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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May 18. 2020

미국의 에너지 리베이트 제도 이야기

Save Energy, Save Money

한국에서는 “리베이트”라는 단어에 좋지만은 않은 어감이 있는데요, 이와는 달리 미국, 특히 유틸리티 부문

에서 리베이트 제도는 긍정적으로 널리 활용되는 인센티브 제도입니다. 저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에너지 효율 리베이트 정보를 다루는 미국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오늘은 한 번 리베이트 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에너지 효율 리베이트란, 일반 소비자가 에너지 효율적인 가전이나 기기를 구입했을 때 구매 금액 일부를 유틸리티사 측에서 환급해 주는 제도를 말해요. 예를 들어 냉장고나 에어컨을 교체할 때, 한국으로 치면 홈플러스나 하이마트에 가서 여러 물건을 비교한 뒤 구매하게 되겠죠? 그런데 예를 들어 50만 원짜리를 샀을 경우 전액을 지불하되, 5만 원은 나중에 전력 회사에 청구하면 되돌려 주는 거죠. 물론 모든 제품에 대해 다 제공하는 것은 아니고, 일정 에너지 효율 요건을 충족해야 하고 이 기준은 각 유틸리티사가 정하고 있답니다. 괜스레 복잡해 보이는데요, 대체 왜 이런 제도가 있는 걸까요? 


Hawaii Energy의 리베이트 프로그램 홍보 이미지



미국 전력 시장의 구조 - 수천 개의 유틸리티사, 수만 개의 리베이트 프로그램 

리베이트 제도를 이해하려면 미국의 전력 시장 구조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은 전기 요금을 일괄적으로 한전에 납부하지만, 미국은 전력 시장이 다변화되어 있어요. 투자자가 이윤을 갖는 일종의 대기업 같은 Investor-Owned Utility companies (IOUs), 이보다 훨씬 작은 규모로 도시나 타운 거주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뮤니(Municipalities) 유틸리티, 또 주로 인구가 적은 비도심, 전원 지방에 광범위하게 전력을 공급하는 코압(Coop) 형태의 유틸리티 회사들이 있습니다. 


미국 에너지정보국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는 2017년 기준 3천 개가 넘는 유틸리티사가 있다고 합니다.


나의 전력 공급자가 누구인지는 보통 어디에 사느냐에 달라지는데, 같은 우편번호(zip code) 내에서도 공급자가 여럿 존재하기도 하고, 발전소를 직접 운영하지는 않지만 요금 경쟁을 통해 고객을 확보하고 차익을 얻는 리셀러(reseller)들도 존재합니다. 그래서 미국 지역별 유틸리티사 지도를 찾아보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굉장히 복잡한 형태예요. 전력 시장만 해도 그런데, 천연가스 공급자까지 포함시키면 더 복잡하죠. 


캘리포니아 전력공급사 지도. 우편번호 단위로 자세히 살펴보면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합니다. 


미국 전체에서 리베이트 제도를 가지고 있는 유틸리티사만 해도 수천 개인데, 각각 다양한 리베이트 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 합해 보면 수만 개에 달한답니다. 제가 일하는 회사는 세부 지역별, 유틸리티 별 리베이트 정보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솔루션을 판매하는데요, 이 복잡함 덕에 정보에 가치가 생긴 셈이죠.  



그럼 유틸리티사는 대체 왜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걸까?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제품 구매는 고객이 하는 것인데 왜 유틸리티사는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걸까요? 


첫 번째 이유는 에너지 효율화가 유틸리티 측에서도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전력을 더 많이 팔아야 유틸리티사도 남기는 게 많을 것 같지만, 에너지 수요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기존 자원으로 수요에 부응하는 것이 유틸리티사 입장에서는 필수적인 과업이에요. 즉 기존 전력망에서 최대한 에너지 효율화를 달성해야 하는 거죠.  


기존 전력망에서 에너지 효율화를 달성해야 안정적으로 전력 공급을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규제 때문입니다. 연방 정부나 주 정부 차원에서 정한 에너지 효율 기준을 달성하는 방편 중 하나죠. 트럼프 행정부 이후로는 청정에너지 부문의 규제나 투자가 많이 약해졌지만, 기후변화 억제를 위한 방안으로 채택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아니지만 캐나다 어떤 지역에서는 기존에 고체 연료 등 화석 연료를 난방에 쓰던 경우 장비 개선을 하면 리베이트를 받을 수 있는데, 이때 탄소 배출량을 감축하는 결과를 가져와야 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  


캐나다 Yukon의 리베이트 제도. 탄소배출량 감축이 이루어질 경우 리베이트를 제공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일종의 마케팅 효과입니다. 미국 전력 시장 구조상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환경친화적 기업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노력이죠. 예를 들어 원래 전기로 사용하던 기기를 가스용 기기로 변환하는 경우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유틸리티사들도 있는데요, 화력발전소로 조달한 전기보다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편이 더 "깨끗하다"며 마케팅을 하고는 합니다. 반대로 가스에서 전기로 변환할 때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유틸리티사들도 있고요. 



어떤 장비가 "에너지 효율적"일까? - 에너지 효율 기준을 정하는 법

그럼 어떤 물건을 사야 환급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것은 유틸리티사마다 각각 기준이 달라서 일괄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여러 리베이트 프로그램을 살펴보다 보면 나름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이 기준은 각 가전이나 장비의 에너지 효율 기준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 같아요. 


일단 세탁기나 냉장고 등 가전은 에너지 스타(EnergyStar) 라벨이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너지 스타는 미국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 DOE)에서 제공하는 에너지 효율 기준을 충족할 때 제공하는 "별표"인데요, 로고를 보면 어디서 많이 봤다 싶을 만큼 보편화되어 있어요. 미국에서도 고급 가전으로 알아주는 LG나 삼성은 매년 에너지 스타 제품 중에서도 최고의 자리, 즉 EnergyStar Most Efficient 제품으로 이름을 올리곤 하지요. 금액은 $15, $20 정도부터 $100 정도까지 금액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너지스타 로고(왼쪽)와 가장 에너지 효율적인 세탁기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린 삼성 제품(오른쪽)


히트펌프 같은 냉난방 장비의 경우는 에너지 스타 라벨도 있지만 보통 SEER이나 HSPF 같은 어려워 보이는;; 기준을 씁니다. 일정 에너지를 투입했을 때 냉방 또는 난방의 출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 주는 숫자인데요, 이 수치가 높을수록 효율적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리베이트를 줄 때 SEER 15 이상이면 얼마, 16 이상이면 얼마 이런 식으로 금액을 책정하죠. 이와 유사하게 가스 장비는 AFUE라는 수치를, 급탕 기기는 에너지 계수(EF)를 흔히 씁니다. 난방 기기는 제품 가격이 비싸니 리베이트 금액도 비싼 경우가 많아요. 특히 지중 열원(ground-source) 히트펌프의 경우 공사도 대규모로 해야 하고 워낙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1,000 이상의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단열 공사, 스마트 온도계, LED 조명 등에도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유틸리티사가 많이 있어요.


금액은 보통 1년에 한 번 예산을 할당하고, 소진되면 리베이트 공급을 다음 연도까지 중단하곤 합니다. 금액은 조금씩 변동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보통은 유틸리티사가 지속적으로 매년 유사한 리베이트 제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수요와 예산 상황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것 같아요. 



물도 아끼자! 

여기서는 주로 전력을 이야기했지만 유틸리티에는 물도 포함되지요. 특히 캘리포니아처럼 건조한 지역에서는 전력 못지않게 수도 부문도 리베이트 제도가 발달했는데요, 물을 적게 사용하는 변기나 세탁기, 식기세척기 등에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원에서 사용하는 스프링클러와 노즐도 물을 절약하는 제품에 리베이트를 주고요, 정원에서 잔디 자체를 없애는 조경을 하거나 가뭄에 강한 식물로 바꿔서 심는 경우에도 면적당 일정 금액을 제공하기도 한답니다. 


물 절약을 위한 정원 개조를 설명하는 SoCal WaterSmart 프로그램 자료.



에너지 절약 효과는 있을까?

그러면 실제로 이런 리베이트 제도가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까요? 일괄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보이는데요, 예를 들어 2014년 한 연구에 따르면 에너지스타 리베이트 제도를 여러 제품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특히 세탁기의 경우 에너지 절약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1].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에너지 절약에 대한 인센티브를 인식하고, 이로 인하여 구매나 행동 패턴을 바꾸게 하는 것이죠. 사회 과학적 행동 변화 측면에서 리베이트 등 인센티브 제도의 효과를 분석한 연구도 있는데요, 특히 미국 대부분의 유틸리티 리베이트 제도의 경우 수년간 유사하게 진행되어 자리를 잘 잡았기 때문에 정책의 신뢰도가 높고 소비자의 기대치가 잘 정립된 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사무용 건물이나 교통 부문의 경우 에너지 사용량이 줄었지만, 다들 집에만 있다 보니 주거 부문에서는 에너지 수요량이 급등했다고 합니다. 리베이트 제도가 한국이나 다른 나라와는 관계가 없는 부분도 있지만, 에너지 절약이 결국 내 지갑 속의 돈 절약으로 이어진다는 인센티브적 측면은 한 번 생각해 볼 만하지 않을까요? 


[1] Souvik Datta et al., 2014, Utility rebates for ENERGY STAR appliances: Are they eff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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