 중앙에 누가 더 가까이 맞히나, 발로 공을 차서 누가 더 많이 집어넣나, 빗자루 같은 걸로 얼음을 비벼대서 돌멩이를 어떻게 가운데에 넣나 등 -- 을 손에 땀을 쥐고 보며 울고 웃고 감동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보다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협회의 문제라든가 승부 조작 같이 어두운 이면도 있지만, 장시간 땀 흘려 노력하고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 한 인간의 모습만큼은 그 무엇보다 정직하고, 인간적이다. 아깝게 당한 삼진에 집어던지는 헬멧도, 도파민 터지는 끝내기 '빠던'도, 인간이 아닌 로봇이 한다면 그 누구도 이렇게 연연하지 않으리라 나는 확신한다.
그래서 더욱 스포츠 행사에 딸려오는 면면들도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조명이며 전광판이며, 스태디움이란 기본적으로 에너지가 많이 드는 구조물이긴 하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당시 개최국 측에서는 최초의 '탄소중립' 월드컵을 표방했는데, 사실 이와는 거리가 많이 멀어서 욕을 먹었었다. 태양광 패널 좀 붙이고 재활용품을 써서 경기장을 지었다 해도, 중동의 폭염을 막기 위해 드는 냉방 에너지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완전히 지붕을 덮은 건 아니었지만 개폐식 또는 반개방형 구조를 가진 스태디움 내부에는 관람석 의자 밑에서도 찬 바람이 나오도록 설계되어 있다. 또, 사방에 초대형 냉방 기구가 설치되어 있어 실내 온도를 적절하게 유지했다고 하니, 주최 측에서 주장한 것보다 탄소 발자국이 최소 세 배는 되었다고 한다. 이동하는 선수단의 비행에 따른 탄소 발자국까지 고려하면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인간은 앞으로도 이런 쓸데없는(?) 공놀이에 울고 웃을 것임에 틀림없다. 인공지능에게 에너지와 기후 문제 해결을 맡기고 우리는 스포츠를 즐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