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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Jun 10. 2020

과연 미래에는 욕조의 물을 덜어낼 수 있을까?

UN 기후 협상 목표의 변천, 그리고 신기술에 대한 기대의 문제

원래 올해 개최 예정되어 있었던 UN 기후 협상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내년으로 연기되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안 그래도 동력을 잃고 있는 기후 협상인데 올해는 본격 논의가 어려울 것 같아요.


모두들 기후변화는 막아야 하는 것이고, UN이 그 주축이 되어 왔다는 것은 막연히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과연 기후변화를 '막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대기 중 온실가스의 양을 줄이면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살기 힘들 만큼 더워지지만 않으면 되는 것일까요?


사실 국제적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기후 협상도 '기후변화 방지'라는 큰 틀은 같지만 구체적 목표는 계속 바뀌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주목받는 관련 신기술도 계속 변화했고요. 최근 Carbon Brief라는 영국 온라인 매체에 실린 기사를 읽게 되었는데, 여기서 이 흐름을 너무나 잘 설명하고 있어서 이를 기반으로 기후변화 협상의 목표와 기후변화 방지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UN 기후 협상의 큰 줄기

UN 기후 협상의 목표 변화(출처: Carbon Brief)


1. 1992년, 리우 회의: 온실가스 농도의 안정화

소위 Earth Summit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리우 회의는 국제 환경법 분야에서 시금석이 되는 중요한 회의였어요. 여기서 기후변화도 언급되는데, 대기 중 온실가스의 농도를 위험하지 않는 수준에서 안정화(stabilization)시키자는 목표를 내세웠죠. 안정화라니, 다소 모호하지요?


이를 좀 더 구체화시키기 위해 기후 모델이나 IAM (Integrated assessment models, 과학뿐 아니고 사회적, 경제적 요인을 고려해 상황을 분석하고 결과를 예측하는 기후변화 연구 방법 중 하나를 의미해요) 등을 개발하고 이용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특정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아직 불투명했지요.


2. 1997년, 교토 회의: 배출량 몇% 감축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교토 의정서(Kyoto Protocol)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을 거예요. 리우 회의에서 원칙만 발표했다면 교토 회의에서는 구체적인 정책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지요. 여기서는 처음으로 인간의 경제활동에서 야기되는 탄소 배출량을 감축한다는 목표가 등장했습니다. 즉 2008-2012년 기간 동안 1990년 기준으로 5%를 감축하자는 것이죠.


EU의 탄소 배출권 거래제(ETS)도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고, 화석 연료 대신 신재생 에너지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려는 연료 전환(fuel switching)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3. 2009년, 코펜하겐 회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이때부터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얼만큼이면 적정한지에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논의 끝에 450ppm이 하나의 기준치로 정해졌지만, 350ppm 정도로 훨씬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감축량에서 온실가스의 농도에 주목함에 따라, 탄소 포획이나 네거티브 에미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바이오에너지를 이용한 신기술 등이 거론되기 시작합니다.


4. 2011년과 2012년, 더반과 도하 회의, 탄소 예산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와 맞물려 등장한 개념이 바로 '탄소 예산(carbon budget)'인데요, 이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또는 지구 온도 상승폭을 어느 수준으로 유지하며 배출할 수 있는 탄소 배출량의 총량을 말합니다. 자금 예산과 똑같이, 지금 많이 배출하면 나중에 정말 많이 감축해야 하겠죠? 또한, 예산을 모두 다 현세대에 써버리면 미래 세대에는 어떻게든 네거티브 에미션을 달성해야만 한다는 얘기입니다.


5. 2015년, 파리 회의: 온도 상승폭을 2°C 이내로 

현재와 같은 섭씨 2도의 온도 기준의 목표가 공식화된 것은 파리 회의에서였습니다. 교토 의정서의 한계를 인정하고 기본적인 틀이 많이 바뀐 파리 협약에 대해서는 예전에 제 블로그에 파리 기후 협약의 의미에 대한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많은 과학자들과 전문가들은 2도도 부족하고, 1.5도로 목표를 잡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음 협상에서 이제까지의 성과와 앞으로의 나아갈 방향을 재정비해야 할 시점이지요.



기후변화와 욕조 모델, 그리고 기술의 역할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인해 경제 활동이 현저하게 감소했는데도 불구하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5월 기준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417.2ppm을 기록함으로써 지난해 414.8ppm 대비 2.4ppm만큼 증가했다고 해요. 전 세계가 이번 상반기에 거의 멈춰 있었던 것 같은데 왜 그런 것일까요?

Mauna Loa 관측소에서 발표한 대기 중 CO2 농도(출처: NOAA)


탄소 배출량과 기후변화를 설명할 때 전문가들이 흔히 사용하는 '욕조 비유'가 있습니다.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욕조에 받아진 물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인간의 활동으로 배출되는 양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이고요. 산업화 이후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나오기 시작하며, 욕조에 물이 점점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기후 협상에서는 물이 욕조에서 넘치지 않도록(기후 때문에 지구 상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지 않도록) 배출량을 제어하자(수도꼭지를 조금씩 닫아 보자)는 논의를 하는 거예요. 하지만 수도꼭지를 완전히 잠근다고 해도, 이미 불어난 물이 갑자기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온실가스는 아주 오랫동안 대기에 머물기 때문에, 추가적 배출을 하지 않더라도 이미 배출된 양은 그대로 공기 중에 머물고 지구를 덥히고 있다는 얘기죠.

기후 변화와 욕조 비유(출처: Climate Interactive)


이때 한 번 욕조에서 물을 퍼내거나 마개를 열어서 물을 뺀다고 생각해 보세요. 원래 자연적으로 탄소를 잡아먹는 카본 싱크(carbon sink)가 자연에 존재하는데요, 일례로 이산화탄소를 광합성에 사용하는 식물이 있겠지요. 이러한 카본 싱크가 이루어지는 메커니즘을 늘릴 수 있으면 수도꼭지를 다 잠그지 않더라도 욕조에 물이 너무 많이 차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배출되는 탄소를 채집해서 땅에 묻어 버리는 탄소 채집 및 저장(CCS, 요즘은 채집한 탄소를 상업적으로 사용하려는 목적으로 CCUS (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라는 말도 씁니다) 기술은 수도꼭지 아래에 바가지를 놓고 물을 받아서 따라 버리려는 시도로 볼 수 있겠죠. 실제로 과학자들은 모델에 카본 싱크 요소를 집어넣어 계산을 합니다. 리우 회의에서는 미래에 원자력 발전이 많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원자력 발전 예측치를 모델에 포함시켰고, 교토 회의에서는 나중에 CCS가 널리 상용화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좀 더 극단적인 예를 들어볼까요? Climate engineering이라는 분야가 있는데요, 지구의 기후 시스템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구에 흡수되는 태양빛을 아예 적게 바꾸어 버리면--인위적으로 대기 중 에어로졸을 뿌린다든지, 더 극단적으로는 지구와 태양 사이에 엄청나게 반사판을 설치한다든지--더워지는 기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예요. 욕조 비유로 생각하자면 수도꼭지에 연결된 파이프 직경을 바꾼다든가 하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겠죠.

대규모 climate engineering 예시(출처: Sciencenews.org)


하지만 굳이 이렇게 엄청난 기후 조작까지 가지 않더라도, 실제로는 원자력이나 CCS 같은 예측도 빗나갔다는 게 문제입니다. 원자력 발전소는 여러 사고로 드러난 바와 같이 리스크가 큰 것으로 드러났고, 대중의 지지를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CCS도 시범 프로젝트는 많이 진행되었지만 기술적 한계로 인해 전혀 예전에 예상했던 것처럼 상용화되지는 못했죠.


미래를 대비할 때 이는 생각보다 큰 의미를 갖습니다. '지금 당장 수도꼭지를 잠가야 해!'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에게 '괜찮아, 나중에 물을 퍼내는 기술이 많이 발달할 거야. 지금 조금만 잠그고 나중에 찾아올 그 기술을 믿어 보자.'라고 했는데, 정작 아직도 물을 잘 못 퍼내고 있으니까요.


이제까지의 UN 회의를 살펴보면, 신기술에 너무 많은 기대를 갖는 것은 사실 무책임하고 위험한 일 같습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세대를 위해 기후 변화를 방지한다면서, 그걸 달성할 방법을 상용화가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미래의 어떤 기술에서 찾으려 하고 있으니까요. 특히 현재 UN 기후협약의 구조상 아무리 각국이 탄소배출량을 감축하고 신기술에 투자하기로 약속 한다한들, 미래에 이를 실제로 이행하지 못했다고 타박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환경주의자들이 다소 급진적이긴 하지만 "지금 당장"을 외치는 건 이런 이유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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