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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Jul 21. 2020

우리 집 실내 온도 세팅은 누가 하나요?

똑똑한 온도조절장치(thermostat)와 수요관리 정책

마스크를 쓰고 맞이하는 첫 여름입니다ㅠㅠ 땡볕을 걷다 보면 정말 사우나가 따로 없는데요, 이럴 때 생각해보면 실내 냉방은 정말 고맙기만 한 존재죠. 하지만 맘껏 에어컨을 틀어본 사람이라면 그 후에 받아 든 엄청난 고지서를 뼈아프게 기억할 겁니다. 냉난방은 가정/사무실의 에너지 사용량 중 단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요소인데, 모두 다 덥다고 냉방을 빵빵하게 틀어버리면 전력 공급자 측에서는 답이 안 나오기 때문에 더운 낮 시간에 전력 요금을 더 비싸게 받음으로써 에너지 사용을 억제시키는 거죠. 


유틸리티에서 제일 중요한 건 공급 안정성(reliability)이거든요. 수도꼭지를 틀었을 때 바로 물이 나온다는 확신, 또 플러그에 꽂아 놓고 자면 다음날 아침 휴대폰이 100%로 충전되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지요. 그럼에도 에너지 소비가 제대로 제어되지 않는다면 대규모 정전이라는 엄청난 사태가 발생합니다. 2011년 9월 15일 발생한 대규모 정전 사태를 모두 기억하실 거예요. 우리나라 전력 시장의 구조적 문제점과 비효율적 운영이 원인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수요 예측에 실패한 사례라고 할 수 있지요. 

2011년 9월 대규모 정전사태(이미지: 국제신문)

에너지의 수요와 공급을 맞추기 

시장에서 상품에 대한 수요-공급이 있듯 에너지도 수요-공급이 있습니다. 재화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비싸지고, 적으면 가격이 싸지는 원리도 똑같죠. 다만 경제학에서 말하는 완전 경쟁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결국 균형을 이루는 것과 달리, 에너지는 공급이 무한정 지속될 수 없어요. 조금이라도 공급량을 늘리려다 보면 이에 수반되는 비용이 굉장히 크다는 것이 다릅니다. (발전소를 무한정 더 지을 수는 없으니까요. 부지 선정에, 연료 조달에, 운영에.. 생각만 해도 비용이 어마어마하죠?) 그래서 전력 회사들은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위해 수요 쪽에 손을 댈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대별로 보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주로 활동하는 낮시간에 에너지 수요와 소비가 높고, 잠을 자는 밤 시간에는 낮습니다. 아래 그래프처럼요. 이때 피크 수요를 다른 시간대로 이동시키는 것이 (파란색 그래프를 주황색으로 바꾸는 것이) 수요관리의 개념이에요. 피크 시간대의 요금을 비싸게 책정하고, 그 외 시간대의 요금은 낮게 유지하는 방식이 대표적이지만, 이러한 요금 설계 방식 말고도 크게 보면 전력 시스템 에너지 효율화도 수요 관리의 일종입니다. 미국의 전력 회사들이 리베이트를 줘가며 소비자들에게 에너지 효율화를 권장하는 것도 수요 관리 노력의 일환이지요.

에너지 사용량이 많은 낮시간의 수요를 다른 시간대로 이동시키는 수요관리(이미지: nwcouncil.org)



실내온도 자동제어장치를 이용한 수요관리 

그런데 만일 누군가가 멋대로 내 에어컨을 꺼버리면 어떨까요? (읭?) 앞서 말한 요금 설계나 에너지 효율화는 소비자가 스스로 행동을 변화시킬 유인을 제공하는 것인 데 반해서, 유틸리티사가 직접 개입하는 방식도 있어요. 미국 유틸리티사들은 다양한 리베이트를 제공하는데, 수요관리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돈을 주는 프로그램도 있거든요.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그렇지 않지만, 옛날에는 수요관리 프로그램에 참여하겠다고 하면 전력회사에서 사람이 와서 직접 부하 제어 스위치(load control switch)를 집에 있는 에어컨 옆에 달아주었다고 해요. 전력 수요가 높아지는 시간대에 라디오 신호로 이 스위치를 직접 제어할 수 있는 것인데(아예 꺼버리는 건 아니고, 껐다 켰다를 반복하며 에너지 절약적인 방식으로 운용하는 거예요) 생각해 보면 엄청 일방적이지 않나요? @_@ 내 집인데 특정 시간대에는 내 맘대로 냉난방을 할 수 없다니 말이에요. 그래서인지 아무리 사전 동의를 받았다고 해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또 산간 지역에서는 저주파 신호가 잘 안 잡히니 효과가 미미한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너네 집 에어컨에 스위치 달게 해 주면 돈을 줄게!"라는 방식의 사례(이미지: Logan County Electric Cooperative 웹사이트)

최근에는 스마트한 온도 조절 장치(smart thermostats)가 나오면서, 실내에 사람이 있는지, 날씨는 어떤지 등을 고려해서 냉난방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어요. 80-90년대만 해도 사람이 직접 프로그램을 입력하는 정도는 가능했는데, (몇 시부터 몇 시는 냉방을 하고, 그다음 몇 시간은 끄고, 요렇게요) 요즘은 와이파이로 연결해서 언제 어디서든 제어하는 방식이 가능하게 됐죠. 이에 따라 전력 회사도 이런 기기를 이용해서 스마트하게 수요를 관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요관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소비자들에게 스마트 온도조절장치를 무료로 나눠주기도 하고, 아니면 구매는 소비자가 하더라도 리베이트를 제공하거나 수요관리에 참여하면 1년에 얼마씩 준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소비자 참여를 유도하고 있어요. 


"스마트 온도조절장치로 온도 제어를 허락해주면 돈을 줄게!"라는 방식의 사례 (이미지: ConEdison 웹사이트)

스마트 온도조절장치는 점차 상용화되어 가고 있는데요, 2015년 미국에서 판매된 총 4천만 개의 온도조절장치 중 40퍼센트가 스마트 기기였다고 합니다(미국 에너지부, 2016년 통계)[1]. 요즘에는 한창 핫한 데이터 분석 기술을 이용해서 사용자에게 에너지 사용량도 시각화해서 제공하고, 알아서 업데이트도 하고, 아무튼 점점 스마트해지고 있는 듯합니다.  


최신 스마트 온도제어장치. 와이파이는 물론, 센서 등의 기능도 탑재하고 있어요. (이미지: Arctic Air Systems (왼쪽),  Which Thermostat (오른쪽))



수요관리도 단점이 있어요 

이처럼 수요관리 노력은 필요한 것이지만, 무조건 긍정적인 결과를 낳지만은 않습니다. 한 가지는 수요 관리에 집중하면서 초기 자본이 많이 드는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게 된다는 것이고요 [2]. 경제학적 측면에서도 개입으로 인한 효용 감소를 들 수 있지요. 또, 그만큼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결국은 그만큼 제도를 잘 설계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거겠지요. 


일을 하다 보니 미국의 제도에 대해서만 익숙했는데, 찾아보니 한국도 수요관리 관련 여러 자료를 찾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정작 제가 살고 있는 홍콩은 몇 차례의 단기 프로젝트만 있고 본격적인 제도는 없는 것 같네요. 한정된 에너지 자원을 효율적으로, 그리고 안정적으로 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죠? 마스크 쓰는 여름이 올해가 마지막이란 보장은 없으니까요.. 우리에게 냉방은 꼭 필요합니다..ㅠㅠ


[1] https://www.cooperative.com/programs-services/bts/Documents/TechSurveillance/TS-Smart-Thermostats-April-2018.pdf

[2] https://www.ecogeneration.com.au/why-demand-response-demands-atten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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