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나만을 위한 이야기

리베이트 프로그램은 어떻게 디자인되는가

by Hoon

이번 글은 진짜 나 말고는 관심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나만을 위해 쓰련다)


나는 미국의 한 회사에서 리베이트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에너지 리베이트"에 대한 글은 이미 과거에 쓴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yjeonghun/6


아무튼 나는 오랫동안 이 분야에서 일하며 늘 궁금했었다.


고효율 제품에 리베이트를 주는 건 알겠는데,
대체 '어떤' 제품에 '얼마'를 줄지 어떻게 정하는 걸까?


십수 년 간 일하면서 알게 된 것들은 이것들:


리베이트 금액을 결정하는 건 대개 '에너지 절감량'이다. 즉 전력 에너지의 경우 kWh 절감량이 기준이 된다.

이 때문에 냉장고, 세탁기 등의 가전과 히트펌프, 보일러 등의 HVAC 기기는 기본적으로 리베이트 금액에서 큰 차이가 난다.

비슷한 지역에 있는 유틸리티사들은 대개 유사한 리베이트 프로그램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고효율'을 정의하는 방식, 즉 제품 스펙이나 구체적인 리베이트 금액은 조금씩 다르다. 상당히 다를 때도 있다.

리베이트 제도는 미국에서 '관행'에 가깝다.



예전부터 나는 중앙 정부에서 결정을 내린 커다란 정책 변화가 어떻게 정부 하위 기관으로, 인더스트리로, 또 소비자의 가계로 흘러들어 가는지가 관심사였다. 중앙 정부의 기조, 특히 기후변화 대응 기조는 대통령의 공약이라든지 외교 정책, UNFCCC 분담금 납부 여부, NDC 제출 여부, 재생에너지 관련법 및 이행 명령 등 다양한 방면에서 티가 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이렇게 할 거다!!"라고 만천하에 공표한 이후, 실제로 어떻게 이행되는 것일까.


일례로 미국에서 리베이트 제도는 원래 있었던 제도지만, 미국 연방 정부와 주정부가 로드맵을 통해 히트펌프를 밀어주기로 결정한 다음부터 예산이 많이 풀려 리베이트 제도 자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히트펌프를 제조하는 업체의 수도 증가하고, 히트펌프의 종류도 다변화되었다. (외부 공기를 교환하는 방식의 히트펌프와 지중 열원일 이용하는 방식의 히트펌프는 '전통적' 히트펌프지만, 이에 더해 요즘은 한국의 보일러처럼 바닥 난방을 하는 히트펌프와 집 일부만 덕트 없이 간단하게 시공하는 덕트리스 히트펌프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위에서 "히트펌프 늘려!"라고 했다고 갑자기 착착 이렇게 진행될 리가 없다. 리베이트 정책이 이에 발맞추어 금액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예전보다 '세밀해진' 것이 느껴진다. 즉, 예전 같으면 금액만 조금 늘어났을 것이, 요즘은 기기를 설치하는 기사에 대한 리베이트, 중간에 기기를 취급하는 도/소매업장에 대한 인센티브까지 더 다양하게 생겼다. 게다가 딱 정해진 효율 기준을 제시하는 대신 custom 리베이트 방식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에너지 전문가가 실제 설치 장소를 방문하여 에너지 진단을 진행한 뒤에 고효율 기기를 설치하고, 이 경우 달성할 수 있는 에너지 절감량에 대해 리베이트를 준다). 또, 건물 전체를 전력화할 때와 고효율 기기 하나만을 도입할 때로 시나리오를 나누어 서로 다른 리베이트를 제공하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SEER 17+인 히트펌프에 대해 $500불>이었을 리베이트 제도가,

"부하 계산 제대로 해줄 설치 기사 필요해?" "너의 목표가 무어니? 에너지 절감이니, 전력화니?" "에너지 진단 먼저 하고 얘기해 볼까?" "이 김에 온수기도 함께 바꾸면 어때?"

이런 식으로 다양한 질문을 하고 이에 대해 다각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


... 물론 이에 따라 나의 일은 훨씬 골치가 아파지긴 했다.



아무튼. 이렇게 리베이트를 설계하는 건 유틸리티의 몫이다.


큰 방향을 연방 정부와 주 정부에서 잡아주지만, 실제 리베이트 제도의 디자인은 유틸리티사가 서비스하는 곳의 기후(특히 냉난방 기기는 기후에 따라 퍼포먼스 차이가 꽤 난다), 예산, 시장 상황, 고객들의 경제력, 유틸리티사가 추구하는 방향 등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비슷한 지역의 유틸리티 리베이트는 유사한 모습이긴 해도 완전히 일치하진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디자인은 유틸리티가 완전히 자기 멋대로 할 수가 없다. Public Utility Commission이라는 규제기관에서 유틸리티가 제대로 리베이트를 설계하고 이용하는지 감시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유틸리티가 PUC에게 단순히 서류만 제출하는 건지, 실제로 꼼꼼히 검사를 받고 허가를 받아야만 리베이트 제도를 유지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유틸리티가 자기 멋대로 에너지 절감량을 계산할 수 없도록 가이드라인이 제시된다는 것이다.


Technical Reference Manual, 즉 TRM이라고 부르는 이 문서는 대개 주마다 발행된다. 제일 먼저 '베이스라인', 즉 해당 기술의 베이스라인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고효율'이 무엇인지 정의해서 기기를 대체했을 때 에너지 절감량을 계산하는 방법을 자세하게 제시한다. 예를 들어 furnace의 경우 AFUE 80이 베이스라인이다. 이건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제품의 최저 효율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올라간다. 현재 기기를 고효율 기기로 대체할 경우 그것이 수명을 다해서 대체하는 것인지, 아니면 미리 대체하는 것인지에 따라 에너지 절감량 계산법도 당연히 달라진다. TRM은 이런 것을 세세하게 수식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유틸리티에서는 TRM을 이용하여 규제 기관에 리베이트 제도의 효과에 대해 보고해야 한다.


요즘 이 TRM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생각보다 수식이 굉장히 복잡해서 실제로 어떻게 계산되는지, 실제로 특정 기기의 효율을 집어넣어 계산할 때 그게 얼마나 정확한지 잘 모르겠다. 그게 우리 일에 도움이 될 지도 확실치 않다.


그러나 AI의 시대에 단순히 현행 리베이트 제도를 조사하고 모으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리베이트 제도가 어떻게 디자인되고 어떻게 유지되는지, 실제로 효과는 어떠한지를 선제적으로 알아내고 대응할 수 있다면 우리가 가진 데이터베이스의 가치가 훨씬 높아지지 않을까.


.. 그럼 나만 재밌을 이 글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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